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는 곳에 던져진 뒤라야 생존할 수 있고, 죽음의 땅에 빠진 뒤라야 살 수 있다.”

대단히 극적인 이 말은 ‘손자병법’ ‘구지편’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로써 움직이게 하되 말로 이르지 말아야 하며, 유리한 것으로써 움직이게 하되 해로운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망하는 곳에 던져진 뒤라야 생존할 수 있고, 죽음의 땅에 빠진 뒤라야 살 수 있다. 무릇 전군을 위험한 전투지에 빠지게 한 뒤라야 병사들로 하여금 제각기 결사적으로 분전하여 승리를 결정짓게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손자는 ‘죽음의 땅’인 ‘사지(死地)’란 “빨리 결전하면 생존할 수 있으나 빨리 싸우지 않으면 망할 위험이 있는곳”이라 했다. 손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때로는 부대를 절박한 지역에 몰아넣음으로써 오히려 승리를 얻고 군대를 보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살육의 상황에서 싸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고 싸우면 꼭 죽지 않아도 되는 경우라면, 부대를 격려해서 사투의 정신을 갖고 싸움에 임하게 함으로써 승리를 거둘 수 있다. 또 손자병법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이는데, 부대가 본국을 떠나 적국에 진입해서 어떻게 작전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다. 그 중에는 부대를 사지에 몰아넣어 승리를 거두는 계략도 있다.

군대를 벗어날 수 없는 위기의 땅에 투입하면 군사들은 죽을지라도 달아나지 않는다. 죽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얻을 게 없기 때문에 병사들은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

군사들이 극히 위험한 처지에 빠지면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고, 벗어날 길이 없으면 단결이 더욱 공고(鞏固)해진다. 적지 깊숙이 들어가면 서로서로를 묶어놓은 것처럼 도망치지 않으며, 막다른 길에 몰리면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싸우지 않을 수 없는, 별다른 출구가 없는 상황에 놓이게 함으로써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정신을 가지게 하여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떤 적인들 이기지 못하겠는가?  병사들은 한마음이 되어 고군분투한다.

‘오자병법’ ‘치병(治兵)’에서는 “필사의 정신이면 살고 요행이 살기를 바라면 죽는다”고 했고, ‘백전기법’ ‘사전 死戰’에서는 “적이 강성해서 아군이 머뭇거리며 움직이려 하지 않으면 사지로 몰아넣어야 한다. 살려고 하는 마음을 끊어버리면 필승”이라고 했다.

또 ‘울료자’ ‘제담(制談)’에서는 도적 하나가 검을 휘두르며 저잣거리를 활개치고 다니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숨거나 도망치는 것은 도적이 용감하거나 다른 사람이 그만 못해서가 아니라 ‘필사’와 ‘필생’이라는 두 가지 정신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오자병법』 「여사 勵士」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둑이 광야에 숨었다고 할 때 천 명이 그를 잡으러 쫓아갈지라도 저마다 무서워 벌벌 떠는데, 그것은 언제 어디서 도둑이 나타나 달려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숨을 내놓은 한 명이 천 명을 두려움에 떨게할 수 있다. 5만의 군사를 이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들로 만들어 그들을 지휘하며 적과 싸운다면 아무리 강적이라도 당해내지 못한다.

부대를 ‘사망의 전투지로 몰아넣는 것’은 전쟁에서 지휘관이 계획적으로 취하는 군사 행동의 하나다. 전쟁사에서 이 계략으로 승리를 거둔 예들은 적지 않다.
기원전 204년, 한신(韓信)이 이끄는 군대는 조나라에서 싸우고 있었다. 20만 조나라 군대는 정형구(井陘口)를 지키고 있었고, 한신의 군대는 열세에 놓여있었다. 한신은 병사들을 분전케 하기 위해 일부러 위험한 상황으로 군대를 몰아넣기로 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한신은 그 유명한 ‘배수의 진’을 쳤다. 그 결과 한나라 군대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기원전 206년, 항우(項羽)는 부대를 필사의 정신으로 싸우게 하기 위해 병사 1인당 단 3일분의 식량만을 휴대케 한 다음 가마솥을 부수고 타고 온 배를 침몰시켰다. 병사들은 과연 살아 돌아갈 생각을 버리고 필사적으로 싸워 진나라 군대를 대파했다.

이정랑 언론인(중국 고전 연구가)

이 계략은 부대를 사지에 몰아넣어 생존을 구하는 것으로, 손자가 처음 제창했다. 그러나 이것은 특수한 조건하에서만 실행 가능한 계략이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위험천만한 생사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부대가 곤란을 극복하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갖추려면 말에 시체를 싣고 돌아올 각오가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망의 땅에 놓이게 되면 죽을힘을 다해 분투해야 한다. 이런 군대는 형세가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에서는 더욱 확실한 승리를 거둔다.

우리는 이 계략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우선 이 계략을 사용하는 데는 조건이 따른다. 시간‧장소‧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 마속(馬謖)은 가정(街亭)을 지키고 있었는데, 제갈량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는 부장 왕평(王平)의 건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산 위에 진을 쳐야 적에게 포위를 당하더라도 ‘사지에 빠진 뒤에라야 살 수 있다’는 ‘함지사지연후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위나라 장수 장합(張郃)은 이런 지리적 조건에서 마속의 약점을 이용했다. 먼저 물길을 차단한 다음 포위망을 좁혀 간 것이다. 산 위에서 식수가 끊긴 채 포위당한 마속의 군대는 결사의 정신조차 불러일으킬 수 없이 그냥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병사들의 용감한 정신은 전쟁의 성질과 군대 통솔의 본질로 결정된다. 정의로운 전쟁이건 진보적인 군대이건 간에 부대가 강대한 전투력을 갖추려면, 강력한 정치‧사상 교육을 통해 평소에 엄격하게 훈련시켜야지, 그저 무작정 사지에 몰아넣어 전투 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은 오래 가지도 못할뿐더러 성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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