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등의 국회 공청회를 통한 5.18 폄하와 자유한국당 김순례 김진태 무소속 이종명 의원 등의 5.18 망언에 분노, 국회 앞에서 74일째 농성중인 ‘5·18농성단’이 25일 4차 행동의날 행사를 개최하고, 5·18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였던 장세동 씨에게 자백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이날 오후 2시 비가 내리는 가운에 서울 서초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개최된 이들의 공개행사는 장세동 당시 작전참모에게 1)80.5.21 발포명령자 2)전두환의 특전사에 대한 작전명령 내용 3)양민에 대한 헬기사격의 주범 4)당시 계엄군의 지휘계통 이원화 등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읽으면서 시작됐다.

농성단은 이날 장세동 씨를 향해 “1980년 5월 21일 전두환 씨가 광주에 내려와 회의하고 광주를 떠난 직후 헬기 사격이 있었다”며 “최소 54명의 즉사자 포함 300명이 넘는 총상자가 발생한 이 작전의 발포 명령은 당신이 기획하고 전 씨가 명령했느냐”고 질의했다.

농성단에 따르면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이던 장세동 씨는 5·17 비상계엄 확대를 앞두고 광주에 급파됐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된 인물이다.

따라서 농성단은 “장 씨가 1980년 5월 특전사 작전참모로 모든 작전을 기획부터 지휘, 보고 받는 자리에 있었다”며 “그해 5월21일 집단발포와 헬기사격의 주범이 누구인지”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리고는 “제보에 의하면 장세동 씨는 5월 10일 광주에 급파돼 5월 27일 도청 최후 항쟁이 진압할 때까지 체류했다”며 “이 기간에 전씨가 당신에게 하달한 특전사의 광주진압 작전 실체는 무엇이냐”고 따졌다. 또 헬기사격의 주범이 누구인지, 당시 광주지역 계엄군 지휘관이 전 전 대통령인지 등을 공개 질의했다.

한편, 농성단은 지난 2월 11일 ‘지만원 공청회’ 이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농성단은 지난 4월 4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집 앞에서 제1차, 4월 11일 영등포경찰서에서 제2차, 4월 18일 당시 특전사령관 정호용 전 의원 집 앞에서 제3차 ‘5·18행동의 날’ 행사를 진행했으며 이를 통해 5·18의 진실과 전두환 및 지만원의 구속과 재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그리고 농성단은 이날을 제4차 ‘5·18행동의 날’로 정하고 오후 2시반 서울 서초구 소재 장세동 전 실장이 거주하는 한 아파트 앞에서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김종배 농성단 단장이 정호용 씨 잡 앞에서 진행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 5.18농성단 제공

때문에 이날 행사에서 정기백 농성단 공동운영위원장이은 장세동 씨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낭독한 뒤 기자회견을 했으며, 이후 김종배 농성단 대표(5.18 당시 도청항쟁 최후지도부 총위원장)가 장세동 씨의 집으로 공개질의서를 전달했다.

또 농성단 이날 회견에서 “1980년 5월 당시는 물론 이후의 진실에 대한 제보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며 “이번에도 기존에 장세동에게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들을 던졌다”고 밝힌 뒤 “오는 5월 2일(목) 제5회 5·18행동의 날에도 학살주범을 밝히는 5·18행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이날 농성단이 기자들에게 공개한 장세동 씨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다.

공 개 질 의 서

- 80년 5월 특전사 작전참모 장세동은 5·18진압작전의 진실을 밝히라 -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의 국회앞 농성이 74일을 맞이한 오늘, 여전히 5․18의 핵심적 진실은 39년째 묻혀있다. 이미 5·18민중항쟁은 대법원 확정판결, 국가기념일 제정·국립묘지 승격은 물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국내외의 평가가 완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등 광주학살 책임자들은 왜곡주범 지만원이 북한의 대남공작용 자료를 악용해 주장해온 북한 특수군 개입 폭동설에 동조해왔다. 이로 인하여 국론은 분열되고 5․18의 역사적 가치는 훼손되었다. 우리 5·18농성단은 5·18의 진실에 대해 역사와 국민의 이름으로 묻는다.

첫째, 1980.5.21. 집단발포는 당신이 기획하고 전두환이 명령했는가

장세동 당신은 1980년 4월부터 특전사의 작전참모로서 특전사 소속 부대의 모든 작전을 기획-지휘-보고받는 자리에 있었다. 당시 미군 비밀정보요원 김용장 씨는 1980.5.21. 낮 12시경 전두환이 광주에 내려와 제1전투비행단장실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부대장, 미상의 1인과 함께 회의를 하고 광주를 떠난 직후 헬기사격이 있었고, 오후 1시 30분 경 작전참모인 당신 휘하 11공수여단의 도청앞 집단발포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최소 54명의 즉사자 포함 300명이 넘는 총상자가 발생한 이 작전의 발포명령은 당신이 기획하고 전두환이 명령했는가?

둘째, 5·18 당시 전두환이 당신에게 내린 특전사의 작전명령은 무엇인가

장세동 당신은 월남전부터 누구나 인정하는 전두환의 분신으로 본 농성단이 받은 제보에 의하면 5.10 광주에 급파되어 5.27 도청 최후항쟁이 진압될 때까지 박중환 특전사 작전과장 등과 함께 광주에 체류했다. 해당 기간중 공수부대에 대한 실탄 지급이 이루어졌고, 잔인한 무력진압이 자행되었다. 특히 장세동 당신은 전두환의 직접 지시에 의해 정호용을 감시하고 광주에 내려간 3개 공수여단의 작전지시자였다고 한다. 당시 전두환이 당신에게 하달한 특전사의 광주진압작전 실체는 무엇인가?

셋째, 5·18 당시 헬기사격의 주범은 당신인가 허삼수인가 전두환인가

본 농성단이 받은 제보에 의하면 전두환의 또 다른 핵심측근으로 5·18에 깊이 관여했던 허삼수가 무장헬기 투입을 전두환에게 건의했다. 5.21 광주천변과 5.27 전일빌딩에 실제로 헬기사격이 이루어졌는데, 장세동 당신은 해당 기간 특전사 작전지시자의 위치에 있었다. 정호용처럼 배속부대 책임 운운하며 숨지 말고 대답하라. 헬기사격의 명령자는 당신인가 허삼수인가 전두환인가?

넷째, 5·18 당시 광주지역 계엄군의 지휘관은 전교사령관인가 전두환인가

1980년 5월 당시 3개 특전여단은 전교사에 배속되었다. 신군부는 도청앞 집단발포가 있던 5.21 진압작전에 미온적인 윤흥정을 소준열로 전격교체하였다. 이 과정에서 특전사는 전교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였음이 군기록과 재판과정을 통해 드러났다. 당시 특전사의 모든 이동과 작전명령을 기획 지휘하던 작전참모였던 당신 장세동은 전교사 기밀실에 설치된 특전사 상황실에 권총을 차고 들어와 협력하지 않으면 모두 군법회의에 넘기겠다고 위협할 만큼 전두환의 충실한 수행자였다. 당시 특전사 예하 제3, 제7, 제11 공수여단이 누구의 지휘를 받았는지 밝혀라. 그 지휘관은 계엄사령관이었는가 전두환인가?

우리 5·18농성단은 5․18의 진실이 밝혀지고 전두환 등 학살주범과 지만원 등 왜곡주범들에게 합당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 투쟁해나갈 것을 천명한다.

2019.04.25.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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