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세이] 신바람은 어디서부터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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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신바람은 어디서부터 일어나는가
  • 박종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25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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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은 신묘한 힘으로 모두를 한 동아리가 되어 달려가게 만들므로 기업발전에 그보다 더 좋은 뭉친 바람은 없다. 그건 활력의 완전연소를 돕는 산소 같은 것이다.                 
지금 기업인들은 기업할 재미가 없다 의욕이 밑바닥이고, 종업원들은 왠지 옛날처럼, 비록 고달파도 신명나지 않아 한다. 당최 기업에 활력이 넘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삶의 질을 높이고 발전하는 것이 지체될 것이다.

대체 기업에 있어 신바람은 무엇으로 일어나는가.
신바람은 '알찬 기업비전'으로부터 일어난다.
사원은 본시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꿈이 있다. 용병이 아니기 때문에 월급 못지않게 성취감 같은 보람에서 얻는 정신적 만족도 중요하다. 그들은 비전을 따라 기업이라는 성을 쌓는 일꾼으로서 그들에게 있어 비전은 존재의의며 이상이다.  믿고 따를 비전이 없으면 그들은 꿈이 없는 뜨내기 일꾼에 불과하다.

기업 비전은 기업이 이상 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길잡이다. 그것은 기업가정신의 모태며 사원정신의 지주다. 그것은 기업이념이 지향하려는 설계도로서 사원 모두를 합의된 가치와 목표를 향해 한 길로 나아가게 유도한다.
그것이 무지개나 뜬구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원들의 역량과 열의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담아 성취하도록 만듦으로써 그들에게 보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신바람은 '이익이 쌓이는 곡간'에서 일어난다.
기업의 이익은 오아시스에서 갈증을 풀 정도여서는 안 된다. 기업은 허구한 날 굶으면서 다리 부러진 제비가 금은보화가 가득 찬 박 씨를 물고 오기나 기다리는 흥부가 아니다. 굶주린 배를 졸라매고서라도 다 함께 밭에 나가 땅을 갈고 씨를 뿌려 가꿔 가을에 수확을 해야 하므로 깡 보리든 조강이던 그 때까지 최소한 연명할 식량(이익)이 있어야 한다. 이익은 멀고 먼 여정에 고루 나눠 마실 수 있고, 오래 동안 샘을 발견할 수 없어도 걱정 없을 만큼 넉넉해야 한다. 

기업 이익은 사원들의 자긍심이다. 쌀독에서 인심 나듯 기업이 이익을 내야 푼푼한 평화가 유지되고, 서로가 관대해질 수 있으며, 내일의 노역勞役이 지겹지 않게 된다. 기업에 있어 불화의 씨앗은 적자에 있다. 이익이야말로 그 것을 먹으면 신바람이 절로 나게 만드는 묘약이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신바람은 '활력이 넘치는 협동'에서 일어난다.
우정이 깊으면 친구 따라 신나게 강남도 간다고 했다. 한 솥 밥을 먹으며 전쟁 같다는 경쟁마당에서 함께 싸우고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다는 것은 기업이 엄숙한 삶의 터전이고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차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람은 제 깜장대로 여러 이웃과 어우러져 즐거움이던 슬픔이던 나누며 살기 마련이므로, 기업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 자체부터가 가슴 설레는 일이다. 미지의 생활터전에서 남과 만나 한 식구가 된다는 것은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기업마당에서 남남으로 만났어도 한 식구로서의 정리를 맺고 서로 의지해
깨어 있는 시간의 태반을 함께 손잡고 땀 흘려 성취한 보람을 나누는 협동은 인간이 실천해 보일 수 있는 행동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이러한 멋진 협동에서 솟는 힘이 바로 신바람을 일으키는 활력인 것이다.

신바람은 ‘존경하는 상사의 당당한 처신과 열정적인 업무처리’에서 일어난다.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이로 함께 일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미국 GE회사에 사람만 골라 죽인다는 ‘중성자탄’이라는 악명을 가진 잭 웰치 회장이 등장해 경영혁신의 칼을 휘둘렀을 때, 수십만 명 종업원이 떼죽음을 당했어도 남은 사람들이 기꺼이 ‘워크아웃 전사 Work-out Warrior'로 나선 것은, 세계 최우량 기업을 만들자는 가슴 설레는 명분과 최고경영자의 공의롭고 당당한 열정에 감복했기 때문이었다.

저들의 신바람은 마침내 큰  일을 해냈으며 그 덕분에 GE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최고기업 자리를 유지해오고 있다. 소유경영주에게 ‘머슴’ 취급을 당하면서도 자리보전에 연연하고 정경유착의 하수인 노릇이나 일삼으며 떳떳치 못한 고물이나 챙기고, 유능한 부하를 경계하고 그 공이나 훔치는 상사들이 경영을 요리하는 풍토에선 결코 신바람이 일어날 수가 없다.

고대 스파르타 병사의 칼이 단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적일 만큼 강했던 것은 의롭고 용맹스러운 장수가 전쟁마다 앞장섰기 때문이며,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지도자로 앞장선 김춘추나 김유신을 따라 전장에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화랑정신 덕분이었다.

영국이 나치 독일의 노도와 같은 파죽지세에 외롭게 맞서 싸우고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옥스퍼드 같은 명문대학에 다니던 상류층 자제들이 솔선해 출정,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국가이건 사회이건 기업이건 간에 이렇게 숭고한 시대적 사명감과 자기  희생의 윤리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기를 소유한 지도자나 상사가 없으면 그런 못난 졸장 부하들 또한 유유상종하는 약졸이기 십상이라 거기에 무슨 신바람이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신바람은 개인이건 집단이건 ‘땀 흘려 소유하는 보람’에서 일어난다.
인간의 생존과 인류의 번성은 어머니의 산통이 보람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며, 숱한 순교자들이 참수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믿음의 보람 때문이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조국의 승전보를 아테네 시민에게 전하고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죽은 사자使者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토스로부터 아테네까지 장장 백여 리를 허위단심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자신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보람 때문이었다.
보람이란 기업에 있어 땀의 결실인 이익에 상응되는 정신적 과실로 어떤 면에서는 이익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보람이 배어 있지 않는 이익이란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고 취한 전리품 같아서 무가치하다 여겨 공짜처럼 훔치고 낭비하기 쉽기 때문이다.

기실 기업엔 무가치한 사원들이 있어 이렇다 할 성취의 보람도 없이 남의 공이나 나눠 챙긴다.  이러한 개평꾼들에겐 참여를 통해 얻는 보람이란 없으며 거기에 신바람이 일어날 수 없다.  정신적이던 물질적이던 사원들이 나름대로 보람을 새록새록 맛볼 수 있어야 신명이 나는 법이다.

해마다 임금을 와장창 올려주거나 원하는 대로 감투를 씌워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기업이 사원들 사기를 높이고 지속시킬 어떤 보약이란 보람 이왼 없다. 보람이란 신바람의 활력소로서 기업이 돈 안들이고 손쉽게 무진장으로 개발해 낼 수 있는 가장 값진 정신적 에너지다.

그러므로 사원들을 명령을 따라 주어진 일이나 하는 머슴쯤으로 부리는 경영은 대단한 힘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썩히는 어리석은 짓이다. 창의력 한 가지만 해도 바로 보람으로 파내는 보석이다. 인재를 기르는 것 못지않게 사원의 보람 자원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며 다양한 보람이 사내 구석구석으로 확산되게 고무시키는 것이 기업에 끊임없이 신바람이 불게 만드는 비결이다.

신바람은 사원이 ‘회사 귀신이 되겠다’ 마음먹고 정신적으로나 생활적으로 안정돼야 일어난다.
선진 경영을 한다는 미국이 자존심을 접고 일본기업한테 배워 본뜬 경영철학 가운데 ‘겐바(현장)정신’과 ‘카이젠(kaizen 개선)’이 있다. 겐바 정신이란 한 마디로 ‘현장에 뼈를 묻겠다’는 주인정신이며, 카이젠 역시 그런 주인의식 가지고 일에 있어 귀신이 되어 작은 일부터 철두철미하게 해 낸다는 책임정신이다. 그 어느 것도 회사가 내 것이라 여겨 회사를 위해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한다는 충성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우 불만이던 상사가 밥맛이 없어서든 여차하면 회사를 떠나겠다는 사원한테 신바람이란 가당찮다. 자신이 하는 일이 늘 무미건조하고 조직과 동료한테 아무런 애정도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무력상태에서는 매사가 시들할 뿐 신명날 수 없다. 특히 가정이 불안정하거나 낭비 때문이던 문란한 사생활 때문이던 불안정한 사원은 회사에서 신명나게 일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기업이 인사관리를 하는 데 있어 사원의 정신적 건강에 무관심한 것은 긴 안목으로 볼 때 화를 키우는 것이다.  사원의 도덕적 타락이나 해이란 신바람을 죽이는 암적 독소이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경쟁하기 고달프고, 소비자 마음 사기에 여념이 없으며, 시시콜콜 간섭하고 드는 정부 상대하느라 피곤하기 짝이 없고, 기업에 대해 쥐뿔 정도나 알면서도 입만 열었다하면 예사로 폄훼하고 드는 반 기업정서에 시달리며, 어지러운 변화의 시류를 곡예 하듯 타며 경영하느라 신바람은 도처에서 막히고 잘리고 메마르고 있다. 누군가 자꾸 사그라져 가고 있는 신명의 불씨를 살려 내 신바람이 일게 만들어야 하는데 모두가 주저하고 자신 없어 할뿐이다. 경영이 순조롭지 못한 처지에 이익으로 신바람을 일으킬 것도 아니라면 달리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실인즉슨 그 에너지원은 바로 코가 빠지고 어깨가 쳐진 사원들을 어떻게 신명나게 만들 것인가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멀리 있지도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건 매사 돈으로 기준 삼고 해결했던 사고방식과 관행을 바꿔 한 마음으로 찾으면 신명을 살려낼 수 있는 크고 작은 불씨를 여러 곳에서 능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무한경쟁시대라는 현대야말로 무한한 에너지로 매장돼 있는 신바람 에너지를 개발해 기업 에너자이저로 쓸 수 있게 전략을 세우고 투자를 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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