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도 칭찬과 아첨에는 약한 것이다.누구나 칭찬 듣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 말이다. 사탕 발림 같은 말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이는 때와 장소가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첨과 눈가림은 봉건시대 관료사회의 영원한 법보(法寶)이다.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이 두 가지 법보는 신기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이 법보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남을 원망할 자격이 없다. 이와 관련된 의미심장한 얘기가 있다.한번은 옥황상제가 어전회의를 열고 있을 때 관공(關
내가 싸우기를 원치 않을 때 땅바닥에 선을 그어 놓고 지키기만 하더라도 적이 나와 더불어 싸우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적이 의도하는 바를 어긋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손자병법』 「허실편」.)‘적이 의도하는 바를 어긋나게 만든다.’는 뜻의 ‘괴기소지’에서 ‘괴(乖)’는 ‘어긋남’을 뜻하며 ‘개변(改變)’의 뜻도 가지고 있다. ‘지(之)’는 ‘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일반적인 규칙을 벗어나 적의 의도를 어긋나게 하거나 바꾼다는 것이다.‘괴기소지’는 두 가지 방면의 내용을 포함한다. 하나는 상대를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즉,
인재를 얻으면 나라가 흥하고 인재를 잃으면 나라가 망한다.춘추전국시대에는 인재를 얻으면 나라가 흥하고 인재를 잃으면 나라가 망하는 현상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진(秦)나라이다. 진나라는 사방 수백 리가 채 안 되는 작은 나라였지만 천하를 손에 넣었다. 모두 서로 다른 시기마다 여러 문신과 무신들이 훌륭한 정책을 내고 실천한 덕분이다.특히 진나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들이 모두 다른 나라에서 온 인재였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법률을 개혁한 상앙(商鞅), “먼 나라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해야 한다
적으로 하여 제, 스스로 오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면 이득이 있을 것 같이 만들기 때문이고, 적으로 하여 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면 피해가, 있지 않을까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다.따라서 적이 편안하면 피로하게 만들고, 배부르게 먹고 있으면 굶주리게 만들고, 안정되어 있으면 동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 「허실편」.)‘적이 안정되어 있으면 동요 시킨다.’다는 뜻의 ‘안능동지’에서 ‘안(安)’은 울타리에 의지하여 수비하고 있는 적을 가리키며, ‘동(動)’은 움직이고 있는 적을 가리킨다.전쟁 경험으로 보면 움직이고 있는 적
작은 인재를 크게 쓰면 일과 사직을 위태롭게 한다.명 왕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유기(劉基)는 앞날을 예측하는데 아주 뛰어난 인물로, 그가 지은 『추배도 推背圖』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고 있다.그가 정말로 뒤로 3천 년, 앞으로 5백 년을 내다 볼 수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에게 사람을 알아보는 남다른 지혜가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한번은 주원장(朱元璋)이 유기에게 이선장(李善長)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이선장은 개국공신이자 원로로서 여럿의 대신들을 잘 조화시킬 수 있는 인물입니다. 단지 뜻은 큰데
『손자병법』 「계편」에서 말하는 ‘궤도 12법’의 하나다. [비이교지 참조]. 이것은 적장의 조급한 성격, 강한 자존심 따위와 같은 특징에 맞추어 ‘장수를 자극하는 ’격장술(激將術)‘을 운용, 고의로 도발‧자극‧유인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 지구전의 의도를 버리게 만들거나, 객관적 상황을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하거나, 맹목적인 행동을 저질러 불리한 조건에서 결전을 치르게 만드는 책략이다.『사기』의 기록을 보도록 하자. 기원전 632년, 진(晉)‧초(楚)의 성복 전투에서 초군이 패배한 원인의 하나는 초군의 주장이 진군의 감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인가?기원전 221년, 진왕 정은 6국을 완전히 합병하고 장기간 분열 상태에 있던 중원을 통일했다. 통일 후에 부딪힌 가장 큰 문제는 거대한 국가를 어떻게 통치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승상 왕관(王綰)은 국토가 너무 넓어 관리가 어려운 만큼 주대처럼 여러 자제들을 분봉하여, 다스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하들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박사 순우월(淳于越)이 진왕에게 말했다.“은주(殷周)가 천 년이 넘도록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천하를 자제들과 공신들에게 분봉했기
이노치적(以怒致敵)이 말의 어원은 『역대명장사략 歷代名將事略』이란 책에 나온다.적을 속이는 방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방법의 하나는 상대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인데, 움직이면서도 마치 조용히 있는 것처럼 꾸며 적으로 하여 아군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한다.또 하나는 어떤 모습이나 행동을 보이는 것인데, 동쪽에 욕심이 있으면 서쪽에 모습을 나타내거나 움직이고, 서쪽에 욕심이 있으면 동쪽으로 움직이거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또 하나는, 상대로 하여 무엇인가를 드러내도록 자극하는 것인데, 감정을 자극해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인가?『역경 易經』에서는 “음양이 고르지 못해 일이 잘 안 풀리는 비괘(否卦)가 극에 이르면 음양이 잘 조화되어, 모든 일이 형통한 태괘(泰卦)가 찾아오고, 소인이 극성하여 군자를 잃게 되는 박괘(剝卦)가 극에 달하면 기운이 순환하는 복괘(復卦)가 찾아온다.”라고 만물 순환의 원리를 밝히고 있다.이것이 중국 봉건 관료사회의 운행 법칙이요 처세의 도리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못 되기 때문에, 부귀영화를 포기하지 못해 이름과 몸을 망치고
군의 행동에는 일정불변의 태세가 없다. 이는 물에 일정한 형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적의 허와 실에 따라 전략을 변화시켜 승리를 취할 수 있는 자를 용병의 신이라 한다.중국의 철학 사상 가운데 ‘화로 말미암아 복이 되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다.’는 논리가 있듯이, 군사 영역에서는 ‘적으로 말미암아 승리한다.’든지 ‘적의 변화에 따라 나를 변화시킨다.’는 ‘인적제변’과 같은 계략이 흔히 활용되고 있다. 이는 적의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대책을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 적 정세의 허실과 변화에 의거하여 그에 따라
중국에 ‘한보 양보하면 하늘과 바다가 열린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우리의 일과 생활 속에는 양보가 승리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진심으로 양보한 것이건 아니면 작전상 후퇴이건 간에 어차피 한 번 양보한 사람은 직장이나 관직에서 훨씬 운신의 폭이 커지기 때문, 이다. 중국 역사에서 이처럼 한보 양보하여 하늘과 바다를 열었던 전형적인 예가 바로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이다.조(趙)나라 말기, 초나라는 진(秦)나라의 장군 백기(白起)에게 패하여 영도를 잃고 천도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제(齊)나라는 연(燕)의 장군 악
『자치통감』 「진기 晉紀」에 나오는 일이다.303년 7월, 진(晉)의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은 도독 장방(張方)으로 하여 함곡관(函谷關-지금의 하남성 영보 경내)에서 낙양으로 진공케 했다. 진의 혜제(惠帝)는 좌장군 황보상(皇甫商)을 시켜 이 공격을 막도록 했다. 몇 차례 전투를 치른 끝에 황보상은 패배했고 장방은 승기를 몰아 낙양으로 진군해왔다. 이에 황보상은 혜제에게 몸소 출전할 것을 권했다. 혜제는 황보상의 말을 받아들였다.장방이 이끄는 관병들은 멀리서 혜제가 앉아 있는 수레를 보자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쳤다. 장방이
크게 한탕하고 목숨까지 잃은 것이 잘한 것인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다.그녀는 화양부인을 만나 여불위가 가져온 선물을 전하고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동생을 설득했다. 화양부인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던 차에 순순히 언니의 말에 동의했다.화양부인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태자 안국군에게 이인의 귀환을 간청했고, 안국군도 이에 동의하여 여불위에게 그를 데려올 방법을 연구하라고 했다. 화양부인은 몰래 여불위에게 안국군이 이미 이인을 데려다 적자로 세울 것을 결심했다고 전하면서, 이인의 형제들이나 조나라가 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당분간
적의 의도에 따르는 척한다.용병의 요점은 적의 의향을 신중하고 자세히 살피는 데 있다. 적 전체를 상대로 작전 계획을 세워 천 리 먼 곳에 있는 적을 쳐부수고 장수를 죽일 수 있다. 이를 두고 교묘한 방법으로 일을 성취한다고 하는 것이다.이 계략은 적의 의도에 따르는 척하면서 대세의 흐름을 좇는 것이다. ‘잡으려면 잠시 놓아주라’는 ‘욕금고종(欲擒故縱)’의 계략을 아울러 구사하면서 적의 행동을 극단으로 치닫게 유도하여, 잘못을 저지르게 한 다음 병력을 집중시켜 진군하는 것이다.(‘욕금고종’ 참조) 조조는 이에 대해 “적이 전진하려
크게 한탕 하고 목숨을 잃은 것이 잘한 것인지는 여전한 의문이다.세계에서 장사를 가장 잘하는 민족은 어느 민족일까? 많은 사람이 유대인이야말로 셈이 빠르고 철저하여 상업적 수완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고, 중국은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경시했던 만큼 경제활동에 가장 둔한 민족이라고 말한다.사실 고대 중국의 상업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오히려 상인들을 사회의 해충, 즉 노동하지 않고 기생하는 존재로 치부했던 것이 중국의 전통적인 관념이었다. 상인들은 아무리 부유하다 해도 청빈한 서향세가(書香世家.-지식인 집안을 일컬음)의 제자들을 압
적을 유인하여 공고한 진지를 벗어나게 한 다음, 미리 마련해 놓은 전쟁터로 끌어들여 섬멸한다는 계략이다. 이 계략은 ‘포위를 하려면 반드시 구멍을 마련해 놓고 포위하라’는 ‘위사필궐(圍師必闕)‘과 비슷하다. 이것들은 둘 다 호랑이를 산으로 놓아주는 척 거짓으로 살길을 남겨놓고 은밀히 함정을 마련하는 계략이다.초나라 목왕(穆王)이 정(鄭)을 정벌하려 했다. 정나라 목공(穆公)은 진(晉)에 구원을 요청하는 한편, 초나라 군대를 막기 위해 출전했다. 그는 견고한 성에 의지해 굳게 지키고 나가 싸우지 말라고 장수들에게 당부했다. 초군이 연
『손자병법』 「계편」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음미해보자.적을 능숙하게 조종할 줄 아는 자는 아군의 태세를 거짓으로 불리하게 만들어 적이 반드시 그 책략에 걸려들게 하고, 적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척하여 적이 그것을 가지려 하게 만든다. 작은 이익을 미끼로 삼아 적을 움직이게 만들어놓고 기습할 순간을 기다린다.이 책략은 적을 조종하여 유인하는 방법이다. 작은 이익을 미끼로 적을 움직이게 한 다음 틈을 엿보다가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손자는 군사행동이란 “그 기세가 맹렬하고 절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리동지, 이졸대지’는 바로 맹
지피지기(知彼知己)란 인심을 아는 것이다.『손자병법』에서는 병가의 작전 실천을 일곱 가지 분야에서 개괄하고 있는데, 이를 ‘모병칠법(謀兵七法)’이라 부른다. ‘칠법’을 순서대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1. 대군속전(大軍速戰) 대규모 작전의 기본 원칙으로,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교전할 때에는 속전속결로 싸움을 끝내야 한다.2. 벌모위상(伐謀爲上) 싸움에 있어서 힘보다 지모를 중시하는 전략으로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최선의 책략으로 평가한다.3. 지피지기(知彼知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으로 각종
이는 강적이 공격해올 때 계획적으로 일부 지역을 포기함으로써 적을 아군의 포위망 속으로 깊숙이 유인한 다음 섬멸하는 계략이다.기원전 632년, 진(晉)‧초(楚)의 성복(城濮) 전투에서 진군은 90리를 퇴각하여 적을 깊숙이 유인, 초나라 장수 자옥(子玉)이 이끄는 군대를 대파했는데 이것은 바로 ‘유적심입(誘敵深入)’의 계략을 체현한 본보기였다.(퇴피삼사 참조)1643년 5월, 이자성(李子成)은 양경(襄京)에서 군사 회의를 소집하여, 상대와 자신의 형세를 분석하고 전략 계획과 진군 노선을 연구했다. 그 결과 관중을 취한 다음 산서를 공
장군이 만군(萬軍) 위에 있다면 진정한 모사는 모든 장군 위에 있다.한조 말기, 조조는 중원 일대를 평정한 다음 한발 더 나아가 원상(袁尙)과 삼군의 오환(烏丸을 토벌하여 후환을 없애려 했다. 그의 수하에 있던 장수들은 유표(劉表)가 유비를 보내 허창을 습격하여 조조를 토벌하려 들 것을 걱정했다.그러나 조조의 모사 곽가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곽가가 조조에게 말했다.“조공의 위세가 천하를 뒤흔들고 있는데도 오랑캐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믿고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이들을 기습 공격하면 어렵지 않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