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피해자다움'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연극 <7번국도> 포스터 /(제공=남산예술센터)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남산예술센터의 올해 시즌프로그램 개막작으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와 공동 제작한 연극 <7번국도>가 오는 17일부터 28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관객들과 마주하고 있다. <7번국도>는 극작가 또는 지망생의 미발표 창작희곡을 투고하는 상시투고시스템 <초고를 부탁해>(2017)를 시작으로 이듬해 미완성의 희곡을 개발해가는 낭독공연 <서치라이트>(2018)를 거쳐 올해는 남산예술센터의 시즌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 의미를 더한다.

연극 <7번국대> 무대 /ⓒ권애진

연극 <7번국도>의 무대는 자동차 부품들이 바둑판 모양으로 큰 부품부터 작은 부품까지 차례로 나열되어 있다. 배우들은 바둑알마냥 그 격자 사이를 하나씩 채우며 연기를 펼쳐나간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바둑의 명언 중 하나 ‘봉위수기(逢危須棄;위험에 처해 있는 돌은 살리려고만 하지 말고 버릴 줄 알아야 한다)’처럼 모든 걸 다 짊어지고 가려다간 어깨가 짓눌려 한걸음 떼는 것조차 힘들 수 있기에 감당할 수 없다면 어쩌면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걸음을 뗄 수 있게 된다. ‘동수상응(動須相應;움직일 때에는 서로 호응을 해야만 한다)’처럼 의미 없는 돌 없이 하나하나가 서로 호응하며 의미를 가지듯 개개인의 협력과 상생은 중요하다.

연극 <7번국도> 공연사진_동훈(이리), 주영(전박찬) /ⓒ이강물(제공=남산예술센터)
연극 <7번국도> 공연사진_민재(최요한) /ⓒ이강물(제공=남산예술센터)
연극 <7번국도> 공연사진_용선(권은혜) /ⓒ이강물(제공=남산예술센터)
연극 <7번국도> 공연사진_기주(박수진) /ⓒ이강물(제공=남산예술센터)

<7번국도>에서는 두 사건의 피해자가 조우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삼성 백혈병 사건’ 피해자의 부모와 ‘군 의문사’ 피해자의 여자 친구는 아픈 사람들끼리라는 이유로 무조건 서로를 안아주지 않는다. 아픈 사람들조차 서로에게 너무나 쉽게 그렇게 살지 말라 이야기한다. 내 아픔이 당신의 아픔보다 더 크다고, 나의 아픔은 아무도 이해 못할 거라고 이야기한다. 목이 터지라 내지르는 소리들은 누구를 위한 소리인지 모른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내지르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함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일는지 모른다. 상대가 했던 말을 받아서 다시 함은 상대를 이해함일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배해률 작가의 첫 번째 장막희곡이며, 극작가를 겸하고 있는 구자혜 연출가가 지난 해 <사물함(김지현 작)>에 이어 다른 작가와 호흡을 맞춘 두 번째 작품으로 이번 작품에서는 사회적 참사의 본질을 파헤치는 시선을 피해자에게 맞추고 있다. 공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상이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죽음만큼은 사실에 가깝다 작품은 사건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인물 사이의 갈등충돌변화를 증폭시켜 드러낸다. 피해 당사자를 비롯해 피해자의 가족, 피해 가족의 사이 등까지 여러 층위에 존재하는 갈등을 외면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팽배한 ‘피해자다움’은 더욱 견고해져 다시 피해자를 다시 압박해왔던 사실에 주목했다.

연극 <7번국도> 출연진 /(제공=남산예술센터)

삼성 백혈병 사건 피해자 지영의 어머니로 나와 슬픔과 분노를 토하는 어머니 동훈 역 이리 배우, 상근예비역 주영 역 전박찬 배우, 군에서 의문사당한 주영의 여자 친구 기주 역 박수진 배우, 같지 않은 슬픔의 방식으로 외따로 슬퍼하는 동훈의 남편 민재 역 최요한 배우, 삼성 백혈병 사건 피해자 용훈의 누나 용선 역 권은혜 배우가 피해자들의 가슴 속 깊은 슬픔과 고통을 토해낸다.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은 우리가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질문, 그리고 연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젊은 작업자들의 협력체이다. 앞으로도 당연히 새로운 개념을 생산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기쁘게 지속하며, 그 움직임이 동시대의 현실과 환상에 조응하여 기꺼이 내파 할 수 있는 힘으로 생동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막을 내리는 28일(일)에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문자와 수어(수화)통역,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이 제공되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로 진행된다. 지체장애인을 위한 휠체어석은 모든 회차에서 예매가 가능하다. 문자통역을 위한 자막이 무대 중앙에 설치되며 수어(수화)통역사는 무대 위에 위치해, 전 좌석에서 통역을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배우의 호흡과 움직임을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전 구역의 첫 번째 열을 우선적으로 제공한다.

답답하고 답답한,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만 같은 고통을 이야기하는 연극 <7번국도>의 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7시30분과 주말 오후 3시이며, 중학생 이상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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