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항소심에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나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엇갈린 與野 정치권 반응, "존중하나 실망"…"국민기만"
민주당 "국민 실망…항소심 신속히 안 돼 아쉬움"
바른미래 "국민들 '보석제도 불공정 운영' 비판"
평화당 "유권석방에 국민 울화병 지수 높아져"
정의당 "MB 꼼수에 놀아난 재판부 무능 드러나"

1992~2007년 다스를 실소유하면서 비자금 약 339억 원을 조성(횡령)하고, 삼성에 BBK 투자금 회수 관련 다스 소송비 67억 7000여만 원을 대납하게 하는 등 뇌물‧횡령 등의 16개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이명박(78) 전 대통령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석방됐다.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된 지 349일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6일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그러면서 “구속 만료 후 석방되면 자유로운 상태에서 주거 제한이나 접촉 제한을 고려할 수 없어 증거 인멸의 염려가 높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고령에 건강문제로 보석을 허가해 준 것은 아니란 점을 재차 강조했다. 또, 법원은 석방 후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외출은 물론 접견‧통신 대상도 제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48분께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왔다. 이날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석방을 허가하며 여러 조건을 내세웠다. 우선 이 전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만 생활해야 한다. 외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외부 진료가 필요할 경우 매번 병원과 사유를 기재해 보석 조건변경 허가신청을 받아야 한다. 배우자와 직계 혈족 및 그 배우자, 변호인 외에 외부인과 접촉할 수 없다. 또 매주 1회씩 시간별 활동내용을 법원에 보고해야 한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조건을 어기면 다시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전 대통령을 태운 제니시스 차량은 약 22분 뒤인 오후 4시10분께 자택에 도착해 곧바로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재판부의 보석 허가 조건을 듣고 “증인 이런 사람들은 구속되기 이전부터 오해의 소지 때문에 하지(만나지) 않았다”며 “철저하게 공사를 구분하고 (조건도) 숙지했다”고 답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판부가 제시한 보석금 10억원 중 1%인 1000만원을 내고 나왔다. 현행법상 구속피고인이 보석 보증금을 전부 내기 어려우면 유가증권이나 보증서를 대신 제출할 수 있다. 접견 제한 등 법원의 보석 조건을 감안해 기자회견 등을 통한 입장표명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구속 기간이 다음 달 9일 자정을 기준으로 만료되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전까지 심리를 마무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 석방 결정에 대해 검찰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법정에서 보석에 반대하는 의견을 충분히 개진했다”며 “지금 추가로 밝힐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최근 항소심 재판부가 새로 구성돼 구속 만기 날에 판결을 선고한다고 가정해도 저희 재판부에게는 고작 43일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며 "종전 재판부가 증인신문을 마치지 못한 증인 숫자를 감안할 때 항소심 구속 만기인 4월8일까지 충실한 항소심 심리를 끝내고 판결을 선고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지난 1월29일 재판부 변경으로 구속 만기일까지 충실한 심리가 힘들고, 수면무호흡증 등으로 돌연사 위험도 있다며 항소심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검찰은 재판부 변경은 보석 허가 사유가 될 수 없고 건강상태도 위급하지 않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보석을 허가하기 위해 ▲보증금 10억 원 납입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 ▲피고인 배우자와 직계혈족, 혈족배우자, 변호인 이외의 접견 및 통신 제한(이메일, SNS 포함) ▲매주 화요일 오후 2시까지 지난주의 시간활동내역 보고 등을 조건으로 걸었다.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항소심에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나 서울 동부구치소를 빠져나가며 측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됐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의 많은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 및 이 사건의 수사과정에 나타난 정황에 비춰 볼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으므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1심은 지난해 10월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자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7개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 원을 선고했다.

한편, 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하면서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국민적 실망이 크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다행스런 결정'이라고 밝히며 민주당의 반응에 대해 '무소불위 정당'이라며 공격을 가했다.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현안 관련 서면 브리핑에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나, 이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항간의 실소를 자아냈던 탈모, 수면무호흡증, 위염, 피부병 등의 질환을 보석의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며 "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1심 당시부터 무더기 증인신청 등으로 재판을 고의 지연시킨바 있음에도 법원이 신속하게 항소심 재판을 진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향후 재판 진행에 있어서는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더욱 엄정하고 단호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석을 조건부로 허가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고령과 병환을 고려할 때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만희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민주당의 반응에 대해 "다만 전직 대통령의 병환에 대한 호소마저 조롱하는 민주당의 치졸함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아울러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실망 운운하며 더욱 엄정하게 재판하라는 모습을 보며, 역시 법원 겁박도 서슴지 않는 무소불위 정당임을 실감한다"고 비판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이어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더욱 엄정하고 단호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라고 민주당이 요청한 것은, 부디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재판에 대해서도 잊지 말고 다시 한 번 강조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은 "구치소에서 석방됐다고 기뻐하지 말라"며 "국민의 눈에는 보석제도가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 브리핑을 통해 이 전 대통령 측을 향해 "증거 인멸은 꿈도 꾸지 말라”며 “법원의 허가 없이는 자택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직격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법원이 '거주와 통신을 엄격히 제한'하는 조건부로 이 전 대통령의 보석청구를 인용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제 이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재판을 준비하게 됐다"며 "미적대며 재판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은 횡령과 뇌물 혐의로 1심에서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은 당사자"라며 "법원은 앞으로의 재판과정도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민주평화당에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석방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문정선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자택과 통신제한이 붙은 조건부지만 이명박 석방이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은 작지 않다"며 "이명박의 돌연사 위험을 제거되고 국민의 울화병 지수는 높아졌다"고 비판했다.

문 대변인은 "유전무죄를 넘어 유권석방의 결과에 국민들의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면서도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는 판사의 법리적 판단이었길 바라며 항소심 재판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시 법정구속, 남은 형기를 채울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에서는 "주거·접촉 제한하는 구금에 준하는 조건부 보석이라고 하지만, 말장난에 불과한 국민 기만"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재판부가 증인을 심문하지 못한 것은 이명박 측 증인들의 의도적인 불출석 때문이다. 이미 항소심 재판부가 변경되기 이전에 신속한 재판을 진행했어야 하지만 '봉숭아 학당'급의 재판부로 인해 중범죄인의 석방이라는 기만적인 결과가 나왔다"며 "한마디로 이명박 측의 꼼수에 놀아난 재판부의 무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 말했다.

정 대변인은 그러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죗값을 치르지 않기 위해 수면무호흡증과 탈모 등 말도 안 되는 갖은 핑계로 보석을 시도했다. 이런 와중에 조건부 보석은 봐주기 석방으로 재판부와 보석제도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라 날을 세웠다.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항소심에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나게 되자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과 맹형규 전 의원,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측근들이 서울 동부구치소 앞에서 이 전 대통령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다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항소심에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나게 되자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이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측근들과 함께 서울 동부구치소 앞에서 이 전 대통령의 출소를 기다리며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항소심에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나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며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측근들과 인사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오후 당 미세먼지 대책특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결정에 대해 "지금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전 대통령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 건강관리를 잘 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도 "허가사유가 있었기 때문에 허가한 것으로 보인다. 법적 절차에 따른 결정이라 생각한다"며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당 전희경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이 전 대통령께서 노령이고 지병을 호소해온 만큼 이를 고려한 법원의 결정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죄 없는 MB를 1년 동안 구금하다가 오늘 석방한다고 한다"며 "만시지탄이지만 올바른 결정을 해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홍 전 대표는 이어 "석방 조건을 보니 통상 보석은 주거제한만 하는데 외출‧통신‧접견 제한까지 붙인 자택 연금이다. 이런 보석조건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지만 재판부도 오죽 고심했으면 그런 보석 조건을 붙였겠느냐고 이해하기로 했다"며 "2년간 장기 구금돼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 1부는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을, 석방 후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 접견·통신 대상도 제한하는 등의 조건으로 허가했다.

110억원대 뇌물 수수와 340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3일 새벽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나오고 있다./사진=장건섭 기자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29일 항소심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은 법원 인사로 항소심 재판부가 새로 구성돼 구속 기한인 4월 8일까지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기 어려운 데다, 고령에 수면무호흡증 등을 이유로 돌연사 가능성이 있다며 불구속 재판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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