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시위 중인 청풍면 신리 마을주민 장씨.(사진=김병호 선임기자)

초(楚)나라 왕으로 지냈던 한신(韓信)이란 인물이 있다. 대단한 지략가이며 어렵게 입지 성공한 그가 야인으로 지낼 때 일화가 지금도 유명하다.

어느 날 동네 불량배들이 자신들의 앞을 지나가는 한신에게 시비를 걸었다. 불량배들은 한신에게 말하기를 “쓰지도 못하는 칼을 뭐 하러 차고 다니느냐? 너가 정말 남자라면 그 칼로 나를 찌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내 바짓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라”는 것이 그 불량배들의 요구였다. 잠시 망설이던 한신은 결국 그자들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어 지나갔다. 이 일화가 유명한 한신의 ‘과하지욕(胯下之辱)’이다.

‘과하지욕’의 글자 풀이는 사타구니 과(胯), 아래 하(下), 갈 지(之), 욕 욕(辱)이다. 즉 가랑이 사이로 기어서 지나가는 치욕이라고 풀이 된다. 한 순간에 분노를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말이다.

‘과하지욕’이란 바로 큰일을 위해서 눈앞에 굴욕도 참고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한신은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으로 유방의 천하통일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9일 청풍 케이블카 개장식이 열렸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소리가 귓전을 할퀴고 지나간다. “천등산 박달재 울고 넘는 우리 님아”가 애잔하게 흐르고 청풍면 물태리 시골 마을을 온통 축제의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축제 행사장 뒤쪽길가에 수염을 깎지 못하고 텁수룩한 시골 젊은이 내외와 어머니로 보이는 3명이 “30년 어떻게 살 것인가? 당신의 아름다운 눈, 경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집안이 다 보인다.”란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펼치면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케이블카 소음과 사생활 침해문제를 해결하라고 눈시울을 붉혔고, 새끼를 가진 소가 ‘웅’ 소리에 우왕좌왕하고 있다면서 하소연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제천시에서도 신통한 답변이 없고, 청풍로프웨이 측에 항의를 해봤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들려오는 소음과 캐빈에 타고 있는 관광객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안을 훤히 내려다 본다고 언성을 높였다. 가슴아픈 사연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뒷줄없고 돈 없는 시골 사람들의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 개장식 무대에서 클래식 음률이 이들을 비아냥 대는 것 같았다.

‘과하지욕’인가? 차라리 바짓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라고 하는 것이 치욕스럽지 않을지? 권력과 돈 앞에 희생되는 우리나라 서민층 시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의 진정한 삶을 과연 누가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나 행복해야 한다. 돈 있다고 행복하고 돈 없고 뒷배경 없다고 불행하게 생활하란 법 없다. 진정한 정치인은 시민 한사람도 빠짐없이 행복한 삶을 누리게 장(場)을 열어 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시민이 있으면 구제해주고 병든 시민이 있으면 이들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마음의 도량이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할 자격이 있다. 자신만 실컷 퍼마시고 멧돼지처럼 살만 찌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살찌게 만들어야 한다.

각종 권모술수(權謀術數)로 자신의 배만 불리고 시민을 내동댕이치는 정치꾼은 자멸의 길 밖에 없다. ‘초심’이 필요하다. 사업을 하던 정치를 하든 초심을 잃어서는 않된다. 시민의 충언에 귀 기울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정치를 하는 자는 성공한다.

제천시와 청풍로프웨이는 환경법 소음규제 '65dB' 운운하지 말고 한시바삐 3가구 민원을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 절실하다. 내가 잘살기 위해 시민 한사람이라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공생공존 하는 열린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민족이 지나온 역사는 너무 억압과 구속에서 살아온 민족이 아닌가? 그 후예들이 행복에 나래를 펴고 살 수 있도록 가진 자는 배려하고 힘있는 자는 힘없는 자를 끌어 올려 동행할 수 있는 삶을 영위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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