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 허위선생 추모제 / 장세용 구미시장 제공

[뉴스프리존,구미=고경하 기자] 구미시(시장 장세용)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왕산(旺山) 허위선생의 기념관에서 1일 추모제를 거행했다.

허위선생은 구미 임은리에서 허조(許祚)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왕산(旺山)이며, 김해가 본관이다. 작은 아버지 해초공(海樵公)과 맏형 방산공(舫山公)의 가르침을 받았다.

1896년 3월 일제에 의한 명성황후의 시해와 단발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을미의병 때 선생도 김산(金山, 현 김천)에서 항일 의병(義兵)의 기치를 들었다. 참모장으로 참가한 김산의병은 충북 진천까지 진격하였으나 고종(高宗) 임금의 밀서에 따라 의병을 해산하였다.

구미시장 장세용과 왕산 허위자손 / 구미시장 장세용 제공

1899년~1904년 벼슬에 나아가 평리원 재판장(平理院 裁判長), 의정부(議政府) 참찬(參贊), 비서원(秘書院) 승(丞) 등을 역임하였다. 1904한일의정서가 강제로 조인되고, 일제의 침략 야욕이 드러나자 전국에 ‘배일통문’을 돌려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고 전국민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또 친일매국단체인 일진회가 조직되자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였다. 1905년 1월 일제의 헌병대에 구금되었다가 며칠 뒤 관직을 사임하고 석방되었다. 1905년 3월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격문을 살포하여 일제 헌병대가 4개월 동안 구금하고 회유하였으나 굴하지 않았다.

1905년 7월 일제 헌병의 감시 아래 강제로 귀향하여, 김산 지례(知禮)에 은거(隱居)하였다. 1907년 9월 경기도 연천, 적성, 철원 등지를 무대로 의병을 일으켜 일제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친일매국분자를 소탕하는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국 각지의 의병 1만여 명이 모여 13도 연합의병창의군(13道聯合義兵倡義軍)을 결성하였다.

구미시장 장세용과 시민 / 구미시장 장세용 제공

1908년 1월 조선을 통치하는 일제의 본부인 통감부(統監府)를 치기 위해 선발대 300명으로 서울로 진격하였으나, 본대의 도착이 늦어져 패퇴하였다. 1908년 5월 서울진공작전 이후 임진강과 한탕강 유역을 무대로 항일전을 벌여 각지에서 일제의 군대를 격파하고 매국분자를 처단하다가 일제 헌병부대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1908년 9월 27일 항일의병의 기개를 만방에 떨치고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시며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殉國)하셨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이 추서(追敍) 되었다. 1966년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 도로를 왕산로(旺山路)로 제정하여 선생의 구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3·1 만세운동을 맞아 왕산 허위 선생을 재조명하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과거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구미시는 일제에 맞선 구국 항일운동의 본고장이다.”며"미래 100년의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구미시가 성장하는데 기폭제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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