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인류는 무한한 재화생산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를 바탕으로 인류는 영장류의 한 종으로서, 20만년 호모사피엔스의 종의 역사를 마감하고 전혀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하였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고 바다 속에도 들어가고 심지어 지구둘레를 하루 만에 주파하고 우주 밖에까지 진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개체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정도의 능력을 월등히 넘어서, 맘만 먹으면 지구의 육지와 해양을 바꾸고 다른 종을 절멸시킬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진 가공할 종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단일 개체로서의 인간은 아직도 하찮아서 호랑이나 사자, 곰과 같은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에도 힘듭니다. 하지만 집단 존재로서 인류는 지구상의 다른 생물종과는 완전히 다른 격의 존재로서 주변 환경에 적응하던 종이 아니고 지구환경을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대로 바꿀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새로운 인류로 진화의 원천은 산업혁명을 통해 이룬 자본주의 생산력입니다. 그것은 조건만 맞으면 거의 무한대의 재화 생산을 가능케 하고, 그 발전의 끝도 없습니다. 인류는 자신이 가진 새로운 힘, 체계화되고 집중된 기술을 바탕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즉 물질의 개벽입니다(이것이 왜 자본주의 하에서 가능하게 되었는지는 다음 기회에 다룹시다).

과학과 기술

기술발전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라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기술만으로 산업혁명을 추동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은 인류의 이전 역사 속에서도 꾸준히 발전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아닙니다.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서 과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일단 과학은 단순히 기술의 집약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술은 현상을 발견하고 그를 다시 이용하지만 과학은 기술과 다르게 원인을 찾아내고 인과를 설명합니다. 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기술로 가능하지만 연소를 설명하는 것은 과학입니다. 발화물질, 산소와 산화과정에 대한 이해, 기술이 쌓이고 쌓인 후에 여러 현상들을 일반화하는 한 차원 높은 사고 속에서 인과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기술진화 속에서 나오지만 과학으로 정리된 기술은 그 발전 단계를 폭발적으로 올리는 계기를 맞이하게 합니다. 전자의 발견은 1897년의 오늘, 4월 30일, J.J. 톰슨이 실시한 음극선 실험에 의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양자세계가 바로 우리 앞에 실제함을 밝힐 수 있었고 라디오 > 진공관 > 트랜지스터 > TV > 컴퓨터 > AI 까지 연결되어 오늘날의 전자 산업이 가능해 졌습니다.

공학과 마찬가지로 한의학도 임상에 기반한 기술적 요소가 있습니다. 왜를 묻지 않습니다. 왜를 묻는 경우, 더 이상한 상황을 맞이합니다. 황당한 인과를 끌어 대는 것입니다. 사대적이고 음습한 음양오행, 주역의 세계관이 21세기에도 죽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물질은 개벽해도 정신이 못 따라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한의학은 찬 성분, 뜨거운 성분, 나무의 성질, 불의 성질 등 개똥철학의 범주화를 뛰어넘어서야 발전이 있습니다. 진화와 세포학을 받아들이고 경험적으로 의미있는 데이터에 기반한 임상결과를 깊이 연구하여 약초나 약성 성분을 분석하고 그를 인체내부의 물질대사와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이 과학적 방법이고 이것이 병의 이유와 근원을 따져서 치료하는 것, 과학적 의료의 시작입니다.

물질을 범주로 구분하고 계통화를 할 때 과학적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화를 통해서 공통분모를 찾고 그것의 추상화를 통해 상위 계층을 찾는 것입니다. 우렁숭이(멍게)의 일생을 관찰하여 유생때는 올챙이처럼 생겼고 척색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로 하여 척추동물과의 연관성을 알아내는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추상화, 일반화, 범주, 계통적 사고 등 과학적 방법론은 근대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고대 철학의 합리적 추론에서 보듯이 맹아적으로 존재하기도 했지만 실제 의미있는 방법론으로 신인류로의 진화에서 핵심이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철학의 발달에 의존합니다. 유물론의 발전과정이 바로 과학적 방법론의 형성과정과 같습니다. 유물론 철학의 교조인 맑스조차 신인류의 도래까지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학발전에서 양자영역에 도달하고 물질이 운동한 궤적이 데이터가 되어 물질의 고유한 성질이 될 것이라는 것은 19세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물질세계의 질적 도약 앞에 인간의 인식체계, 철학은 현재 시점으로 더욱 빈곤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철학다운 철학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학과 기술은 인과의 블랙박스를 이미 만들어진 프로세스로 간주합니다. 그냥 가져다 사용해도 되고 결과가 같으면 만사형통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설이나 상상은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하지 않은 추론에서 출발한 가설은 망상이 되어 혹세무민, 음모설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요즈음의 천체물리학은 가설이나 상상의 천지입니다. 빅뱅이론을 우리나라처럼 열렬히 믿는 곳도 없는 듯합니다. 우주의 모양에 대한 나름의 이론도 없이 빅뱅을 믿다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우리 주위에 박사들, PhD는 널려 빠졌는데 과연 이들이 과학(+철학)을 이해하고 사물의 원리에 대해 연구했기에 박사가 되고 그만한 인정을 받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세계와 자신에 대한 사유를 해 본 적이 있으며 자신의 학위 논문이 세계의 운행 질서 속에 어디를 다루는 것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 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박사님, 철학 한 번 해 보았습니까? PhD인데!’

철학은 어렵다, 과학도 어렵다

진실로 철학은 쉽지 않습니다. 철학의 시작은 세계에 대한 설명이므로 과학은 철저히 철학의 구성부분이 됩니다. 기술과 과학이 발달하기 전부터 인간은 세계관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이고 신학입니다. 불교인식론이 관념적이지만 변증법적이라는 것은 2600년 전의 인간들도 열심히 사고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그 뿐입니다. 그렇지만 불교는 어렵습니다. 범인들은 무지 노력을 해도 이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당시의 기술발전 수준에서 과학은 싹이 틀 수 없는 시점, 즉 유물적 세계관이 만들어 질 수 없는 상황에서 변증법적 방법론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마무시한 노력이 필요한 과정의 산물입니다.

오늘날의 인간에게도 철학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 사고체계는 역사이래로 일관되게 발전해 왔는데, 오래된 생각이 값비싼 골동품처럼 더 희소성이 있다는 망상들로 가득차서, 200년 전도 부족해서 2000년 전의 인간들의 사고체계를 더 숭상하고 있습니다. 많은 증거와 사실들 앞에서도 진화의 세계를 믿지 않으려 하고,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세포의 군체로부터 생물기관이 분화되어 개체로 발전했다는 사실 앞에서, 전생을 믿거나 윤회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죽어서 천당을 믿고 싶은 것이 현재 인간의 정신 수준입니다.

신앙과 믿음의 세계를 넘어 현실의 과학과 철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도 알고보면 푸닥거리 미신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상상은 자유이나 인터스텔라나 빅뱅이 판을 치고 있는 사이비 과학의 세계가 그다지 아름답지만 않습니다. 블랙홀이 구멍이라서 화이트홀로 연결되는가요? 블랙포인터라고 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을까 싶습니다? 우주모양은 구형인가, 도넛인가, 말안장 모양인가요? 팽창하는데 끝이나 경계는 없는가요? 우주의 모양도 말하지 못하는 팽창론, 무엇을 위해 그 덧없는 이론을 존재하는가요? 양자세계가 시간여행을 이끌어요? 양자도 운동하고 궤적을 만들니다. 빛이 파동과 입자 성질을 모두 띠는 것은 그것이 공전하면서 전진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물질에 고유한 성질로 그것이 운동한 궤적입니다. 따로 시간이 물질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아닙니다. 수학적으로 궤적을 읽어서 그래프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상이한 공간 속에서 물질의 운동이 빠르고 느리고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일관되게 운동합니다. 모든 물질은 운동합니다.

시간여행을 믿는다면 사람을 과거로 보내지 말고, 통 크게 40억전 태양이 생기는 시점으로 돌아가서 현재의 태양이 마침 만들어지고 있는 태양의 기본물질들을 삼켜버리는 좀 더 큰 상상은 어떠할까요?

하지만 철학은 아름답다

인간사고 속에서 과학은 항상 거리를 두고 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철학을 멀리하는 것은 철학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영혼이나, 내세에 대한 생각, 영생과 신앙을 대신하여 과학을 받아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빨간 알약은 유물적 세계, 과학적 세계로 당신을 인도합니다. 파란 알약의 세계, 비과학과 철학없는 세상.

AI만능을 주장하는 이들은 실상 AI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드라마 Humans에 나오는 사람을 닮은 안드로이드 로봇은 개체별로 사고(?)합니다. 인간의 사고작용은 현재 컴퓨터의 프로세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구분된 중앙처리장치나 지워지지 않는 메모리, 외부로의 네트워크 장치 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집단으로 생활하고 집단으로서 진화를 해 왔지만 기본적인 사고체계는 모두 개체로서 독립적이다. (따라서 철학과 과학이 어려운 것이고) 로봇은 개체로 구분될 이유가 없습니다. 연결되어 전체로서 계산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알파고와 왓슨는 프로세스이자 좀 더 발전된 전문가 시스템입니다. 지극히 제한된 영역에서, 인간이 가진 제한된 데이터 저장능력에 대비하여 (인간을 이겼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인지능력보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수준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자원입니다. 우리 뇌가 1200조 개의 시냅스에 포도당을 공급하는 순간, 현재 그 정도 역할을 하는 컴퓨터 프로세스를 돌리려면 원자력발전소 10개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발전소를 달고 다니는 로봇! 상상은 자유지만 우울하고 진실이 밝혀진 현실은 도리어 유쾌합니다.

현대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세계관을 말하지 않습니다.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나 없나를 잠시 생각하게 하는 사회학 혹은 심리학을 하면서 먹고 삽니다. 현대철학에서 현실의 과학적 발전 상황은 논외입니다. 계통이 아니라 계보를, 그리고 인식론 대신 심리학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합니다. 모든 과학의 출발로서 세계의 물질로서의 통일, 운동과 변화, 발전, 추상과 일반, 범주화… 이 모든 것이 인간역사의 진화의 산물입니다. 당신이 기술자라면 과학을 배우고 과학자라면 철학을 배우고 그리고 철학자라면 세계를 설명해야 합니다.

철학은 아름답습니다. 철학이 설명하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철학을 하는 당신도 아름답습니다.

양기철

협동조합 큰바위얼굴 이사장. 다른백년 이사. ICT 전산기술자. 중소제조기업 컨설팅.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철학서(세계철학사 2~3권) 대표번역과 '80년대 학생운동사' 대표집필을 하였다. 2014년 협동조합 큰바위얼굴을 설립하고 주된 사업으로 청년과 학생들의 주거공간을 마련해 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나 국토부와 협력하여, 협동조합 임대주택을 보급하는 일을 협동조합의 최우선 사업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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