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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어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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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어망전
  • 김덕권
  • 승인 2019.04.2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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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어망전
《장자(莊子)》<외물편(外物篇)>에 ‘득어망전(得魚忘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는다는 뜻으로,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면 이를 이루기 위하여 했던 일들을 잊어버림을 이르는 말이지요.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데 필요한 것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곧 통발을 잊어버린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를 잊어버린다. 말이란 생각을 전하기 위한 것인데, 생각을 전하고 나면 곧 말을 잊어버린다. 내가 어찌 이렇게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

망전(忘筌),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모두 시비와 선악을 초월한 절대 경지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득어망전’은 뜻한 바를 이룬 후에는 그 수단이나 과정에 대하여는 애착을 갖지 말라는 의미지요.《사유경(蛇喩經)》에는 이런 재미있는 비유가 나옵니다.

부처님이 비구(比丘)들에게 집착을 버리라고 하면서 설법을 하십니다. 어떤 나그네가 “평화의 땅(彼岸)으로 가는데 뗏목으로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무사히 건넌 뒤 뗏목으로 큰 덕을 보았으니 메고 갈 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도 건너게 두고 갈까요?” “이럴 때는 두고 가도 할 일을 다 한 것이며, 궁극에는 교법마저 잊는 경지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일을 성취했으면 수단과 과정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을 버리라는 말씀이지요.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필요 없습니다. 강을 건너고도 배에 연연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깨달음을 얻고도 성인(聖人)의 이름이나 경전(經典)의 자구(字句)에 연연하는 것은 지엽말단(枝葉末端)에 얽매인 태도라는 것입니다. 본질을 얻었는데 껍데기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목표를 달성했으면 수단은 잊어야 합니다. 나아가 목표를 성취했다는 사실마저도 잊어야 진정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망전’이나 ‘망제’ ‘망언’은 모두 시비(是非), 선악(善惡)을 초월한 절대 경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득어망전이란, 진리에 도달하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수단을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본질은 잃어버린 채 말단에서 헤어날 줄 모릅니다. 돈이나 권력, 명예는 모두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수단인 돈과 권력, 명예에 집착하여 진정한 행복은 영원히 못 만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행복해지려고 돈과 권력, 명예를 움켜쥐었는데 수단인 돈이나 권력, 명예에 얽매여 목적을 상실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26일,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33)씨가 구속됐습니다. 수원지법 박정제 영장전담판사는 “증거인멸 우려 및 도망 우려가 있어 구속사유가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입니다. 결정적인 증거는 박씨의 체모(體毛)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경찰이 박씨의 다리털 등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양성반응이 나온 것이지요.

그러나 박유천씨는 지난 17일과 18일, 22일 3차례에 걸친 경찰 조사에서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그는 경찰 조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10일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마약을 하지 않았고 권유한 적은 더더욱 없다”고 주장한 어리석음을 저질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知識)의 집착(執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신이 사는 ‘우물 안’이라는 공간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넓디넓은 바다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여름에만 사는 매미는 ‘여름철’이라는 시간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겨울의 차디찬 눈밭을 알지 못합니다.

잘난 척하는 지식인은 자신의 지식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서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있는 공간, 내가 느끼는 나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버릴 때 진정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고 또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새것을 잡으려면 쥐고 있는 것은 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 어디 그런가요? 움켜진 손으로 뭔가를 또 잡으려는 게 인간입니다. 인간은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해 파멸(破滅)을 불러옵니다. 자신이 한 말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베푼 은혜가 되레 서운함이 되어 돌아옵니다. 모두 뭔가를 놓지 못한 탓이지요.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聖君) 요(堯) 임금이 허유(許由)라는 은자(隱者)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허유는 사양을 했지요. “뱁새는 넓은 숲에 살지만 나뭇가지 몇 개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셔도 배가 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허유는 이 말을 남기고 기산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요 임금이 기산을 찾아가 그럼 구주 땅이라도 맡아달라고 청했지만 허유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요 임금의 말로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고 여긴 그는 흐르는 물에 귀를 씻었습니다. 마침 소 한 마리를 앞세우고 가던 소부(巢夫)가 허유에게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왜 그리 귀를 씻고 계시오?” 허유가 자초지종을 말하니 소부가 껄껄 웃습니다.

“그건 당신이 지혜로운 은자(隱者)라는 소문을 은근히 퍼뜨린 탓이 아니오?” 소부가 물을 따라 올라가자 허유가 묻습니다. “어디를 가시오?” “당신 귀 씻은 물을 내 소에게 먹일 순 없지 않소.” 쓰임이 다한 것을 데리고 다니면 몸도 마음도 무겁습니다. 베푼 은혜를 품고 다니면 서운함이 마음을 짓누르고, 뱉은 말을 담고 다니면 늘 남의 행동거지를 살피게 됩니다.

장자는 “말을 잊은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말을 잊는다는 건 뭔가에 매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요? 뱁새는 나뭇가지에 매이지 않기에 자유롭고, 두더지는 강물에 매이지 않기에 족합니다. 취하기만 하고 버리지 못하는 건 반쪽짜리 지혜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가수 박유천씨나 지금 국회에서 싸우는 ‘공수처법’ 혈투나 다 ‘득어망전’을 하지 못한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이 아닐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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