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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이순신 장군을 우러러 기록한 전기물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 한글판 출간
  • 정현숙
  • 승인 2019.04.04 00:55
  • 수정 2019.04.05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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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한 일등 공신이다.

존경하는 인물 세 손가락에 안에 꼽히는 충무공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에게 더 높이 평가를 받았다. 충무공에 대해 높이 평가한 외국인으로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을 들 수 있다. 진린은 처음에는 충무공을 작은 나라의 장수라며 얕보고 함부로 대했으나 충무공으로부터 목숨을 구원받은 이후로는 태도가 180도 바뀌어 충무공을 존경하며 따랐다.

진린은 사람들에게 충무공을 하늘이 내린 장군이라고 말했다. 진린은 명나라에 낸 보고서에서 "이순신은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능과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이 있다."고 극찬했다. 뜻인즉 충무공이 온 천하를 다스리는 경천위지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는 보천욕일의 공로가 있는 대단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중국 신화에서 유래된 어원으로 '어마어마한 공적'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명나라 장수 진린이 이순신 장군이 세운 공이 무너진 하늘을 메울만큼 크다는 의미로 헌사한 문장이다.

현충사 경내 기념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마치 신처럼 존경한 이들은 또 있다. 뜻밖으로 들리겠지만 메이지시대 일본의 학자와 관리들 이었다. 장군에 대한 찬사가 일본인의 붓끝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는가.

"내가 평생을 두고 경모하는 바다의 장수는 조선의 이순신이다. 세계적 명장인 넬슨도 인격이나 창의적 천재성에서 도저히 이순신 장군에 필적할 수 없다."

"후세의 누군가 이순신을 위해 붓을 쥐게 된다면 조선의 운명은 이순신 덕분에 회복될 수 있었음을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일본군과 악전고투하며 싸우는 이순신 장군을 선조는 오히려 시기하며 죽이려 했다.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이라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고, 죽어서도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런 이순신 장군을 일본인들이 먼저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책자 등의 기록으로 남겨 이채롭다. 일본의 대표적 전쟁사 연구자였던 사토 데쓰타로(佐藤鐵太郞·1866~1942), 외무성 관리 세키코세이(惜香生), 일본 해군의 교관이자 문필가였던 오가사와라 나가나리(小笠原長生·1867~1958)가 바로 그 주역이다.

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가운데 세키코세이가 1892년 출간한 '조선 이순신전'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모든 이순신 장군 전기의 효시였다. 임진왜란에 참가한 일본 수군의 전모를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이순신 장군을 조명한 이 책자는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이순신 신화가 만들어진 기폭제가 됐다.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이순신 장군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명한 이는 단재 신채호(1880~1936)였다. 단재는 '조선 이순신전'보다 16년 늦은 1908년 '수군 제일위인 이순신전'을 전기로 출간했고, 이후 박은식의 '이순신전'(1915년), 이윤재의 '성웅 이순신'(1931년) 등이 차례로 나왔다.

이번에 한국에서 번역된 사토, 세키코세이, 오가사와라 세 사람의 일본 학자와 관리의 기록을 한데 묶은 신간 서적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는 메이지 시대(1867~1912)와 다이쇼 시대(1912~1926)에 일본 해군과 일본인들이 지닌 이순신관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책은 사토의 '절세의 명장 이순신'과 세키코세이의 '조선 이순신전', 오가사와라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원정'을 차례로 실었다.

먼저 사토의 기록부터 살펴보자. 그가 1927년에 집필한 '절세의 명장 이순신'은 이순신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정리해 보여줄 뿐 아니라 메이지에서 다이쇼 시대까지 일본 해군의 인식을 엿보게 하는 소중한 자료다.

"이순신 장군은 인격이나 장수의 그릇, 모든 면에서 한 오라기의 비난도 가하기 어려운 명장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원정군의 목적을 좌절시켰을 뿐 아니라, 동시에 제해권 확보가 국방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실적으로 증명했다. 도중에 모함을 당해 백의종군에 처해졌지만,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그 같은 대우를 달게 받았다. 이 한 가지만 보더라도 장군의 고매한 인격을 알 수 있다."

사토는 "장군은 군기를 엄격히 세우고 매사에 위엄이 있으면서도 부하 사랑하기를 자식 대하듯 하였다"며 "견식과 도량이 깊어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모범적 장군이었다"고 존숭의 마음을 표시했다.

"만에 하나라도 이순신 장군이 나오지 않고 일본 수군에 북상의 길을 열어주었더라면 조선의 국방은 절망적으로 파괴됐을 것이다. 유탄이 가슴을 관통해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장막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싸움이 몹시 급박하니 절대로 자신의 전사 사실을 알라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이 최후의 한 마디는 실로 전쟁터에 나선 장수의 모범이다. 나는 영국 장군 넬슨의 트라팔가르 해전을 떠올리며 명장의 용의주도함이 동양과 서양 모두 하나같음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 이순신 장군 기록물 일본어 신간 한국어 판

세키코세이의 '조선 이순신전'은 해군력 증강이라는 일본의 필요에 의해 집필됐다. 임진왜란의 실패 원인을 일본 해군력의 미약함에서 찾으면서 일본 해군의 실패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 그럴수록 이순신은 홀로 일본 수군 전체와 맞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부각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웅지가 세상을 덮고 하늘에 닿을 호걸이다. 그럼에도 불구의 몸으로 지하에 누워 있게 된 것은 수군 때문이다. 그 수군이 패한 수치는 다름 아닌 조선의 이순신 때문이었다. 이순신은 실로 위엄이 있고 의협심이 강한 품성이었다."

세키코세이가 이 글을 쓸 때는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 정책을 취하면서 대륙 진출을 엿보고 있을 때였다. 그들이 가장 위협을 느낀 대상은 러시아. 이런 상황에서 일본 해군력을 증강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이 책이 쓰였다.

참담한 패배를 당한 임진왜란 당시 일본 해군의 실패를 혹독하게 비판하면 할수록 이순신 장군은 홀로 일본 수군 전체와 맞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부각된다. 오가사와라는 1902년에 쓴 '일본제국 해상권력사 강의'를 통해 "이순신은 담대하고 활달함과 동시에 정밀하고 치밀한 수학적 두뇌를 지녔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전선의 건조, 진법의 변화, 군사전략·전술에 이르는 모든 부문을 자신의 뜻대로 개량해 성공을 거뒀다. 이뿐만 아니라 거제도에서는 지형을 이용하고 진도에서는 조류를 응용하는 등의 갖가지 뛰어난 계책을 시행해 매번 승리했다. 조선의 안녕은 이 사람의 힘 덕분이었다."

이 책은 해군 장교들에게 큰 영향을 줘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가사와라가 1898년에 펴낸 또 다른 저서 '제국해군사론'에도 이순신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는 일본의 일반인들에게 이순신을 알리는 데 기여하게 된다.

일본판 신간을 옮긴이 김해경 씨는 "메이지시대 일본 해군이 이순신 장군을 연구한 이유는 자국의 필요에 의해서였다"며 "우리가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었던 데는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의 이순신 연구에 일정 정도 힘입었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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