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은 기자 ] 독재자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진과 약력이 육군 홈페이지에 게재된다. 김재규 전 부장의 이름과 사진은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지휘관 명단에도 40여년 만에 올라갈 예정이다. 그는 육군 18대 3군단장과 15대 6사단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김재규라는 이름은 오랜 세월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된 이름이었다. 김재규 전 부장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사형당한 후, 그의 가족들도 모진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가짜로 만들어진 ‘박정희 신화’가 한국사회에서 자리 잡으면서 김재규라는 이름은 계속 금기시된 채로 남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막장 행각들이 낱낱이 드러나며 김재규 재평가론은 활발하게 일었다. 특히 그가 유신독재정권에 항거하던 민주세력들을 뒤에서 비밀리에 도와줬다는 점, 또 박정희와 차지철을 제거함으로써 부마항쟁 당시 킬링필드가 벌어졌을 법한 상황들을 막았다는 점 등이 알려지면서다.

박정희의 경호실장 차지철은 부마항쟁이 일자 소위 ‘킬링필드’ 제안을 박정희에게 했다고 한다. 100만 200만의 시민을 제거할 수 있다는 그런 끔찍한 제안이었다. ⓒ노컷뉴스

그런 재평가 여론을 더욱 높인 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박정희를 쏜 이유에 대해 ‘최태민'이란 이름을 김재규 전 부장이 언급했다는 점도 주목을 받는다.

김재규 전 부장이 (박근혜의 등을 업은)최태민의 온갖 전횡을 파악한 뒤, 박정희에게 “박근혜와 최태민을 떼어놓아야 한다”고 보고했으나 박정희가 박근혜의 말만 듣고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이는 사실상 30여년 이후 벌어진 국정농단의 전주곡이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그에 대한 재평가여론이 얼마나 활발했으면, 박근혜가 파면된 다음날 그의 묘소와 묘비 앞에는 많은 꽃다발과 함께 ‘박근혜 파면’ 소식이 담긴 신문이 놓여졌을 정도니.

박근혜가 파면된 다음날 김재규 전 부장의 묘소와 묘비 앞에는 많은 꽃다발과 함께 ‘박근혜 파면’ 소식이 담긴 신문이 놓여졌다. ⓒ루리웹 게시판

국방부는 지난 1일 "역대 지휘관 사진물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담은 '국방장관 및 장성급 지휘관 사진 게시' 규정 등 부대관리훈령 개정(안)'이 국방부 차원에서 마무리됐다"며 "이는 육·해·공군 예하 부대에 하달된다"고 밝혔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역사적 사실의 기록 차원에서 역대 지휘관 사진은 (차별을 두지 않고) 전부 게시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번 주 중으로 김 전 중정부장 사진과 약력이 육군 3군단 및 6사단 홈페이지에 소개되며, 역대 지휘관 명단에도 게시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지난해 8월에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다른 부대관리 사안과 함께 처리하겠다는 이유로 8개월여간 보류했다. 당시 국방부는 “군 역사를 군 일부 세력의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을 방해하면서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하는 차원”이라며 지휘관 사진물과 관련한 부대관리훈령의 개정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국방부는 역대 지휘관 사진 게시를 부대 역사관이나 회의실 등 한 곳에만 할 수 있도록 하되, 세부 지침은 육·해·공군 각군 총장이 정하도록 했다.

박정희 암살 이후, 체포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재판정에서 “공산주의와 대결해야하기 때문에 철저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며 박정희 유신독재를 끝내야 함을 강조했다. ⓒ노컷뉴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육군 보안사령부의 제16대 사령관을 지냈지만,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는 사진이 걸리지 않는다. 안보지원사는 보안사나 기무사와 단절한 새로운 조직이라는 이유에서 과거 보안사와 기무사 사령관 사진을 모두 폐기한 바 있다. 군의 정보기관인 보안사나 기무사는 독재정권 시절 정권의 수족 역할을 하며 악랄한 행동을 해왔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필요성이 있어서다.

군은 그동안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사진 게시를 금기시했다. 그가 박정희를 제거해 ‘군이 정권을 창출했다’는 자부심과 명분을 무너뜨렸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에서다. 전두환 등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탈취한 뒤로 그의 사진을 전 군부대에서 떼어냈고, 그가 거쳤던 부대의 기록물에서도 그의 이름을 삭제한 바 있다.

그러나 2017년부터 정치권(더불어민주당)에서 평가는 달라도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돼야 한다며 김재규 사진 게재와 기록 게재 필요성을 제기해 국방부의 훈령안 마련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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