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권력이 부풀린 서훈등급...”사상·이념의 족쇄 풀고 재평가를”

올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가 큰 해다.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민족사의 획기적 사건이지만 거기서 활약한,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고 오도된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역사학계가 본 우리 독립운동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김구·안창호·안중근을 꼽았고 고평가된 인물로는 임병직과 이승만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약산 김원봉과 박헌영을 재평가해 독립운동사에서 복권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독립운동 백 년의 역사에서 천년의 미래를 내다 봐야 한다는 의미다.

역사학계의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사상과 이념의 족쇄에서 독립운동가들을 풀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 민족주의자, 자유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여부를 떠나 ‘한국의 독립과 민족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최우선 기준에 놓고 평가해야 한다고 역사학계 전문가들이 24일 서울신문 심층 설문 조사에서 밝혔다.

또한 뜨겁게 불붙고 있는 남북 화해 분위기를 반영하고 언젠가는 이루어질 남북통일에 대비하고자 우파 독립운동사 위주로만 진행됐던 독립운동의 연구 범위도 전 민족적 차원으로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독립운동사에서 배제된 김원봉 한국 독립 위해 무엇을 했는지 평가해야

역사학계 전문가들은 김원봉(1898~1958)과 박헌영(1900~1956)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계열 활동가들을 독립운동사에서 복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원봉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던 1918년 중국 난징의 진링대학(현 난징대학)에 입학한 뒤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조선 같은 약소국을 돕지 않을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무장투쟁가의 삶을 선택했다.

이듬해 ‘의열단’을 창단하고 광복을 맞아 한국에 돌아온 1945년까지 26년간 일제와 끊임없이 맞서 싸웠다. 조선총독과 친일파, 한국인 밀정을 처단하고자 의열투쟁을 진두지휘했고, 1938년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첫 한인 무장세력으로 인정받은 ‘조선의용대’도 세웠다.

이 매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 작가는 “만약 그가 해방 뒤 ‘친일 경찰’ 노덕술(1899~1968)에게 치욕스런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면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덕술의 고문은) 일부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보다 우위에 섰던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하는 뼈아픈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김원봉은 해방 뒤 북한 정권 수립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배제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후대에 만들어진 시각으로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든지 상관없이 해방을 맞은 1945년까지 무엇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계,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고평가된 인물로 임병직과 이승만

역사학계에서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고평가된 인물로 임병직(1893~1976)과 이승만(1875~1965)을 지목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정권을 쥔 이들이 자신과 측근의 공적을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지적이다.

임병직은 이승만이 미국에 머물던 시절 그를 보좌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을 지냈고 해방 뒤 외무부 장관과 주인도 총영사 등을 맡았다. 박정희(1917~1979)의 5·16 쿠데타를 지지했고, 사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에 추서됐다.

그에 대한 서훈등급을 두고 ‘정치적 처세의 결과물’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홍선표 하나역사연구소장은 “임병직은 이승만의 비서 일을 한 것 말고는 한국 독립에 크게 기여한 게 없다. 학계에서는 ‘5등급 정도가 적당하다’는 평가가 많다”고 했다.

이어서 “그럼에도 그가 김구, 윤봉길 등과 같은 반열의 유공자가 된 것은 1976년 서훈 심사 당시 (임병직이 지지선언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 권력에 의해 포상 체계가 흔들린 대표적 사례로 반드시 거론돼야 할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역사학계는 우리 독립운동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김구(1876~1949)와 안창호(1878~1938), 안중근(1879~1910)을 꼽았다. 외국인으로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와 장제스(1887~1975), 후세 다쓰지(1880∼1953)를 들었다.

스코필드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감리교 선교사로 1919년 일제의 제암리 학살사건 참상을 전 세계에 타전해 일제의 만행을 알렸다. ‘석호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3·1 운동 민족대표 제34인’으로도 불린다. 후세는 일본의 인권변호사로 박열(1902~1974) 등 항일운동가들을 변론하며 한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천년의 미래를 보고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연구 풍토 마련해야

아울러 역사학계에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진단해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연구 풍토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내 언론 역시 일회성 100주년 기획들로 끝내지 말고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홍선표 하나역사연구소 소장은 “역사의 성과는 (국가나 언론의) 각종 기념행사나 기획기사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자료를 어렵게 발굴해 밤새워 연구하는 외로운 학자들에 의해 피어나는 것”이라 했다.

이어 “우리 역사학계 연구 수준은 매우 미약하다. 인문학이 고사 위기인데 역사학계 역시 마찬가지다. 밤낮 없이 연구실에 처박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열정이 피어오르게 할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가 1932년 윤봉길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와 한국전쟁 등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아직도 행방을 모른다. 정부는 (일본이나 북한 등과 교섭해) 이것부터 찾아야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승만, 대통령 재임 중 1급으로 ‘셀프 서훈’ 이회영·이상룡·유관순 등 3등급에 거쳐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독립유공자 포상이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사이 상당수 자료가 사라져 지금도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아직도 3·1운동, 독립운동과 관련해 포상을 못 받은 분들이 다수다. 보훈처 등에서 연구를 지원한다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무질서한 서훈 체계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독립운동가 서훈 체계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한민국 건국훈장은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웠거나 국기(國基)를 다지는 데 공적이 있는 자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장(1등급)과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 등 5단계로 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보훈처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남성 1만 5180명, 여성 357명 등 모두 1만 5537명이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가산을 모두 팔아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1867~1932),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1858~1932) 등이 3등급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승만은 대통령 재임 중 자신을 1급으로 ‘셀프 서훈’해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며 “정부는 독립운동 주동자 가운데 거사를 벌이다가 죽지 않으면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건 아니다. 단순 정량 평가가 아닌 정성 평가를 통해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도 재조명 되고 있다. 건국훈장 1등급(대한민국장)과 2등급(대통령장)인 독립운동가는 각각 30명, 92명. 이 중 여성은 딱 두 명이다. 1등급은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의 아내 송미령(쑹메이링), 2등급은 영화 ‘암살’로 알려진 남자현 열사다.

3등급은 821명 중 10명. 권기옥·김마리아·김순애·박차정·방순희·안경신·오광심·유관순·이신애·이애라 열사. 이 중 한 눈에 들어오는 건 유관순이란 이름 석 자뿐이다.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 등에 대해  서훈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법안이 발의됐다.

미국 화가 모린 개프니 울프슨 씨가 그린 유관순 열사의 모습. 태극기를 품에 안은 유관순 열사가

천국의 문에서 걸어 나오는 듯한 모습이다. 사진= 프록시 플레이스 갤러리

민주당 윤후덕 의원은 ‘상훈법’을 개정해 서훈대상자의 서훈 종류 또는 등급을 달리 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서훈을 변경할 수 있도록 지난 19일 개정안을 발의했다.

윤 의원은 “유관순 열사 등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면 늦었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3·1운동 100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번 법안 발의를 계기로 독립유공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재검토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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