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극락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엘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가(佛家)에서는 착한 일을 하면 극락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간다고 하지요. 어찌 보면 협박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사실이 그런가 하고 의구심도 듭니다. 종교도 모르고 믿으면 미신이라 하였습니다. 그럼 어디 기독교의 천국과 불교의 극락, 그리고 지옥이 무엇인지 알아보면 어떨까요?

천국과 극락은 사실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다르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종교에서 내 세운 방편(方便)이 아닐까요? 기독교에서 보는 인간의 구원은 신에 의해서 성취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의 뜻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만 신에 의해서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불교에서 보는 인간의 구원은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서 구원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인간의 태어난 환경이나 두뇌의 명석함이 없을 때에 매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성립된 사상이 정토사상(淨土思想)인 것입니다. 정토사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바세계(裟婆世界)와 다른 곳에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고 하는 사상이지요.

그곳을 극락이라고 하며, 좋은 환경과 아미타(阿媚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쉽게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극락에 갔다고 하더라도 중생의 신분을 벗어난 것은 아니고, 거기에서도 깨달음을 얻어야 중생을 면하고 불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하여간 신의 손에 의지해야 가는 곳이 천국이고, 자신이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야 가는 곳이 극락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천국에 가는 것은 신의 뜻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고 할 수 있고, 불교에서는 인간이 극락에 가는 것은 인간의 염원(念願)과 수행에 의해서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타력(他力)의 종교이고 불교는 자력(自力)의 종교인 것이지요. 극락이 불교의 시초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앙을 중요시하는 후대의 종교사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참고로 근본주의 불교라고 할 수 있는 남방불교에서는 이 사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기독교에서 보는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면, 극락은 불교에서 보는 궁극적인 구원은 아닙니다. 다만 깨달음을 얻기 위한 좋은 환경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어쨌든 인간의 구원은 깨달음을 통하지 않으면 성취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불교사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반대가 지옥이라고 하지요. 기독교에서는 천국이라고 해봐야 크게 천국과 지옥이라는 대립 상을 세운 후 천국을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천국으로 가기위해서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논리로 사람들에게 예수를 중심으로 해서 뭉치게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가 있어도 죄다 용서되어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죄가 없어도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폐쇄적이고 배타성이 아주 강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은 좀 다릅니다. 극락은 즐거움이 극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참선수행(參禪修行)을 통해 무아지경의 상태에 들면 만족감과 스스로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이상한 느낌이 주어집니다. 이것을 열반 낙(涅槃樂)이라고 합니다. 그 어떠한 것에도 걸리지 않은 채 홀로 자유로운 평화로운 상태를 이름이지요. 그 상태에 들면 누구라도 “이보다 더한 행복은 있을 수 없다”란 생각을 하게 될 만큼 그 즐거움은 묘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야말로 진공묘유(眞空妙有)인 것입니다.

저는 극락과 지옥의 차이점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극락과 지옥은 사후에 존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극락과 지옥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 이 땅 위에도 있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매일 매일 시간 시간마다 육도 윤회(六道輪回)를 하고 있으며, 지옥과 극락을 수도 없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불보살은 중생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따로 수행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서 극락을 볼 줄 아는 것이 참 수행이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에게 진리의 바른 눈을 일깨워 지옥에서 건져 주는 것이 참 불자의 도리일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다 저 나름의 천국과 지옥이 있지요. 책이 잔뜩 쌓이고 컴퓨터가 놓인 방이 극락인 저 같은 사람, 음반이 가득 쌓이고 질 좋은 오디오가 놓인 방을 극락으로 아는 사람, 화려한 옷들이 줄줄이 걸린 옷 방이 천당인 사람, 포도주와 브랜디 병이 가득한 방을 천당으로 아는 사람, 돈이 가득 들어 있는 방이 극락인 사람 등등, 각자의 극락은 다 다릅니다.

천국의 의미는 걱정거리가 없고 그곳에 가면 마음이 착해지고 편안해지는 그런 곳을 말하는 것일 텐데요. 그러고 보면 금은보화가 쌓인 곳은 결코 천당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걱정과 불안이 있기 때문이지요.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장소 역시 극락일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에 불만이 차기 때문이지요.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장소 역시 천국이 아닙니다. 향긋한 아기 냄새가 있는 곳,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 좋아하는 일이 있는 곳, 소박한 취미가 있는 곳, 덕화가 만발하는 곳, 바로 그런 곳이 우리들의 천국이고 극락이 아닌지요?

그 천국과 극락에 살려면 삼학수행(三學修行)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갈 수 없습니다. 정신수양(情神修養)의 결과는 생사자유와 극락수용과 만사성공입니다. 그리고 사리연구(事理硏究)의 결과는 사리통달과 중생제도와 만사성공이지요. 또한 작업취사(作業取捨)의 결과는 만행구족(萬行具足)과 만복원만과 만사성공입니다.

결국 극락과 천국은 저 천상위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삼학공부(三學工夫)를 수행하여 얻은 마음의 힘이 천국과 극락을 자유자재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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