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태어나 광양에서 자란 나에게 광양보건대는 그야말로 각별하다.

내가 보건대의 총장 직을 맡게 된 것이 이 대학에 애착을 갖는 이유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 대학은 나에게 아픈 손가락처럼 다가왔다. 때때로 진로를 고민하는 어린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항상 보건대에 진학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서장원 광양보건대 총장

보건대에서 공부하면 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차별화된 역량을 갖출 수 있고, 지역대학이라 경제적인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역 학생들에게 보건대는 더없이 좋은 인생 성공의 활로가 될 것이라 믿었다. 자랑이었던 보건대가 설립자의 비리문제로 인해 어려워지더니 해가 갈수록 자꾸 야위어가고 있다.

대학을 살려보겠다는 대학 구성원들의 고군분투가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했다. 광양사람으로서 광양을 위해 무엇인가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오던 터였기에, 우리 지역을 위해서라도 아픈 손가락인 보건대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내가 이 대학 총장에 도전하려고 마음을 굳힌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최근 들어 지역 인사를 만나거나 언론과 접촉할 때면 보건대와 한려대를 통합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때마다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응대했다. 그런데 지난 3.20. 열린 광양시발전협의회 도중 한려대 총장이 공개적으로 보건대와 한려대의 통합을 거론하는 일이 있었다.

당나라 이백도 아닌 내가 언제까지 미소만 지으며 대답을 미뤄둬서는 안 될 상황이 온 것이다. 이왕 이 사안에 대해 대답을 하려면 당사자에게만 아니라 지역 시민 모두에게 보건대 총장으로서 정확한 의사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지면을 통해 뜻을 밝히는 것이 현명하리라 판단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던 대학과 총장이 되어 들여다본 대학은 많이 달랐다. 엄밀히 말하면 보건대와 한려대는 각각 처해 있는 상황만 아니라 경쟁력과 신인도 면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따라서 두 대학을 통합한다 한들 그 어떤 시너지효과도 전혀 기대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결론을 토대로 나는 전체 교직원에게 대학 통합 주장이 법과 제도적인 면에서 실현 불가능하고, 학내에 불필요한 논쟁과 갈등만을 일으킬 수 있으니 거론하지 말도록 주문했다. 총장으로서 대학 통합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밝힌 셈이다. 그 판단의 근거를 몇 가지로 간추려 시민들께도 전하고자 한다.

첫째, 한려대는 2016년 서남대와의 통폐합을 추진하려다 실패했고, 2017년 다시 신경대와의 통폐합을 추진했으나 무산되었다. 두 번의 실패는 교육부의 정책과 법률적 제한 때문이었다. 두 경우 모두 대학의 통합은 법률상 임시이사의 권한을 벗어나는 일이라는 점이 교육부의 일관된 답변이다. 마찬가지로 설립자 비리로 보건대와 한려대도 임시이사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니 통합은 애초에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횡령된 교비가 전액 반환되어 임시이사 체제가 끝난 뒤에라야 통합을 거론할 수 있다. 그러니 쓸데없는 일로 힘을 빼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둘째, 한려대가 두 번의 통합 무산 끝에 다시 잡은 파트너가 우리 보건대다. 한려대가 우리와 통합을 하고자 하는 것은 한려대가 회생하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이다. 우리 대학의 생존을 염려해서 자비심으로 하려는 일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정보공시에 의하면 한려대의 2018학년도 신입생(정원내)은 고작 92명에 불과하다.

4년제 대학임에도 2018년도 재학생(정원내)은 453명에 전임교원은 53명에 머문다. 우리 광양보건대는 같은 해에 346명이 입학했고, 재학생은 1,179명에 전임교원은 68명이다. 우리 보건대가 한려대보다 학생 수는 3배 이상 많을 뿐더러 취업률과 재정상태 등 모든 면에서 훨씬 경쟁력이 높다. 한려대의 생존이 경각에 달려 있어 우리와 통합하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경쟁력 없는 한려대를 살리자고 우리가 통합에 응하는 것은 총장으로서 선택할 바가 아니라 생각한다.

셋째, 통합 방법을 규정한 ‘대학설립운영규정’에 따르면, 보건대와 한려대가 통합하기 위해서는 보건대 입학정원의 60%(3년제 40%)를 감축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학제가 4년으로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보건대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만약 한려대가 재정적으로 튼튼하고, 학교 운영이 안정되어 있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인지도도 높은 대학이라면 나는 총장으로서 우리 대학 정원을 감축하고서라도 통합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 의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학보다 재정이 열악하고 인지도도 약한 한려대와의 통합 주장은, 그것도 우리 대학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려대에서 일방적으로 달려드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양 대학 간 통합은 공멸을 자초하는 길임이 분명하다는 점을 밝혀둔다.

넷째, 3.20. 열린 광양시발전협의회 자리에서 한려대 총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통합 후 설립되는 학교는 ‘학교법인 서호학원, (가칭)광양대학교’라고 한다. 이는 한려대 법인인 서호학원이 보건대 법인인 양남학원을 흡수하겠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우리가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고 한들, 한려대보다는 규모나 경쟁력, 재정적인 면에서 더 월등한데, 우리 보건대를 폐교하고, 우리를 도구 삼아 서호학원과 한려대를 유지하겠다는 의도에 누군들 동의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보건대가 폐교되어 한려대로 통합되면 보건대가 이홍하 씨로부터 받아내야 할 교비횡령금 403억 원도 자연 탕감되어 결국에는 이홍하 씨의 재산만 불려주는 꼴이 되지 않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것이 통합을 원하는 감춰진 본의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다섯째, 한려대 총장이 언급한 내용 중에는 양 대학 간 ‘통합추진위원회’가 가동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통합추진위원회의 구성이나 활동에 대해 전임총장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업무를 인수한 적이 없다. 확인해본 결과 이 위원회의 위원들은 지난 2.28. 자로 임기만료되어 현재는 위원회가 해산된 상태다. 그런데도 신임총장의 임기가 시작된 이후인 3.7.에도 통합 실무회의가 진행되었다고 하니 이런 개탄스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 총장에게 보고되지 않은 회의가 비공식적으로 열리고, 우리 보건대의 공식적인 의견이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한려대가 일방적으로 지역 기관장 회의에서 통합을 거론하는 일에 대해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기에, 비록 광양시 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나는 분노를 표출하고야 말았다.

지역 두 대학 간 통합 불가의 입장은 내가 총장 공모를 준비하느라 교육부에 문의하고, 변호사들에게 자문하고, 지역 인사들을 접촉하면서 갖게 된 소신이다. 물론 우리 대학의 여건과 상황이 좋아진다면 얼마든지 생각과 방침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지만 그전까지는 나의 대학 운영 정책에서 통합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대학 통합을 생각하시는 것은 우리 보건대의 어려운 여건을 보고 대학의 안위를 걱정해서 하는 진심 어린 염려라고 여겨 감사히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건대와 한려대의 통합은 불가하다. 이후로는 대학 통합을 거론하는 일을 자제해 주시기를 당부한다.

지금 우리 보건대가 나아가야 할 길은 ‘과감한 쇄신과 장학기금 조성’ 등을 통해 우리 힘으로 대학의 활로를 찾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대학 구성원과 지역이 일심단결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자리만 지키는 총장이 아니라 열심히 지역을 설득하고 정부와 정치권과도 소통하여 우리 보건대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소임에 매진하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모쪼록 불필요한 논쟁을 그치고, 우리 보건대을 다시 세우는 길에 시민들께서도 지혜와 힘을 모아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서장원(광양보건대 총장, 정치학박사/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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