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은 협동의 산물이고 협동의 모체는 공동체임으로 그 덕목은 당연히 주인공들의 소속감과 책임의식이다. 지금 기업에선 주인다운 주인을 찾아보기 어렵다고들 걱정한다.

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모두가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권유해 ‘올바른 나라 사랑의 길’을 이렇게 일깨운바 있다.
『대한 사람은 모두가 대한의 주인인데 주인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상할 것이외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 사회에 주인다운 주인이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이 모두 나에게 달렸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자가 진정한 주인이요 무책임하게 방관하는 자는 손님이외다.
묻노니 오늘 대한의 주인 되는 이가 몇이나 됩니까.』
기업을 향해,
『기업의 경영자와 종업원은 모두가 기업의 주인인데 주인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에 주인다운 경영자와 종업원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업이 잘되고 못되는 것이 모두 나에게 달렸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경영자와 종업원이 진정한 주인이요, 무책임하게 일하는 경영자와 종업원은 손님만도 못한 식충食蟲입니다. 오늘 기업의 주인 되는 경영자와 종업원이 몇이나 됩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들을지 자못 궁금하다.

과거에 소중히 여겼던 <주인정신>은 지금 나라의 주인공으로서의 국민정신과 사회공동체의 주체로서의 시민정신 등과 함께 곳곳으로부터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의식 또한 변질되고 있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업가정신이 없는 기업인들이 기업을 소유만 했을 뿐 주인다운 책임경영을 다하지 못하고 기업을 도산시키는 일로부터, 요구와 주장에만 악착스러울 뿐 경영난으로 인한 고통의 분담과 극복에는 주인다운 대승적 자세를 보이지 못하는 노조에 이르기까지 기업에 주인다운 주인이 자꾸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종신고용의 미덕은 그 가치를 의심 받은 지 오래고, 그러한 고용 불안정 현상은 허술한 노동시장의 혼란과 맞물려 오히려 실업을 부추기고 오리무중으로 몰아갔다. 
주인정신의 쇠퇴로 인간관계가 변질됐으며, 오직 고용조건만이 중요한 떠돌이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넘치게 되었고, 노사관계는 첨예한 대립관계로 변했다. 형편없이 떨어진 사람 값 때문에 잦은 이직을 더 이상 겁내는 기업인이 없는 것처럼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 이라며 종업원 또한 비록 철새로 떠돌망정 종신고용엔 아무런 미련이 없다.

고용자는 언제나 장사진을 치고 있는 공급시장에서 마음대로 골라 채용할 수 있다고 여유만만하고, 피고용자는 어차피 매겨진 값에 팔려갈 터 할 수 있는 대로 저울질하고 골라 가 주인이 형편 좋은 동안만 품을 팔면 된단다. 고질적인 소유경영의 부정적 영향 때문에 늘 불안하고 허탈한 경영진으로부터 그런 경영층을 바라보며 불안하고 실망하는 뿌리가 약한 간부와 사원에 이르기까지 ‘회사가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적 분위기’니 ‘가족적 유대감’이니 하는 의식은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촌스럽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고 기업에 있어야 마땅한 ‘주인’이 없어도 된다거나, ‘주인의식’이 불필요하다거나, 그 ‘본래의 가치’를 상실한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기업에는 그것이 절실하다. 특히 위기에 처한 기업이나 도덕적 해이 현상이 만연되고 있는 기업에 그러하다. 주인의식이 철저한 사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기업은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분담하는 인내심이나 난관을 돌파하는 용기와 의지란 주인의식에서 나오는 애정이 없고서는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원이란 마치 침수 기미만 엿보여도 살 궁리를 찾아 뿔뿔이 도망치는 쥐들처럼 불리하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회사를 버린다. 제 잇속만 챙기고 회사를 도산시키는 기업주나 회사야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건 말건 요구 관철을 위해 파업하는 사원 모두가 똑같이 진정한 주인의식이 결여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 기업마다 후회할 뿐 무기력하니 아쉬워하는 것은, 기업주의 교만과 무관심으로 버리고 혹은 잃은, 주인의식의 빈자리와, 부쩍 늘어난 가라지 사원들과, 애정이 결여된 사원들이 돌팔매질하고 걷어차 상처투성이인 주인의식의 망가진 자리가, 너무나 크고 깊은 수렁으로 패였다는 깨달음이다.

이미지=unsplash

세계적으로 가장 우량한 기업들은 경영실적에서뿐만 아니라 빛나는 기업가정신과 철저한 프로정신과 책임정신인 사원정신으로 만들어지는 주인의식에 있어서도 과시 월등하다.
세계적으로 좋은 50대 기업 순위 4위에 올라 있는 코카콜라회사가 청량음료 장사만 해서도 계속 변함없이 세계 최우량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든 것은 강력한 연대감으로 키운 저 유명한 ‘코카콜라 가족정신’에 입각한 세일즈맨 십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네 기업은 판이했다.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사원은 사원대로 장래는 생각지도 않은 채 그저 목전의 잇속 챙기느라 갈등하고 싸웠으며, 그 사이에 기업의 도덕성을 떠받칠 정신은 피폐해 갔다. 기업주는 하나 같이 부도덕하고 부정하게 부자가 되었다 여기고, 사원은 그저 필요한 때 돈 주고 고용하는 일꾼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의식 속에 주인정신과 유대감이 살아남을 리가 없었든 것이다.

그 결과 정신적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고, 저들이 그토록 신앙했던 ‘재벌’이니 ‘분배정의’니 하는 우상들마저 허상이요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었다. 기업에 따지고 저항하는 뭉친 세력은 수없이 경쟁적으로 생겨났으나 참고 희생하자 앞장서는 애사운동이나 분위기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만정이 떨어져 떠난 축은 하나 같이 원수처럼 침을 뱉었고 그나마 남은 축도 회사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판자거나 저항세력으로 돌아서기 일쑤였다.  그런 멍든 인간관계에다 창조적 가치의 창출이니 생산성 향상이니 고통분담이니 기대하고 요구한다는 게 무리요 허구다.

기업이 그 어떤 뼈아픈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해 내야 한다는 경영혁신 과제에 ‘주인의식의 회복’ 같은 정신적 쇄신과 무장을 병행시키는 노력이 중요하고도 시급하다. 정신적 결속이나 애정의 회복은 절대로 높은 보수만으로는 안 된다. 기업의 백년대계를 지향한다면 신뢰와 책임감과 도덕성과 열성과 애정 같은 무한대한 힘을 샘솟게 하는 주인의식의 뿌리가 튼튼하게 내려야 한다.
그건 물론 돈이나 거창한 이론이나 계획으로 하는 게 아니다. ‘마음먹기’로 시작하고 진실함으로 손잡아 애정으로 추진하고 키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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