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가 : 역사와 실재, 혹은 그 하염없는 실천을 향하여

공연사진_노동가를 합창하며 등장하는 코러스 /ⓒ권애진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국립극단의 ‘노동’을 주제로 한 작품개발 프로젝트 [연출의 판-작업진행중]의 두 번째 쇼케이스, 쯔카구치 토모 연출의 <노동가 : 역사와 실재, 혹은 그 하염없는 실천을 향하여>가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이방인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가를 합창 퍼포먼스, 무언극, 토크쇼 등을 통해 위트 있게 풀어내고 있다.

 

“연대의 깃발을 올려라 총진군이다

머리띠 묶어주며 어깨 걸고 일어서자

우리는 패배를 모른다 후퇴도 모른다

강철 같은 연대투쟁 전진뿐이다

그래 너희에게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 있지만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 하는 동지가 있다.“ <연대투쟁가>

공연사진_강연장에 난입한 코러스들의 행진 /ⓒ권애진
공연사진_책상 위 올라가 있는 코러스들을 비추는 불빛들은 깜빡거리기를 반복한다. 지금 대한민국도 그러할지 모른다 /ⓒ권애진
공연사진_사무실 노동자들 한 편에서 노동가를 부르는 두 남녀 /ⓒ권애진
공연사진_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종반은 어둠 뿐인 노동자들 /ⓒ권애진
공연사진_국기에 대한 맹세가 '황국신민서사'를 고스란히 베낀 것임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권애진

이 공연은 합창으로 구성된 연극적 음악 퍼포먼스로, 노동가를 부르는 합창단(=시위대=코러스)과 대립자와의 갈등을 통해 한국 노동운동의 한 측면을 그려내고 있다. 말 대신 노래로 자신을 표출하는 합창단과 그들을 탄압하는 자본가 및 보수 세력의 갈등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노동운동과 노동가의 변화를 표현하였다. 

공연사진_독재정권과 앞잡이들을 물리쳤다 여겼지만... /ⓒ권애진
공연사진_IMF는 대한민국 노동시장을 요동치케 했지만 실상 문제점들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 뿐이기도 하다 /ⓒ권애진
공연사진_"한국경제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다리십쇼!" /ⓒ권애진
공연사진_탈출구가 없이 남겨진 3인의 모습에서 무엇을 떠오르나요? 당신은? /ⓒ권애진
공연사진_떨어져 나가 쓰러진 이들이...나만 아니면 상관 없나요? /ⓒ권애진
공연사진_자본가와 대립하지만...자본가가 나누어주는 라면을 먹을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모순 /ⓒ권애진
공연사진_정부와 은행, 대기업이 친 사고였지만, 오히려 노동자들의 금모으기 운동으로 감당을 했던 기묘한 기적 /ⓒ권애진

공연은 여섯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며, 각 단락은 노동운동에 대한 편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환란, 박정희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투쟁의 역사, 정리 해고 등 노동이슈들을 다룬다. 공연은 둘로 크게 나뉘는데 전반부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의 노동을 다룬다면, 후반부는 IMF 이후의 노동을 다루면서 생존과 더욱 직결된 모습을 극화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노동가, 민중가요가 추억의 멜로디이자 투쟁의 기억인 반면, 또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화석 같은 기억일 수도 있다. 70년대 후반은 노동가를 위시한 민중가요의 대중적인 기초가 만들어진 시기로 노래가 정치적ㆍ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집단적 정서를 고양해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시기의 행진곡들은 단순 구호의 반복이 아니라 강하게 사회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80년대 초반은 5공화국 초기 극단적인 상황으로 넘어가면서 단조로 이뤄진 격렬한 민중가요들이 등장하며 봄의 죽음과 패배, 절망의 비장함과 이를 딛고 일어서는 의지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민중가요들이 정치적 성향만이 강했다면 80년대 후반 전국을 뒤흔든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시발점으로 투쟁의 현장 그 중심에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단결투쟁을 통해서 획득한 노동자의 언어와 정서가 담긴 노래가 나오면서 전국 노동자의 가슴과 가슴에 울려 퍼지게 되었다. 당시 노동가요를 함께 부르는 것은 노동자의 입장을 노래를 통해 하나로 묶어 내는 힘이었으며, 그 동안 억눌리고 빼앗겼던 삶에 대한 분노가 승화되는 시간이었다.

“한국적 시스템에서 정부의 모든 기관은 오로지 기업의 사적이윤추구를 위하여 돌아간다. 서민의 목숨을 대가로 하는 그 이윤을 그들도 한몫 나누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살인적이다. 궁극적으로 어느 자본주의 시스템이나 다 그렇지만, 한국만큼 그 살인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 <박노자 저, ‘비굴의 시대’ 중>

이 공연은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보여주지 않는다. 극장에 울려 퍼지는 합창단의 노동가가 때로는 열렬하게, 때로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그리고 때로는 죽음과도 같은 침묵으로 울려 퍼질 뿐이다.

리허설 중 배우들에게 움직임을 열정적으로 디렉팅 중인 토모 연출 /ⓒ권애진

작품의 연출 뿐 아니라 극 중 배우로도 참여한 쯔카구치 토모는 관객은 ‘부조리한 웃음으로 가득 찬 블랙코미디’를 통해 ‘한국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모순’을 관람하게 될 것이라 설명했다. 그리도 동시에 ‘연대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개개인의 깊은 고독과 좌절, 굴절’을 보여주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 불가능할 정도로 깊어진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였다.

<노동가 : 역사와 실재, 혹은 그 하염없는 실천을 향하여>는 배우 전정훈, 서정식, 김수정, 강민규, 조영민, 김보경, 문지홍, 강정한, 박은영, 김유림, 아누빰트리파티가 ‘노동’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의 흔적들을 무대에 풀어낸다. 츠카구치 토모 연출과 많은 작품을 함께 한 이경은 조명감독, 류가혜 음향감독과 시내 오드 무대감독은 소극장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공감감적인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2018년 신설된 [연출의 판]은 창작극 및 작품의 개발과 발굴에 힘쓰고자 하는 신임 예술 감독의 주요사업 중 하나로 연출가 초청 작품개발 및 제작 프로젝트이다. 익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담는 [연출의 판-작업진행중]은 한 자리에 모인 동시대 연출가들이 토론을 통해 자신만의 미학을 실험하고 그 과정을 소개하는 도전의 장이다. 기존 사업을 이어받은 ‘작업진행중’은 연출가들이 공통 주제를 중심으로 각자의 예술 활동을 발전시키는 연극 실험실의 역할을 하며 연출가의 논의를 보다 풍성하고 심도 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2019년 연출의 판은 극단 노마드의 김민경 연출, 토모즈팩토리의 쯔카구치 토모 연출, 극단 창세의 백석현 연출, 무아실업의 윤혜진 연출이 다양한 색으로 ‘노동’을 그려내며 소극장 판은 연출가들의 상상력과 만나 배, 공장 탄광 등으로 무한 확장되고 있다.

<2019 연출의 판> 포스터 /(제공=국립극단)

토모즈팩토리는 한국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를 중심으로 연극성을 담보하되 무거움을 지양하고 진부함을 타파하여 무대가 다시 관객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살아남길 도모하고 있는 극단으로 경쾌함을 무기로 고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토모즈팩토리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연극 <노동가 : 역사와 실재, 혹은 그 하염없는 실천을 향하여>의 공연시간은 금요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 30분이며, 14세(중학생) 이상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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