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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평전' 통해 역설, 윤봉길 의거 김구 지시 아니다. '도시락' 아닌 '물통' 폭탄"
  • 정수동 기자
  • 승인 2019.03.10 00:04
  • 수정 2019.03.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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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環)."

일본의 제국주의 광풍이 맹위를 떨치던 1932년 4월 29일, 한 조선 청년은 중국 상하이의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내던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나이 고작 스물다섯 살 이 폭탄 투척으로 일왕 생일과 전승 축하 기념행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혼과 기상을 일깨워준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 우리는 그를 얼마나 상세히, 그리고 정확히 알고 있을까? 의거 당일에 던진 폭탄만 해도 '도시락 폭탄'이라는 말과 '물통 폭탄'이라는 말로 엇갈리고 있다.

이태복 매헌 윤봉길 월진회 회장은 '윤봉길 평전'을 출간해 '도시락 폭탄'설, '김구의 행동대원'설 등 일부 견해에 대해 "이는 허구"라며 제동을 건다. 2002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저자는 윤 의사가 던진 것은 도시락 폭탄이 아닌 물통 폭탄이었으며, 윤 의사가 백범 김구의 지시에 따라 거사를 한 행동대원이었다는 주장 역시 잘못된 허구였다고 밝힌다.

책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행동대원 프레임'이다. 이 같은 견해는 '백범일지'에 근거하는 것으로 상하이 거사의 주모자는 김구 선생이고 윤봉길 의사는 그 지시에 따라 폭탄을 투척한 행동대원이었다고 본다.

저자는 "김구 측근으로부터 나온 '프레임'을 명확한 근거로 바로잡고 싶어 이 책을 집필했다"며 "4.29 상하이 폭탄 투척 의거는 윤 의사의 주체적 독립전쟁 선포였음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행동대원 윤봉길 프레임'이란 백범의 측근 그룹이 김구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고 도산 안창호 등에 집중되는 중국 측의 후원을 자신들에게 돌리려는 책동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이어 윤 의사의 살신성인 투쟁 의지, 안창호 선생 등 상하이 독립지사들의 노력, 김구 선생의 적극적 안내가 어우러진 의열투쟁이었다고 정리한다.

윤봉길 평전

 '도시락 폭탄'설에 대해서도 의거 현장에서 윤 의사가 실제로 던진 것은 물통 폭탄이었다며 "이 물통 폭탄을 먼저 던지고 나서 도시락에 숨긴 폭탄을 더 던지려 했으나 체포되고 말았다"고 밝힌다. 이 회장은 "사소한 문제로 보이지만 우리는 물통 폭탄과 도시락 폭탄의 간극만큼이나 윤 의사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안타까워한다.

충남 예산 출신인 윤 의사는 1929년 자력갱생의 취지로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문맹 퇴치 운동과 농촌계몽 운동에 앞장서오다가 그해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 등에 충격받고 망명길에 올라 만주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저자 역시 예산중학교 2학년 때 굴욕적 한일회담 규탄 시위와 윤봉길 의거일의 '군민 기념일' 제정 서명운동에 참여하며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사형 구형을 받은 뒤 7년 4개월 동안의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윤봉길 평전'은 '도산 안창호 평전', '토정 이지함'에 이어 저자가 세 번째로 펴낸 인물 평전이다. 동녘 펴냄. 332쪽. 1만6천원.

정수동 기자  3658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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