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권 뉴스프리존 논설위원장

언어에도 '격'이 있다. 말하려고 하는 내용을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에 따라 언어의 느낌이 다르고, 품위가 다르고, 효과도 다르다. 

인간만이 언어를 쓰는 이상 그 품격을 유지하는 것은 곧 화자(話者)의 인격과 인품을 나타낸다. 그것은 모국어나 외국어나 마찬가지다.

베스트셀러 《말의 품격》(이기주 지음)을 펴낸 출판사 서평의 일부다. "지금 우리는 '말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온당한 말 한마디가 천 냥 빚만 갚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나아가 조직과 공동체의 명운을 바꿔놓기도 한다. 말하기가 개인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 지도 오래다."

본론에 들어가 영어를 잘 하려면 문법 따로 회화 따로가 아니라는 인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 실제 생활하는 영어의 맥락 속에서 단어나 문법을 연결하여 하나의 덩어리(cluster)로 연습하고 체득하는 습관을 길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학습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어떻게 습관을 들이느냐가 관건이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그동안 문법과 독해에만 치중해 왔다고 해서 반성론이 고개를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은 지금까지 '문법과 번역 중심 학습방법'(The Grammar-Translation Method)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전통적인 방법이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었다. 특히 입시에서 문법과 독해와 어휘를 중시하기에 이러한 교수법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의사소통이 강조됨에 따라 교육과정도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실제 생활영어 속에서 듣고 말하기에 비중을 두는 '청화(聽話) 중심 학습방법'(The Audio -Lingual Method)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지금 영어교육이 전반적으로 '청화주의'(Audiolingualism)로 흐르고 있다. 청화주의란 행동주의 심리학에 바탕을 둔 언어 학습형태로 읽기와 쓰기 보다는 듣기와 말하기를 중시하고 대화와 연습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를 쓰는 습관을 길들이게 하고 계속되는 반복을 통해 언어가 저절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아가 학습 현장에서는 배우고 있는 표적언어(target language)만 쓰도록 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새롭게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영어교육정책은 바로 이러한 청화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과거 영어교육이 오직 문법과 독해에만 역점을 두어 왔다면 이는 개혁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마치 영문법은 중요하지 않고 생활영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교육 커리큘럼을 혁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시절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이 문법과 독해에 치중해 있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국민 모두가 일상적인 회화는 못할지언정 다양한 영어자료는 제대로 독해하여 실생활에 유익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생활영어가 필요하다고 하여 그 분야에만 집중하여 자원과 재원을 쏟아 붓는다면, 또 다른 한 쪽으로만 치우친 영어를 배우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지금껏 영문법과 읽기 공부에 치중하였으면 그 자체로서도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균형을 잡아가며 영어 말하기와 쓰기를 보강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영어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교육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영어 교육자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과거 영어교육이 문법 위주로 잘못 되어 있어 회화체 영어로 전면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토익 만점 받은 사람이 미국 가서 말 한마디 못해 억울하여 영어 헛공부했다고 한탄하면서 다시 영어를 공부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울 때는 모국어와 달리 문법의 체계를 우선 학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 사람이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울 때와 영어를 배울 때의 언어 습득의 매커니즘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법불용론 주장은 자칫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이나 영어 교육열이 강한 우리나라 학부모들에게 문법은 소용없는 것처럼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모국어로 한글을 배울 때와 외국어로 영어를 배울 때는 정확한 언어 사용에서 문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흔히들 우리가 한국어 배울 때 언제 문법부터 배웠느냐는 논리를 자주 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국어와 외국어의 습득 과정이나 학습 방법은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문법을 중시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 원어민 국가나 영어를 제2 외국어로 채택해 병용하는 국가에서도 오래 동안 이슈가 되어 왔다.

어쨌든 정확하게 문법을 사용하는 것은 문서나 대화의 신뢰성과 품격을 높여주며, 이는 바로 말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과 설득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의사소통에서 문법에 틀리지 않고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나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과 같다. 또한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전달하는 내용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표준영어를 쓰려고 한다면 문법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다. 더욱이 문법은 메시지를 명쾌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품격 있는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말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면서도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는가에 달려있다.

가령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한국 사람이 문맹인데도 한국말로 모든 것이 통한다고 해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췄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다. 정확하지 않은 영어를 써서 말이 통한다 해서 영어를 올바로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의 흑인영어 스타일로 비즈니스 협상을 하고, 국제회의를 하고, 학자들이 세미나를 한다면 될 일인가?

앞서 말한 대로 우리말을 하는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 잘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영어를 그 수준으로 하면 아마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 한다”고 극찬 할 것이다. 모국어와 외국어를 배울 때는 분명 문법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야 한다.

당연히 우리말도 그렇겠지만, 올바른 문법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영어 글쓰기는 글로벌 시대 경쟁력을 보장한다. 글로, 말로 표현된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의 사회적 역량을 대변하게 된다.

문법에 맞추어야 제대로 된 영어문서가 되고 격조 높은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곧 문법이 맞아야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전달될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와 같이 첨단 기술이 발달해 있는 사회 풍토에서는 많은 메시지들이 기록되어 저장되기 때문에 수시로 출력해 볼 수 있다. 그런 기록된 자료들에서 문법의 오류가 있다면 두고두고 지적될 것이다.

영문법의 효시는 1755년 사무엘 존슨이 최초로 영문법의 원칙을 정리하려고 시도하며 편찬한 『영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에 로버트 로츠가 『영문법 입문』을 썼다. 그리고 1928년에 와서야 비로소 지금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출간되면서 오늘날의 문법체계가 갖추어졌다.

그 후 1970년대까지 영문법을 가르치는 중요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에서 문법을 학문적인 기초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문법을 단순히 "교실에서 배우는 공부"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 생활에서 활용되는 커뮤니케이션의 규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굿 잉글리시 커뮤니케이터'(Good English Communicator)가 되려면 문법에 맞춘 화법이나 어법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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