[뉴스프리존] 명나라 때 게훤(揭喧)이 엮었다고 하는 ‘병경백자(兵經百字)’의 ‘차자(借字)’에 보면 이런 대목들이 있다.지혜와 계략을 구사할 수 없을 때는 적의 것을 빌려라.상대의 수단을 뒤집어 내 수단으로 삼고, 저쪽의 꾀를 내 꾀로 만드는 것이 바로 적의 계략을 빌리는 것이다.힘이 달리면 적의 힘을 빌리고, 죽이기가 힘들면 적의 칼을 빌려라. 재물이 부족하면 적의 재물을 빌려라. 장군이 부족하면 적장을 빌리고, 지혜와 계략으로 안 되면 적의 계략을 빌려라.이 계략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은 자신이 하기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의
『36계』 중 제22계의 “약한 적은 포위한다. 그러나 성급하게 멀리까지 추격하는 것은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 뜻을 좀 더 음미해 보면 이렇다. 약소한 적에 대해서는 포위해 들어가면서 섬멸해야 한다. 이리저리 흩어진 얼마 안 되는 적은 그 세력이 보잘 것, 없지만 행동이 자유스럽기 때문에 섣부른 속임수로는 막기 힘들다. 따라서 성급하게 말리 추격하는 것은 불리하다. 사방으로 포위하여 물셀 틈 없는 그물을 쳐서 단숨에 섬멸해야 옳다.『36계』에서는 이 계략을 ‘착적관문’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문을 닫아걸고 적을 잡아라.’ 이
[뉴스프리존] ‘손자병법’의 ‘군쟁편(軍爭篇)’에 나오는 ‘용병 8원칙’의 하나다. ‘후한서’ ‘황보숭전(皇甫崇傳)’에도 ‘궁구물박’이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세력이 다한 적을 추적할 때도 책략을 강구 해야지 성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되며, 또 너무 심하게 핍박을 가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적이 필사적으로 반항할 수도 있어 적을 섬멸하는 데 지장을 겪게 된다. ‘손빈병법’ ‘위왕문(威王問)’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왕이 손빈에게 물었다.“탈출로가 없이 궁지에 몰려있는 적을, 공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그러자 손빈이 이렇게
[뉴스프리존] 대체로 포위 공격은 적의 병력보다 아군의 병력이 배 이상일 때 실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손자는 “열 배면 포위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진대 적보다 적은 병력으로 포위하여 적을 섬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창조적인 행동이라 할 것이다.칸나에 전투에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이끄는 보병은 고의로 적에게 약점을 노출하여 유인한 다음, 기병으로 하여 우회적인 협공을 가하게 하여 훨씬 많은 로마 군대를 섬멸시켰다. 한니발은 이 과정에서 열세의 병력으로 우세한 적군을 포위 공격하여 섬멸시키는 탁월한 조직력과 지휘력을
‘사기’의 ‘손자오기열전’을 보면 전국시대 제나라가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한 사실이 나온다. 이것이 ‘위위구조’라는 고사성어의 출전이다. 그 기본 사상은 반드시 구원하러 나올 대상을 포위 공격함으로써 그 구원하러 온 적을 섬멸하며, 반드시 후퇴할 곳을 공격하여 후퇴하는 적을 섬멸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익을 좇고 손해를 피하면서 기동성 있게 적을 섬멸하는 목적을 달성한다.위가 조를 치니 조의 형세가 위급해졌다. 조는 제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제의 위왕은 손빈(孫臏)을 장군으로 삼으려 했으나 손빈은 “전과가 있는 사람이라 적당
‘손자병법’ ‘군쟁편’에서 제기한 ‘용병 8원칙’의 하나다. 이 계략의 기본 요구 사항은 이미 포위한 적에 대해서는 일부러 한 군데 정도 구멍을 마련해 놓고 그곳에다 매복을 설치하라는 것이다. 고대 전투에서는 성을 포위하는 상황이 무척 많았다. 성을 공격하는 쪽은 성을 지키는 군민들의 심리를 잘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포위를 당한 군인들이 성이 함락당한 후의 끔찍한 결과를 예상하여 성과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결심하면 함락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령경(虎鈴經)’에서는 “압박을 가하여 수십 일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뉴스프리존]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 공군은 미사일 하나로 유도탄을 장착하고 있는 현대화된 영국 구축함을 침몰시켰다. 서방 군사계에서는 이 사건을 해전의 전통적인 전법에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평가하고, 아울러 해전 전술의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 전망했다.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이에 근거하여 “현대 해전은 일종의 ‘숨바꼭질 놀이’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여기서 말하는 ‘숨바꼭질’은 적은 병력과 불규칙한 전술로 공격을 가한 후에 잽싸게 숨고, 숨었다가는 다시 공격하여 적으로 하여 아군의 실력과 의도에 대해 갈피를 못 잡게 함으로
[뉴스프리존] 용병은 적을 속이는 ‘궤도’다. 그런 까닭에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쓸 수 있으면서도 쓸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가까운 곳을 노리고 있으면서 먼 곳에 뜻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먼 곳을 노리면서 가까운 곳에 뜻이 있는 것처럼 꾸민다. 적에게 이익을 줄 것처럼 유인해 끌어내고, 적을 혼란시켜 놓고 공격한다. 적의 병력이 건실하면 내 쪽에서도 태세를 정돈하여 대비하고, 적이 강하면 자중하면서 정면충돌을 피한다. 적을 화나게 만들어 어지럽히고, 저자세를 취하여 교만하게 만든다. 적이 편안하게
[뉴스프리존]이 책략은 적이 혼란한 상태를 틈타 적을 공격, 바라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손자병법’ ‘계편’에서 제기하고 있는 ‘궤도 12법’의 하나다.‘난(亂)’이란 먼저 적진의 혼란, 즉 부대의 무절제를 가리킨다. 그리고 작전계획의 혼선, 즉 상부 집단 내부에 혼선이 일어나 사령관이 결심을 못 내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전자는 흔히 후자의 결과로 나타나며, 후자는 전자의 주요 원인이 된다. ‘취(取)’란 싸워 승리를 거두는 것을 가리키는데, 쉽게 손에 넣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난이취지’는 기
삼국지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의사로 한국에서도 추앙받고 있다.화타(華佗-145~208)는 자가 원화(元化)이며 본명은 부(敷)다. 그는 예주 패국 초현(譙縣) 사람이다.실상 화타는 전업 의원이 아니었다고 한다. 정사 삼국지의 화타전에 그는 서주의 유명 인사였으며 여러 경전에 통달한 유식한 유생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양성(養性)의 방법에 밝았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은 화타의 나이가 백 세 가까이 되었지만, 장년의 용모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패국의 재상 진규(陳珪)가 화타를 효렴으로 천거하였고, 태위인 황완(黃琬)이 그를 조정
민간설화나 괴담을 주로 모아놓은 책인 ‘요재지이(聊齋志異)’에 이런 우화가 나온다. 목동 두 명이 깊은 산 속 이리 굴에 들어갔다가 새끼 이리 두 마리를 발견한다. 그들은 각자 한 마리씩 안고 약 열 걸음 떨어진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어미 이리가 돌아와 새끼들을 찾았다. 한 목동이 새끼 이리의 귀를 당기며 장난을 치자 이 새끼가 죽는다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어미는 새끼의 울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황급히 달려가 나무 아래에서 울부짖으며 둥지를 마구 할퀴어댔다. 그런데 다른 나무에 있던 목동이 어미 이리의 울부짖음에 깜짝
정의와 원칙이 없는 주장으로 천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지고 논 두 사람춘추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는 학파의 명칭이 아니라 독특한 모사들의 무리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종횡가는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에겐 그들 나름으로 학설이 있고, 심지어 다른 학파들에 비해 뛰어난 체계와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관건은 종횡가의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횡가의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효용에 있다. ‘한번 노하면 모든, 제후들이 두려움에 떨지만 일단 안거하면 천하가 조용해진다’는 말이 종횡가의 현실적 효용을 잘 말해준
밝을 때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고어두울 때에 진창을 건넌다.이 계책은 정면공격을 하는 척하거나 움직이는 척하는 양공(陽攻) 또는 이른바 양동(陽動)으로 적을 현혹시켜 공격노선과 돌파 지점을 위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만 작전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사기』 ‘회음후열전’과 ‘자치통감’ ‘한기(漢紀)’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진(秦)나라가 막 무너지자 항우(項羽)는 파(巴)‧촉(蜀)과 한중(漢中-지금의 산서성 서남 산지) 등의 세 곳의 군을 유방(劉邦)에게 주어 항왕(漢王)으로 봉하고 한중의 남정(南鄭)을 도읍으로 삼도록 했
천리마는 늘 있지만, 명마(名馬)를 알아보는 안목은 늘 있는 것이 아니다.유비(劉備)는 현명한 군주였고 제갈량(諸葛亮)은 현명한 재상이었다. 이 군주와 재상은 중국 민족의 문화적인 이상으로서 의심할 여지 없이 영원한 가치와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현명한 군주와 재상이 왜 전국을 통일하고 한나라를 계승하지 못했는지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후세 사람들도 그 점이 안타까워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두보(杜甫)는 자신의 시에서 “출병이 늦어 몸이 먼저 죽었고, 늘 영웅들을 부렸으나 옷깃 흥건히 눈물 적셨네.”라고 읊었다. 안타까움과
그는 죽어서 중국의 관료문화에 管仲이 남기지 못한 直言의 숭고한 정신을 남겼다.안영(晏嬰)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재상이다. 소박하고 겸손했던 그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첩에게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다. 정치에서는 사려 깊고 과단성이 있었으며, 정책이 분명하여 백성들이 쉽게 따를 수 있었다. 게다가 학문이 깊고 언변도 거침이 없었던 그는 세상의 추이에 밝아 시대 조류에 순응할 줄 알았다.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세 군주를 연이어 보좌하여 제나라의 전성기를 이뤘으니, 그는 실로 진정한 재상의 재목이었다.나중에
허한 것을 허하게 보인다.이 말은 ‘초려경략‧권6’ ‘허실’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나온다.허실은 나한테 달려있음으로 적의 오판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점이 있으면서도 일부러 튼튼한 것처럼 보이고, 튼튼하면서도 일부러 허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허점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어 적으로 하여 튼튼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또 튼튼한 모습을 그대로 튼튼하게 보임으로써 적으로 하여 내 쪽에 혹 허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허이허지’의 계략은 본래 있는 허점을 그대로 드러내어, 적으로 하여 오히려 내
‘손자병법’ ‘형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예전에 용병을 잘한다고 하면, 먼저 적이 나를 이길 수 없도록 준비를 하고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다.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달려있고, 내가 적을 이기는 것은 적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할 수 있으나, 내가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적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이기는 것을 미리 알 수는 있으나 이길 수 있게 만들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군대는 먼저 자신을 정비하고 약점을 극복하는 등
장한가(長恨歌)를 비롯한 작품의 수만 무려 3,840여 편.백거이(白居易-772~846)는 중국 당(唐)나라, 출신으로 문학 창작을 삶의 보람으로 여겼다. 그가 지은 작품의 수는 대략 3,840편이라고 하는데, 문학 작가의 작품의 수가 크게, 증가한 중당시대라 하더라도 이같이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그의 작품은 형식이 다양하여 시가에서부터 산문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 형식을 망라했다.백거이는 문학으로써 정치이념을 표현하고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여 실제 행동에 옮기도록 하는 것을 문학 활동의 목적으로
당나라의 문인 한유(韓愈)는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 ‘논회서사의상(論淮西事宜狀)’에서 이소(李愬)가 오원제(吳元濟)를 토벌할 때, 치청(淄靑)‧항기(恒冀) 지방의 관리들이 오원제를 구원할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겁 많고 나약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저 ‘허장성세’했을 뿐이라고 쓰고 있다. 이것이 ‘큰 소리로 떠벌인다.’는 뜻의 ‘허장성세’가 직접 거론된 대목이다.병은 궤도다. ‘허장성세’도 병가에서 보자면 궤도의 하나에 속한다. 그 뜻은 가짜를 진짜로 혼란 시켜 적을 현혹한다는 것이다. 고대 전쟁에서 이것은 약세에 놓인 쪽이 자신을
춘추전국시대 자기 비움의 겸양지덕으로 세상에 의술을 펼쳤던 의학계의 開祖.편작(扁鵲)은 발해군(渤海郡) 막읍(鄚邑) 출신으로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젊어서 남의 객사(客舍)에서 관리인으로 지냈다. 객사의 손님 중에 장상군(長桑君)이라는 은자가 간혹 머물렀다. 그런데 오직 편작만이 장상군을 특출한 인물로 여겨 언제나 그를 정중하게 대했다. 장상군 역시 편작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장상군은 그가 객사를 드나든 지 10여 년이 되었을 때 은밀히 편작을 불러 자기 앞에 앉히고 이렇게 말했다.“내가 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