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벗 2019 더불어 생각하는 역사이야기

[뉴스프리존,대구=문해청 기자] 새벗도서관(관장 기호석)은 3일 새벗도서관에서 강사 류돈하씨와 함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

강사 류돈하 / 사진 = 문해청 기자

의 이야기 천년 그리고 백년’의 주제로 강의를 개최했다.

우리 역사의 허리라 할 고려
혼란한 후삼국 시대를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고 민족 최초로 자주독립의 대업을 이룬 고려.

개국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자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도전에 직면한다.

993년, 1011년, 1019년 세 차례에 걸친 큰 전쟁! 전쟁의 향방은 어디를 향할지 알 수 없었다.

그로부터 9백 년 후 고려의 후신 조선 혹은 대한제국은 일본과 미국의 가츠라․테프트 조약으로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한다.

1919년 삼일만세혁명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의 시작 이후 백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 우리는 옛 역사를 통해 미래를 생각한다. 고려 개국 후 100년, 대한민국 개국 후 100년을...

평화통일 참세상을 꿈꾸고 갈망하며 강사 류돈하씨는 강의를 시작했다

[다음은 강의 전문]

1455년 7월 5일 직제학 양성지의 상소문) - 우리 국가는 실로 동방에 위치한 황복(荒服)148) 의 땅이다. 멀리 해뜨는 해변에 위치해 있고 또 산과 계곡의 천험(天險)의 지리(地利)를 가지고 있어서 수(隋)·당(唐)의 창성(昌盛)함으로도 오히려 신하로 삼지 못하였다.

요(遼)나라는 인국(隣國)의 예로 대하였고, 금(金)나라는 부모의 나라로 일컬었으며, 송(宋)나라는 빈례(賓禮)로 대하였고, 원(元)나라는 혼인을 서로 통하였다.

我國家實東方荒服之地也。 邈處日出之濱, 且有山谿之險, 隋、唐之盛, 猶不得臣, 遼用隣國之禮, 金稱父母之邦, 宋以賓禮, 元通婚媾。

"이 적들이 요동성에 들어가 버티고 있으므로 중국의 장관들이 차례로 적에게 항복하고 있다. 심지어 요동 지방의 인재들 2백여 명이 원 경략(袁經略)을 결박하여 넘겨주었다고 한다. 비록 30만 명이나 되는 군사가 나온다 하더라도 이는 모두 일찍이 오랑캐를 경험하지 못한 군사들이다.

영솔하는 대장들이 과연 이목(李牧)이나 이정(李靖)과 같은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들의 갑옷과 무기가 파손되어 형편이 없다고 한다. 멀리에서 온 군사들이 어떻게 정예롭고 건장하겠는가. 중국의 일의 형세가 참으로 급급하기만 하다.

이런 때에 안으로 스스로를 강화하면서 밖으로 견제하는 계책을 써서 한결같이 고려(高麗)에서 했던 것과 같이 한다면 거의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나라의 인심을 살펴보면 안으로 일을 힘쓰지 않고 밖으로 큰소리 치는 것만 일삼고 있다.

새벗도서관 강의 참가자 / 사진 = 문해청 기자

조정의 신하들이 의견을 모은 것을 가지고 보건대, 무장들이 올린 의견은 모두 강에 나가서 결전을 벌리자는 의견이었으니 매우 가상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지금 무사들은 어찌하여 서쪽 변경은 죽을 곳이라도 되는 듯이 두려워하는 것인가. 고려에서 했던 것에는 너무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부질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一如高麗所爲, 則庶可保國, 而近觀我國人心, 內不辦事, 外務大言, 試以廷臣收議見之, 武將所獻, 皆是臨江決戰之意, 甚爲可尙矣。 然則今之武士, 何以畏西邊如死域乎? 不及高麗遠矣, 徒虛語耳

고려사 절요 문종인효대왕 12년조 (1058년) - 8월, 대왕이 탐라와 영암에서 목재를 벌채하여 큰 배를 만든 후에 송나라와 통하려 하였다. 내사성에서 아뢰기를 '국가가 북조(요나라)와 수호한 뒤로는 국경에 급한 변이 없고 백성이 생황을 편안히 즐기니 이것으로써 나라를 전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지난 경술년에 거란이 우리를 힐택한 끝에 동으로 여진과 결탁하고 서쪽으로 송과 왕래하니 이것은 어떤 음모를 꾸미려는 것인가? 하였다. 또 상서 류삼이 사신으로 갔을때에 동경유수가 남조(송나라)와 사신왕래한 일을 물으면서 의심하고 시기하는 듯 하였으니 만약 이번에 송과 통하려고 하는 이 일이 누설되면 반드시 틈이 생길 것이다.

또 탐라는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오직 해산물을 배에 싣고 팔아서 생계를 꾸리는데 작년 가을에도 재목을 벌채하여 바다를 건너오고 새로 절을 창건하느라고 노가가 이미 많았으니, 이제 또 거듭 괴롭게 한다면 다른 변이라도 생길까 두렵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송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이다. 거란과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과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고려사 악지 풍입송 - 해동천자이신 지금의 황제에 이르러 부처와 하늘이 도와주셔서 교화가 널리 퍼져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다. 그 깊은 은혜 먼나라나 가까운 나라에나 지금이나 드물어라. 사방이 편안하고 그 덕이 요, 탕 임금보다 더 높구나.

강사 류돈하씨와 강의 참가자 / 사진 = 문해청 기자

부필(富弼:1004~1083. 송나라 중서문하평장사. 한국공)의 하북수어 12책 고려는 시서예의가 중국못지않으며, 거란이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자 이에 대항해 싸웠다. 비록 고려가 거란을 섬기고 있으나 거란은 고려를 두려워한다.

고려를 근심거리로 여기고 있는 거란은 감히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해 남쪽으로 내려올 수 없다. 그러므로 고려를 잘 대접해 거란이 우리 송을 침범하려 하면 고려로 하여금 거란을 치게 해야 한다.

강사 류돈하씨는 “귀주대첩 이후의 고려는 앞으로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전례이자 모범이라 생각한다. 자주와 평화통일의 기로에 선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고려는 삼국과 조선 사이에 끼어있는 시대가 아니라 삼국의 맥을 잇고 조선의 뿌리가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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