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달려가지 않을 곳으로 나아가며, 적이 뜻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간다. (‘손자병법’ ‘허실편’.)이것은 진격 작전에서 중요한 원칙의 하나다. 적이 빨리 구원 할 수 없는 곳, 즉 허점을 쳐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적이 예기치 못한 곳으로 진군하라는 것이다. 이는 손자가 말한 “적의 무방비한 곳을 공격하고 적이 뜻하지 못한 곳을 노려야 한다”를 구체화한 것이다. 이것은 공격의 돌발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교묘한 전법으로 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기와 지역에서 갑자기 기습을 가하는 것이다.‘관자(管子’에서도 만약 적의 튼튼한
시련으로 단련된 인재는 그만큼 성숙하고 남을 돌보며 감쌀 줄 안다.맹자는 만약 하늘이 누군가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대업을 맡기려 한다면 먼저 그의 정신과 육체가 고난을 겪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지혜와 재능을 증진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유가의 모범적인 교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역경 속에서도 스스로를 격려하고 자기 발전을 늦추지 않게 하는 정신적 힘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어떤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한결같이 복잡하고 힘든 시련을 경험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이 각자 시련을 경험한 방식이
『손자병법』「용간편 用間篇」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따라서 삼군에서 가장 믿어야 하고 가장 후한 상을 내려야 할 대상은 첩자다. 또 가장 은밀한 기밀을 부여받은 것도 첩자다.사람을 알아보는 뛰어난 지혜가 있는 자가 아니면 첩자를 활용할 수 없다. 인의(仁義)를 겸비해서 사람을 진심으로 복종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자가 아니면 첩자를 부릴 수 없으며, 미세한 곳까지 살필 줄 아는 명철한 판단을 가진 자가 아니면 첩보의 진실을 분간할 수 없다.미묘하고도 미묘한 것이 첩보 활동이다. 첩자와 첩보 활동이 소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첩보전은
미래를 통찰하고 토사구팽을 예고한 달관의 정치가, 경탄의 지략가 범려(范蠡-BC.536~BC.448년 추정)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의 정치가, 책략가로 자는 소백(少伯)이며 원래의 출생지는 초(楚)나라의 완지로 알려졌고 초나라의 완탁 또는 오호의 언덕에서 태어났다고도 하며, 자기 고향에선 미치광이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대부 문종의 눈에 띄어 월나라에서 구천(句踐)을 섬겼다.월절서(越絶書-중국 후한의 원강(袁康)이 지었다고 알려진 책으로 고대 오와 월의 흥망을 기록한 역사서)에는 초나라를 섬기던 문종(文鍾)의 눈에 띄어 초나라에 출
적의 형세에 알맞은 작전을 펼쳐 승리를 거두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승리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내가 승리할 때의 군의 형세는 알겠지만, 내가 승리하기 위해 유용한 방법의 형세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한 번 사용하여 승리를 거둔 방법은 다시 사용하지 않으며, 정세변화에 따라 무궁무진한 전술로 대처해야 한다.(‘손자병법’ ‘허실편’,)이 계책은 우선 전투에서의 승리가 늘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적 정세의 변화‧발전에 적응하여 끊임없이 전술과 전법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일체의 사물이 모두
‘반객위주’의 본뜻은 주인이 손님 대접을 잘못하여 오히려 손님의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다. 군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적진 깊숙이 들어가 작전하는 것을 ‘객’, 본국에서 방어하는 것을 ‘주’라고 한다. 두목(杜牧)은 손자의 공격과 방어에, 대한 주장을 해석하여 “아군이 주인이고 적이 손님일 때는 적의 양식을 끊고 퇴로를 지킨다. 만약 입장이 뒤바뀐 경우라면 그 군주를 공격한다.”고 했다. 주객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분석해보면, 거기에는 피동을 주동으로 변화시켜 전쟁의 주도권을 쟁취하는 용병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반객위주‘란 곧 피동적인 위
양기(梁冀-?~159년)는 후한의 인물로 자는 백탁(伯卓), 백거(伯車)‘ 또는 백단(伯丹)이며 양주(涼州) 안정군(安定郡) 오지현(烏枝縣) 사람으로 양상(梁商)의, 아들이다.그는 후한의 대표적인 간신(奸臣)이자, 권신(權臣)이며 외척을 이용한 간신 중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자신의 여동생인 양납(梁妠)을 순제(順帝)의 비(妃)로 바쳤다가 양납이 순제의 황후가 되면서 양씨 일족이 권세를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순제 붕어 이후에는 충제(沖帝), 질제(質帝), 환제(桓帝) 등 3명의 황제를 세웠다가 환제가 환관들과 연합하여 공격하자
전국시대 군사 사상가들의 중요한 용병사상이다. ‘필공불수’의 계략은 ‘손빈병법(孫臏兵法)’ ‘위왕문(威王問)’에 기록되어 있다. 대장 전기(田忌)와 손빈의 대화를 잠시 들어보자.전기 : 상과 벌은 용병에서 가장 긴요한 것입니까?손빈 : 아닙니다. 상은 병사들을 격려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듭니다. 징벌은 군기를 정돈하며 상급자들을 존경하고 두려워하게 합니다. 이 모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용병에서 가장 긴요한 요소는 아닙니다.전기 : 그렇다면 권(權)‧세(勢)‧모(謀)‧사(詐)가 가장 긴요한 것입니까?손빈 :
사람의 됨됨이를 안 연후에 사람을 알아볼 수 있고, 사람을 알아본 후에 사귈 수 있으며, 그 후에 사람을 쓸 수 있다.병길(丙吉)은 한 선제 때의 승상이다. 그의 수레를 끄는 마부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술에 취했다 하면 앞뒤 가리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한번은 술에 취해 승상의 수레에 구토를 한 일이 버려졌다. 그러자 승상부의 관리들이 그를 끌고 가 호되게 질책한 다음 쫓아버렸다. 이때 병길이 말했다.“술에 취해 실수한 것 가지고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누가 또 그를 받아주겠는가? 좀 참도록 하게. 겨우 수레 덮개가 더럽혀진 걸 가지고
신속함을 으뜸으로 삼는다.이 말의 근원은 『손자병법』 「구지편」의 ‘작전은 신속한 것이 으뜸’이라는 ‘병지정주속(兵之情主速)’에 있다. 『삼국지』 「위서 魏書‧곽가전 郭嘉傳」에 보면 “태조가 원상(袁尙) 및 삼군(三郡)의 오환(烏丸)을 정벌하고자 했다. 곽가는 ‘병은 신속함이 으뜸’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무릇 모든 용병 작전에서 선수로 상대방을 제압할 때도 신속함이 중요하며, 주동적인 공격에도 속도가 중요하며, 전기를 포착할 때도 빠름이 중요하다. 끈질기게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내선(內線) 작전에서도, 전투를 진행해야 하는
당나라 현종의 후궁. 양귀비는 이름이 아니라 양(楊)씨 성에 귀비(貴妃)라는 직함이 붙은 것이다. 그러니까 귀비 양씨의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다.본관은 포주(蒲州) 영락(永樂)이며 용주(容州)에서 출생했다. 17살에 현종의 제18황자인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가 되었다.그러나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황제의 뜻에 맞는 여인이 없어 물색하던 중, 수왕비의 아름다움을 진언하는 자가 있어 황제가 온천궁(溫泉宮)에 행행(行幸)한 기회에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수왕의 저택을 나와 태진(太眞)이란
고요한 군대가 승리 한다전국시대의 책으로 알려진 ‘울료자(尉繚子)’ ‘정권(政權)’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구절이 나온다.고요한 군대가 승리하고, 힘과 마음을 하나로 통일한 나라가 승리한다. 힘이 분산되면 약해지고, 마음에 의심이 생기면 배반한다.이 계략의 요지는 고요한 군대가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남자』에서는 “군대가 냉정‧침착하면 견고해진다.”고 했다. 또 ‘초려경략( 草廬經略)’ ‘상정(尙靜)’에서는 “무릇 3군이란 시끄러우면 혼란에 빠지고, 고요하면 잘 다스려진다.”고 했다. 『병뢰』 「정 靜」에서는 이
이백(李白-701~762)은 성당(盛唐)때 성기(成紀), 지금의 간쑤(甘肅)성 티엔수이(天水) 사람으로 출생지는 오늘날의 쓰촨(四川)성인 촉나라의 창명현(彰明縣) 또는 안서도호부(安徐都護府) 소속의 쇄엽성(碎葉城)에서 태어났다. 또한, 중종 신룡(神龍) 조에 촉의 검남도(劍南道)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鄕)으로 옮겨 산동(山東)에서 살았기 때문에 산동 사람이라고도 전해진다.자는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적선인(謫仙人)이다.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라 불렀고, 이백은 ‘시
‘손자병법’ ‘군쟁편(軍爭篇)’을 보면 “따라서 병은 속임수로 성립하고, 유리한 것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인다. 병을 나누기도 하고 합하기도 해서 임기응변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에 대해 당나라 사람 두목(杜牧)은 “적을 속여서 나의 정체를 모르게 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주를 달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의상(義賞)’에는 춘추시대 진(晉)‧초(楚)의 ‘성복(城濮) 전투’의 고사가 실려 있다.진 문공이 호언(狐偃)에게 물었다.“초나라 군대는 수가 많고 우리는 적은데,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겠소?”호언이 대답했다.“예의범절을
‘병경백자’ ‘갱자(更字)’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무(武)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쉬지 않고 계속 싸우면서도 병사들을 피곤하지 않게 하려면 오로지 교대시켜주는 것밖에는 없다. 내가 한 번 싸울 때 상대는 여러 번 대응하게 해서 적의 휴식을 피로로 바꾸어야 하고, 상대가 여러 번 싸울 때 나는 여러 번 쉼으로써 나의 피로를 휴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편안하면 이기고 지치면 진다. 국력을 바닥내지 않고 군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하고, 군대의 힘을 바닥내지 않고 전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승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쟁으로 얻은 정권은 전쟁으로 망한다는 말도 그에게는 예외였다.무수한 사람들이 남의 병권(兵權)을 탈취하여 자신의 권력을 집중시키고 공고히 했지만, 한 잔 술로 병권을 빼앗은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匡胤-927~976 재위 960~976)의 사례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성공하여 더욱 유명하다.조광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 조건과 그의 개인적 경력 덕분이다. 조광윤은 가난하고 천한 집안 출신으로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그다지 특출난 면이 없었다. 그러다가 곽위(郭威)의 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당시 상당한 병력을 보
군대의 형태란 적의 튼튼한 곳을 피하고 약한 곳을 공격하는 것이어야 한다.(‘손자병법’ ‘허실편’).즉, 주력이 있는 곳은 피하고 힘이 약한 곳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이를 ‘피실취허(避實就虛)’라고도 하는데, ‘회남자’ ‘요락훈(要略訓)’에서는 “튼튼한 곳을 피하고 빈틈을 찾는 것이 마치 양 떼를 모는 것과 같다”고 했다. ‘피실격허’를 운용하여 빈틈을 치면 튼튼함이 감소 된다. 공격을 가하는 쪽이 작전 목표를 선택하여 진공 노선과 주요 공격 방향을 확정할 때, ‘피실격허’를 잘 활용하면 그 작전은 노련한 백정이 소를 잡듯 순조롭고
자신의 가치를 알려 스스로 나서는 것도 처세의 한 방법이 되었다.모수자천(毛遂自薦)과 탈영이출(脫穎而出)이라는 고사성어에서 중요한 것은 인재의 관찰과 식별로서,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함부로 자만하지 말고 남을 경시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훈계하고 있다.진나라가 조나라의 도성인 한단을 공격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초나라로 보내 지원을 요청하면서 합종(合從)의 동맹(同盟)을 맺고 연합하여 진에 대항할 것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평원군은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식객 스무 명을 데리고 초나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평원군이 말했다.“평화로운 담판을
왼쪽을 견제하면서 오른쪽을 친다.고고학 발굴에 의해 죽간(竹簡)에 기록된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발견됨으로써 손자와 손빈이라는 두 인물의 실체는 물론 두 병서의 실존도 확인되었다. 이렇게 발견된 ‘손빈병법’ ‘객주인분(客主人分)’에 이런 대목이 있다.군사에서 상대의 의지(투지)를 뺏으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왼쪽을 견제하면서 오른쪽을 쳐 패배시키면 견제를 당하는 왼쪽에서는 구원에 나설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군대가 패하여 일어나지 못하고, 피하려 해도 소용이 없고, 가까이 있어도 수가 적어 활용하기에
흔히 개국시조(開國始祖)에는 신화(神話)가 만들어진다. 이는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다.‘생사는 운명에 달려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은 봉건시대의 미신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중국의 정통 천도관(天道觀)도 어떤 의미에서는 운명의 가치를 매우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운명관에 기초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신비한 색채로써 인물을 꾸미고 형상화했던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맹자가 제시했던 5백 년 주기의 역사 순환 발전론이다. 『좌씨전 左氏傳』=(공자의 『춘추』를 노(魯)나라 좌구명(左丘明)이 해석한 책)의 기록에 따르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