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시도 때도 없는 애니깽 농사는/조선 사람들에겐 지옥이었고/멕시코 사람들에겐 황금의 수확이었다.”

낭독공연 '애니깽' 2018년 공연사진 / ⓒ권애진
낭독공연 '애니깽' 2018년 공연사진 / ⓒ권애진
낭독공연 '애니깽' 2018년 공연사진 / ⓒ권애진
낭독공연 '애니깽' 2018년 공연사진 / ⓒ권애진

답답할치만치 아픈 기억을 나누는 이야기, 낭독공연 ‘애니깽’이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마포아트센터3층 스튜디오에서 관객들과 기억을 함께 나눈다. 역사의 그늘 속에 잊혔던 엄청난 사건이 극화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 작품은 멕시코 농장에 팔려간 조선인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멕시코의 애니깽(henequen) /(출처는 사진에 표기)

‘애니깽(henequen)’은 멕시코 유카탄(Yucatan) 반도에서 자라는 선인장과인 용설란의 이름으로 가시와 독소가 많아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를 입혔다. 그 뿐 아니라 멕시코의 4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 속 애니깽 밭에는 독사가 많아서 거짓된 정보로 끌려갔던 조선인들에게 처참함 죽음을 내렸다.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고(故) 김상열 /(제공=Yonhap News Agency(Korea))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고(故) 김상열은 1988년 올림픽 특별드라마 ‘동방의 북소리’ 집필을 위해 이동 중, 사료에서 알아낸 비극적 사실을 멕시코에서 직접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멕시코 노예이민의 비극적 실화를 극화했다. 2개월간 현장을 취재한 후 그는 심한 열병을 앓은 바 있었으며 이 작품은 당시 세상에 공개되어 세상 또한 열병을 앓게 만들었다.

낭독극공연 '애니깽'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문삼화 연출 / ⓒ권애진

낭독공연 ‘애니깽’은 변화된 문제의식과 도전의식을 주목받으며 김상열연극상을 수상한 문삼화 연출가가 연출을 맡아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낭독과 해설을 맡은 공상집단뚱딴지의 배우 리우진, 김지원, 한철훈, 성규찬, 김세중, 심태영(2018년 공연사진)/ ⓒ김유정(제공=공상집단뚱딴지)
'애니깽'에서 노예가 된 조선인들은 연기한 공상집단뚱딴지 배우 김태완, 문승배, 오윤정, 이의령, 이인석(2018년 공연사진)/ ⓒ김유정(제공=공상집단뚱딴지)

그리고 공상집단뚱딴지의 배우 리우진, 김지원, 한철훈, 성규찬, 문승배, 이인석, 이의령, 김세중, 심태영, 오윤정이 낭독과 연기를 절묘하게 병행하여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킨다. 작년 ‘그때, 김상열’ 페스티벌에서 ‘애니깽’을 선보였을 당시 실제를 방불케 하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슬픈 과거 사건들로 관객들은 슬픔을 주체 못하고 펑펑 울기도 했다.

'애니깽' 공연에 나오는 조선인들의 멕시코 이민은 애초부터 ‘속임수’였다. 88년 서울에서 발간된 멕시코 한인 이민사 《유까딴의 첫 코리언》(이영숙 지음 · 인문당)에 따르면, 1904년 7월부터 10월15일까지 원산 인천 진남포 부산에서 1천33명을 모집했으나 계약노동은 노예와 다를 바 없다며 우리 정부는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집인들은 ‘계약 노동도 자유노동’이라는 술수를 부리며 프랑스 공사를 내세워 여권을 받아냈다. 1905년 3월6일 제물포항을 떠나 요코하마를 거쳐 5월15일 멕시코 유카탄주 베라크루스 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1천31명(항해 중 2명 사망)의 한인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배치된 농장과 공장들에서 이들을 돌연 노예가 되어버렸다. ‘애니깽’들은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애니깽은 노예로 팔려온 한인들의 비극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해, 인삼을 팔러 멕시코까지 흘러들어갔던 박영순은 그가 직접 확인한 한인들의 삶에 대해 급히 하와이 북미한인공립협회로 편지를 썼다.

‘…거짓말로 사람을 모아다 노예를 만들었는데, 근래에 또 이민을 모집한다는 말이 있으니 우리의 소식을 본국에 보내서 동포들이 다시 이곳에 오지 않도록 알려달라고 합니다.…이곳에 이민된 동포들은 낮이면 불같이 뜨거운 가시밭에서 채찍을 맞아가며 일하고, 밤이면 토굴에 들어가 밤을 지새우며 매일 품값으로 35전을 받으니 의복은 생각할 여지도 없고 겨우 죽이나 끓여서 연명할 뿐으로 그 처지가 농장 주인의 개만도 못하다고 합니다.’

정부는 한국주재 미국공사관의 통역이던 윤치호를 멕시코로 급파했지만, 윤치호는 하와이에서 뱃멀미 때문에 멕시코 현지 조사를 포기하고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에 연락해 멕시코 조선인 노동자 실태를 파악하게 했다. 미주지역 한인들은 멕시코 한인들을 미국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힘을 쓰면서 성금도 모았다. 이 소식이 멕시코에 알려지자, 참지 못한 조선인 4명이 농장을 탈출해 1906년 9월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불법으로 입국하는 바람에 멕시코 정부와 미국 정부가 틀어져 미국 이주 계획은 실패했다.

“이것을 임금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동포들이 이것 때문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조선인 4명 중 살아남은 두 형제가 30년 가슴 속에 품은 한, 증거로 품어오던 애니깽을 받아주고 들어줄 임금, 나라도 이미 없었다. 1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상처들에 대해 기억할 마음가짐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심장부에 건립된 2,711개의 추모비는 기억에 대한 상징이다. 광화문에서 세월호를 추모하던 천막을 철거하고 2020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 이전까지 임시로 ‘기억공간’을 설치할 계획이라는 우리와 너무 대조되는 슬픈 현실이다.

'애니깽' 포스터 /(제공=공상집단뚱딴지)

아픈 기억을 잊지 말라 일깨워주는 낭독공연 ‘애니깽’의 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4시이며, 만 13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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