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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은 정녕 경멸의 대상인가
  • 박종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09 11:54
  • 수정 2019.03.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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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린 지가 아무리 오래지 않다 해도 재벌이 그토록 밥맛없는 존재로 지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국가 장래를 위해 참으로 걱정된다.
어느 재벌 총수가 대기업을 적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경제단체 건물엔 ‘기업을 사랑해 달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적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게 저 정도로 기업에 대한 바깥 시선이 곱지 않으며 지탄의 소리가 높다. 그런가 하면 어떤 대학교수는 국민소득 수준을 밑바닥에서 상위권으로 끌어올려 잘 살게 만든 일등공신인 재벌을 턱없이 구박하는 건 온당치 않다며 재벌을 해체 하려다 국가의 부를 해체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세상엔 훌륭한 대기업과 존경할만한 위대한 기업가가 많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한텐 그렇지 못하다. 그런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긴 어렵다. 분명한 것은 설사 인재들이 변함없이 재벌 기업들로 몰려가 그들의 일생을 맡기고 야망을 불태우고 있지만, 재벌 기업과 재벌 총수에 대한 지탄은 매우 우려할 정도로 드높아만 가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재벌은 국가경제와 사회에 끼치는 해악 때문에 없어져야 할 존재로 낙인 찍혔다는 인식이 만연되고 있다는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과연 재벌은 마땅히 해체되어야 하는 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역시 오랜 세월 대기업서 경영진의 일원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을 강제로라도 개혁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동조자다.  그건 퍽도 어려운 국가과제다. 또한, 개혁이 해체를 의미해서도 안 되며, 그게 정부나 정치논리에 의해 강제돼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재벌의 개혁이 매우 시급하고 개혁하지 않는 재벌은 어떻게 해서든지 도태돼야 된다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다.

재벌 기업이나 그 총수가 저지른 잘못을 책으로 엮는다면 한, 두 권으론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 천민성과 부도덕함과 탐욕스러움을 말하려면 상스런 욕으로도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저들을 ‘×새끼’라 경멸해 침을 뱉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저들이 다 그럴 이야 없지만, 솔직히 우리한테서 참다운 기업가를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재벌 기업들이 저지른 가장 무서운 해악은 아마도 국가경제를 위기 속으로 빠트린 주범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부실기업 때문에 국가 부도위기가 닥치고 국민들한테 고통을 안겼다는 것은 쉽사리 용서하거나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다. 부실화된 은행의 정상화에 부어 넣은 엄청난 공적자금의 상당 부분이 기업한테 떼었거나 도산을 막기 위한 자금이었다. 기업이 정경유착하고 뇌물 먹이며 빚내다가 축재하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느라 결국 숱한 금융기관을 거덜 나게 만들었으며 종국엔 국가경제까지 위기에 빠트렸다. 

사진=gettyimages

그 때문에 결국 대량 정리해고를 불렀고, 죄 없는 직장인들을 졸지에 실직자로 전락시킴으로써 가계를 파탄시켜 가정을 비탄 속에 몰아넣고 사회 불안을 조장했다. 
그건 옛날로 말하면 나라를 ‘누란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대역죄를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옛날에서는 밀무역으로 상업 질서를 문란하고 국부國富를 불법하게 유출시킨 죄 만으로도 참수했으니, 국가를 파산지경으로 몰아간 기업들은 이를테면 참수형 감인 셈이다. 그 무엇보다도 용서받기 어려운 죄는 부도덕한 재벌과 무책임한 기업인 때문에 수많은 선량한 이웃과 그 가정이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일종의 의도된 반사회적 범죄나 진배없다.

재벌이 소유경영체제로 족쇄를 채워 전문경영자로 성장해야 할 인재들을 가신쯤으로 부리고 부패시켜 부도덕하게 타락시킨 것은, 국가 장래를 망치고 사회질서를 해치며 기업풍토를 오염시킨 통탄스럽고 무책임한 해악이다.
기업이고 금융기관이고 명예와 도의와 사명감을 헌신짝처럼 버린 채 황금만능주의와 출세주의의 노예가 된 부패하고 타락한 머슴 형 경영자들이 너무나 많다. 투명경영을 앞장 서 실천해야 할 임원들이, 수십 년간이나 떳떳치 못한 이득에 팔려 주구처럼 변태회계를 일삼았는가 하면, 비자금 챙기기나 내부자거래 등 온갖 탈법적인 짓거리를 도맡아 했다는 사실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할 만큼 예사가 되었다.

저들의 천민성은 학연과 지연을 따라 기업 내에 파벌을 조성해 연줄 없는 사원들한테 심한 소외감과 불이익을 주었다. 저들은 공동체의 윤리나 협동의 미덕을 무시한 채, 편짜고 이기적으로 유유상종하여 세력권을 쌓은 다음, 기업주를 주군으로 옹립해 권한을 휘두르고 이득을 챙겼다. 우리네 대기업엔 대낮에도 ‘디오게네스의 등불’을 켜 들고 들어가야 할 만큼 회계나 자금운용 등이 복마전이었다. 오죽이나 거기에 의로운 경영자가 없었으면 ‘소돔 성’처럼 도산이라는 멸망의 심판을 자초했겠는가. 

재벌 총수가 지향하는 경영이 잘못된 ‘부의 성 쌓기’였다면 거기엔 의당 목숨 걸고 쓴 소리를 하는 중역이 있어야 했다. 그런 올바른 정신과 혜안과 용기를 지닌 임원을 거느리지 못한 기업주는 아무리 부자였어도 하나 같이 언제 한 번 존경받은 적이 없고 불행했다. 그런 기업주한테 재물 부스러기나 받아 일신의 영달과 안일을 누린 임원들이란 기업이 위기를 만났을 때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건장한 거지’일 뿐이었다. 기업의 엘리트 전문가가 긴요하게 쓰일 이 시대에 저들 대부분이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지도 않고, 도덕적 해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천박한 충복일 뿐이라는 개탄을 사고 있다는 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저들 모두가 사원시절부터 간과 쓸개를 빼버리고 의기와 양심을 버린 채 비굴한 권력의 노예처럼 굴진 않았다. 저들로 하여금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충복처럼 굴게 만든 장본인은 전근대적인 황제경영을 일삼는 재벌 총수들이었다.

저들한테 회사 돈 비자금으로 훔치게 하고 수시로 부정한 돈을 챙기게 만들어 양심을 마비시키고 겉만 건장할 뿐 속은 비천하기 짝이 없는 수족으로 전락시킨 것은 전적으로 재벌 총수들의 부정한 탐욕이었다. 
국가의 운명을 개척하고 짊어질 인재들을 부패 시키고 타락 시키다니 그건 국가의 백년대계를 훼손하고 굴절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보다 더 사악한 해악이 어디 또 있을 건가.
재벌 기업이나 총수가 부와 권력을 소유하고자 종업원의 외경한 삶을 유린하고, 부정과 비리를 일삼느라 법을 어겼으며, 도덕적으로 타락해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회적 갈등과 노사 간의 대립을 야기 했으며, 급기야 기업에 대한 깊은 불신의 골이 패이게 만든 것은 중죄다. 

휴릿패커드회사가 훌륭한 기업인 것은, ‘우리의 존재함으로 해당 지역사회나 국가가 좀 더 나아지는 것을 추구한다.’는 대승적 기업철학 때문이었다.
빌 게이츠 같이 진정한 ‘창조적 자선’을 하는 ‘멋진 부자기업가 cool rich entrepreneur’가 우리한텐 없다. 우리네 대기업들은 번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답시고 거창하게 떠들 뿐 하나 같이 세금 물지 않는 ‘재단’ 만들어 재산을 옮겨 놓고 혈족이나 가신들한테 그 경영을 멋대로 주무르게 하고 있다.  

3대 재벌이라는 기업주가 변칙 상속으로 천여억 원이나 추징당하질 않나, 계열사 전화사채를 합법을 가장한 편법을 통해 증여받아 5년간에 무려 4조 원 대의 떳떳치 못한 재산증식을 하는 등,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해 축재에 혈안이 되어 돌아간다. 부당한 내부거래나 거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대금결제 따윈 문제의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만성화되었다. 계열 금융회사에서 고객 예탁금을 빼내다 계열사를 늘리거나 기업 지배력을 확장하는 뻔뻔한 짓거리까지 하 기에 이르렀다. 기업개혁이라는 살얼음판을 가면서도 한 손으로는 구조개선자금을 받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부정과 비리를 계속한 것이다.  

그처럼 재계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상도덕이 사라진 지 오래고 승리자가 정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며 극성스런 상혼만 판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기업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기업들은 갈수록 영악해질 뿐, 가치 지향적인 개혁에 등한한 채, 이른바 재벌들은 여전히 경멸받아 마땅한 짓거리들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기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는 이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 나라에 진정 존경할 수 있는 재벌은 언제 등장하려는지 모르겠다.

박종형 칼럼니스트  johnypark@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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