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 상상을 넘어서는 현실에 대처하기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 상상을 넘어서는 현실에 대처하기
4.13 총선의 여소야대라는 예상 외 결과를 놓고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총선 직전에 우리는 야당 국회의원 여럿이 '연대해서' 테러 방지법을 막고자 192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한 감시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런 상황에 둔감했던 우리는 그 필리버스터를 지켜보면서 한 대 맞은 것처럼 테러 방지법의 문제점을 깨닫게 되었죠. 어쩌면 그 필리버스터야말로 야소야대 총선 결과를 예고한 이벤트였는지 모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힘만 센 국가 밑에서 살아가다 보니 우리는 국가 감시만 걱정합니다. 하지만 국가 감시보다 더 위험한 일은 기업 감시입니다.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 네이버 같은 기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할 수 있고 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와 기업이 결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네, 그렇습니다. 기업이 돈벌이를 위해서 차곡차곡 쌓아 놓은 우리의 데이터는 공문 한 장에 국가로 넘어갑니다. 그 결과는? 맞습니다. '탈탈' 털리는 것이죠. 금융 거래 정보, 구매 정보, 이동 정보, 심각한 업무상의 대화는 물론이고 애인과 주고받은 은밀한 메시지부터 친구와 했던 시답잖은 농담까지 모두 다 넘어갑니다. 

무섭죠? 우리는 바로 이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함께 읽을 책으로 브루스 슈나이어의 <당신이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이현주 옮김, 반비 펴냄)를 꼽은 것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자는 의미입니다. 슈나이어는 "세계 최고의 보안 전문가>(<와이어드>)로 에드워드 스노든이 유출한 미국의 기밀문서를 <가이언>을 위해 분석해준 당사자입니다. 

반비 출판사는 디지털 시대, 빅 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인 이 책을 먼저 읽은 이들의 독후감을 소개합니다. 먼저 소설가 김보영 씨는 ('독서통'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던) 코리 닥터로우의 <리틀 브라더>와 함께 <당신은 데이터가 주인이 아니다>의 의미를 짚습니다. 

(☞관련 기사 : [독서통] "국정원 뒷문은 테러리스트도 좋아합니다")

▲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브루스 슈나이어 지음, 이현주 옮김, 반비 펴냄). ⓒ반비1.작가가 되기 전에 나는 게임 개발자였다. 처음 입사했을 때가 1999년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아도 기이한 시기였다. 전국에 인터넷망이 무시무시하게 퍼지고 있었지만, 그 디지털 세상의 무형의 데이터를 규정하는 법은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하긴 '무형의 물질'을 위한 법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옛날 사람들이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가 만든 게임이 무분별하게 세상에 퍼져나가도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사이트를 일일이 찾아가 게임을 내려달라고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막을 법도 없었고 돈을 받아낼 시스템도 없었다.

부탁을 들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며 어리둥절해하다가 큰 선의로 게임을 내려주겠다는 식의 답변을 하곤 했다. 회사를 이전하며 한 달간 영업을 쉬고 돌아와 보니 우리 게임은 호평 속에 전국적인 인기를 끌며 망해가고 있었다. 지금도 한국 게임사에 꽤 상징적인 일로 회자되는 사건 중 하나다. 

사회의 대응 속도와 인식이 기술의 발전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내 생으로 체험한 셈이다. 이후로도 디지털 세계에 대한 사회의 대응은 뒤처지면 뒤처졌고, 이상하면 이상했지 따라잡은 적이 딱히 없었다. 

2 테러 방지법이 법의 구멍을 피해서라기보다는 비집고 들어가 상정이 되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192시간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국가가 국민을 감시해 온 역사와 실상, 그 비효율성과 부작용과 위험을 전문가의 24시간 생방송 강의로 들을 기회를 얻었다.

그 가운데 코리 닥터로우의 SF <리틀 브라더>(최세진 옮김, 아작 펴냄)가 소개되면서 SF 독자들 사이에서 작은 화제가 된 바 있다. '리틀 브라더'는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상상한 '빅 브라더'에서 파생한 말로, 조지 오웰이 상상한 감시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하지만 훨씬 더 은밀하고 광범위한 형태의 감시 사회가 도래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 일은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통해 저자인 코리 닥터로우에게 알려졌다. 자유 저작권 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서둘러 기사를 썼고, <뉴욕 타임스>보다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자신의 블로그 <보잉보잉>에 올려 한국의 필리버스터를 세계에 실시간으로 알렸다. 그 자체로 정보망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사람 중 한 명이 지금 소개하는 책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의 저자 브루스 슈나이어다. 보안을 깨부수는 해커 소년의 이야기를 세계 최고의 보안 전문가가 추천하면서 말한다. 

"사생활과 보안을 맞바꿔치기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생활과 맞바꾸면서도 안보를 얻을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멍청한 짓이다." 

< 리틀 브라더>의 한국어판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미래를 서구보다 앞서 나갔지만, 그와 동시에 디스토피아적인 감시 역시 선두에 서 있습니다." 

근미래 사회를 다룬 이 책은 한국에서는 현실을 반영한 사회 소설에 가깝다. 정보통신과 인터넷망이라는 면에서 우리는 세계가 아직 온 적이 없는 미래에 가장 먼저 와 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댓글 부대>(은행나무 펴냄)는 단 세 사람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세치 손가락으로 무너뜨리며 국가 전체의 여론을 조작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는 물론 사회 소설이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의 영역을 벗어난 이야기였다. 정보를 감추고 외국에 소개된다면 SF로 분류될지 모를 일이다. 

3 <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에서 브루스 슈나이어는 감시가 비용의 문제며, 우리가 그 비용이 말할 수 없이 저렴해진 시대에 살고 있음을 지적한다. 예전에는 사람 하나를 감시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고, 그 효용성을 고민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더 이상 감시를 위해서 도청기나 첨단 장비나 인력과 자본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의 손에는 그 기본 원리상 항상 위치를 보고하는 스마트폰이라는 첨단 컴퓨터가 들려 있다. 작은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거리낌 없이 정보제공에 동의하고 인터넷망에 연결된 컴퓨터에 자신의 모든 정보를 아낌없이 기록한다. 

한국은 감시의 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나라다. 반면에 개인정보의 가치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인식은 전근대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편이다. 그만큼 감시 사회의 위험도는 높다.

필리버스터 속기록 전문집에 의하면, 테러 방지법을 새로 상정한 이유는 "기존의 법으로는 테러 인물에 대한 예방 차원의 정보 수집을 할 수 없어서"이다. 이 생각의 위험성은 192시간을 반론하고도 모자랐지만 법안은 무심히 상정되고 통과되었다.

사실 이 말은 블록버스터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의 초반부에 실드 국장 닉 퓨리가 한 말이다. 그는 테러 용의자를 미리 예측해 선별하려 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실드 내부에 침투한 하이드라에 의해 '하이드라의 목적에 방해되는' 인물을 찾아 제거하는 학살 프로젝트로 뒤바뀌어버린다. 

누군가 테러를 미리 예측하여 우리를 보호하기를 원한다면, 그만한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신뢰를 쌓아온 적이 없고 지금도 그러하다. 작년(2015년) 세월호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무 근거 없이 테러분자로 불렸다. 올해(2016년) 추모식에서는 동일한 사람들이 아무도 그렇게 불리지 않았다. 

한국은 신뢰가 무너진 나라다. 세월호는 국가에 대한 신뢰를 뿌리채 흔든 일이었건만, 정부는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가장 나쁜 형태의 대처만을 계속해 왔다.

브루스 슈나이어가 다루는 미국 사회는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감시하려 한다는 최소한의 신뢰가 있다. 기업이 경제 발전을 위해 개인정보를 쓰려 한다는 최소한의 신뢰가 있다. 그러기에 저자는 감시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어떤 현실적인 피해가 있는지 정부와 기업에 원칙적으로 호소할 수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감시 그 자체를 위해 감시하려 한다면,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런 의심을 받을 만큼 신뢰를 잃은 시점에서 이 책의 제안은 낙관적으로 읽히는 면이 있다. 저자의 제안은 이미 우리가 놓치고 만 무엇이고, 이미 우리는 대책도 대처도 없이 한참 먼 미래로 건너와 버리고 만 것만 같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에 기대지 않는다. 단지 혼자 살아남을 방법만을 모색한다. 나 또한 무엇보다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개인을 위한 대처법'을 흥미롭게 읽으며, 책이 추천하는 차단 플러그인과 토르(Tor) 브라우저를 깔고 컴퓨터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여두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임시방편은 현재를 대처하게 해 줄지언정 세상을 앞으로 가게 하지는 않는다. 결국 가장 나쁜 상상을 걷어내고 직면해 보면 가장 원칙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이 답이 될 것이다. 그 점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올곧고 정직한 방향성은 지침으로 삼을 만하다. 

테러 방지법의 효용에 대해서는 '대량 감시는 바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건초더미를 더 쌓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점점 더 복잡해져가는 액티브X에 대해서는 '복잡할수록 보안은 허술해진다'는 저자의 말을 귀담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가가 테러의 위협을 내보이며 '이것과 사생활 침해는 교환할 만하지 않은가'하고 묻는다면, '감시는 생명의 위협을 막을 수 없지만 사생활 침해가 가져오는 피해는 말할 수 없이 크다'고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보안을 위해 기밀을 강조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투명성이 오히려 안전하다는 원칙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정보를 남발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믿는 기업에게는 사생활 침해가 일으키는 더욱 광범위한 경제적 악영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리틀 브라더>가 개인 단위로 감시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었다면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는 국가, 기업, 사회, 개인이 각기 감시 사회를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그 모두의 협조와 인식전환이 필요하며,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리틀 브라더>가 저항과 치료라면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예방과 체력관리, 제도 정비를 이야기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실상 늦었다는 농담은 있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더욱 또 늦어질 뿐이다. 너무 늦지 않게 많은 분들이 이 책을 들여다보아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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