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의 1억원 시계부터 황우석교수 깔끔히 정리까지,.

검찰의 대표적 ‘특수통’이었던 홍만표(57) 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이 27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뉴스프리존= 온라인뉴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 로비 의혹에 연루된 그는 과거 여러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 성과를 내어 검찰을 대표하는 수사 검사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변호사 개업 4년여 만에 형사처벌을 앞두게 된 그의 추락은 검찰과 전관 출신 변호사의 공생 관계로 왜곡된 우리 법조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검사 홍만표’의 출세와 몰락을 추적해봤다.

홍 변호사에게는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도 5억원 이상의 소득 신고를 누락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거나 브로커를 이용해 부당하게 사건을 수임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도 적용될 수 있다.

이미 홍 변호사는 검찰에 출석하면서 기자들에게 “(조세포탈 혐의와 관련해) 불찰이 있었다”며 일부 혐의를 시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검찰 소환 전에는 국세청에 미납 세금을 납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는 명확한 혐의 사실을 인정해 법원에 증거 인멸이나 도주할 뜻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구속을 피하거나 형량을 줄이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법조 비리 의혹이 조직 내부를 겨냥하고 있는 만큼 홍 변호사의 구속 수사를 통해 의혹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다만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만으로 전관·브로커의 사법기관에 대한 로비 의혹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법률 지식에 밝은 사건 당사자들이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도 수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브로커 이민희 씨(56)는 지난 20일 검찰에 자수한 후에도 로비 혐의 등은 부인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한편 검찰은 최 변호사의 사무장 역할을 했던 브로커 이 모씨(44)의 행방을 파악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이씨는 평소에도 법조계 친분을 과시하면서 최 변호사의 사건 수임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내용이 담긴 구치소 접견록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이씨의 신병 확보가 재판부 로비 의혹 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당대 최고의 수사 검사였던 홍만표 변호사는 왜 형사처벌을 앞두게 됐을까요? 그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웬만한 대형 사건 수사에는 모두 참여했습니다. 변호사 개업 이후에는 4년여 만에 수백억원을 벌어 안대희 전 대법관, 황교안 총리 등 쟁쟁한 검찰 선배들을 제치고 최고의 ‘전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를 존경하는 후배 검사들한테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가까이서 지켜본 법조 출입기자가 그의 추락 원인을 따져봤습니다.
 

“내 사무실 처음이세요? 이 기자가 그동안 무심하셨네.” 지난 4월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빌딩 ㅈ법률사무소에서 만난 홍만표 변호사는 의외로 담담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50억원 수임료 다툼’으로 촉발된 법조비리 사건의 불똥이 그에게 막 옮겨붙기 시작할 때였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조심스레 묻는 내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검찰에서 한창 잘나가던 시절 당당하게 수사 브리핑하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는 이따금 넉넉한 미소도 지어 보였다. 마치 오랜만에 찾아와서도 껄끄러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기자의 곤혹스런 처지를 이해한다는 듯.

“윗사람 주문 맞추는 재주 뛰어나”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5월27일 그는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그가 수많은 거물들을 세웠던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포토라인에 직접 선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도 선임계를 제대로 내지 않고, 부동산 관리 업체를 통해 수임료를 세탁하는 방법 등으로 탈세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011년 9월 변호사 개업 후 화려했던 검찰 경력을 바탕으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하는 주요 사건을 싹쓸이하다시피 수임했고, 적지 않은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정당한 변론 활동을 넘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대검찰청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가 하루아침에 탐욕스런 ‘전관’ 변호사로 추락하게 된 이유는 뭘까.
 

홍 변호사는 검찰의 대표적 ‘특수통’(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으로 꼽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부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가 연루된 한보그룹 비리 사건,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박연차(전 태광실업 회장)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 수사에 두루 참여했다.
 

그는 특수통 검사들의 엘리트 코스라 불리는 요직을 골고루 거쳤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를 시작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대검 수사기획관 등 수사 검사들이 꼭 가보고 싶은 자리를 섭렵하다시피 했다.
 

홍 변호사는 특히 검찰 수뇌부의 신임이 두터웠다. 특수부 검사들은 수사 논리에 충실하다 보면 종종 검찰 수뇌부나 정권이 감당하기 힘든 수사 결과를 내놓을 때가 있다. 그래서 검찰 수뇌부와 크고 작은 마찰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홍 변호사는 윗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검찰 수뇌부의 입맛에 딱 맞는 수사 결과를 내놓아 ‘특급 요리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한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를 하다 보면 윗사람의 주문에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라고 이의를 제기할 때가 있는데, 홍 변호사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수사 보고서를 윗사람의 주문에 딱 맞게 작성하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말했다. 그와 연수원 동기인 한 변호사는 “그가 윗사람 주문에 충실한 것은, 티케이(대구·경북) 출신 검사들이 장악한 검찰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라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강원도 출신이다.
 

그는 정권의 이해에 반하는 수사에서도 결코 정권과 충돌하지 않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도 갖추고 있었다. 참여정부 중반인 2005년에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한 ‘유전 게이트’는 그의 물오른 감각을 맘껏 뽐낸 사건이었다.
 

당시 특수3부장이었던 홍 변호사는 한국철도공사가 본업이 아닌 사할린 유전 개발에 나섰다가 러시아 쪽에 계약금 35억원을 떼인 것과 관련해, 엘리트 관료로 각광받던 김세호 건설교통부 차관을 구속했다. 김 차관이 철도공사 간부들을 움직여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사할린 유전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게 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당시 야당(현 새누리당)은 참여정부 실세였던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과 이기명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이 이 사건의 ‘몸통’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기명 회장의 고교 동창인 브로커 허아무개씨가 이 회장의 소개로 이광재 의원을 알게 된 뒤 두 사람이 사할린 유전 개발에 ‘의기투합’했고, 이광재 의원이 김세호 차관을 움직여 철도공사가 투자에 나서도록 했다는 주장이었다.
 

브로커 허씨가 북한 모래 반입 사업을 하겠다며 이광재 의원의 소개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을 만나는 등 수상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허씨는 정 장관을 만난 뒤 북한 모래를 철도로 들여오겠다는 신청서를 통일부에 냈고, 그 다음날 바로 사업 승인서가 발급됐다. 야당은 “일개 대북 사업가가 실세 장관을 만난 뒤 관련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특혜”라고 공격했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검찰이 이기명 회장과 이광재 의원을 향해 수사에 나선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 홍만표 변호사는 특수3부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을 맡아 황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황우석 지지자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 수사에 항의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황우석 깔끔한 마무리로 ‘주가’ 최고조
 

하지만 검찰은 허씨가 인도네시아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은 것을 핑계로 이광재 의원의 연루 의혹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사정 당국이 허씨의 출국을 미리 막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야당은 검찰 수사 결과에 강하게 반발해 특검 도입을 추진했고, 여당과 청와대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석 달 동안 진행된 특검 수사에서도 이광재 의원의 혐의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특검 수사팀은 이 의원 등 관련자 20여명을 출국금지한 뒤 이기명 회장의 집과 사무실 등 검찰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9곳을 압수수색하고 453개의 관련자 금융계좌를 뒤지는 등 ‘이 잡듯’ 수사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검은 “혈세를 투입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해 국민 여러분의 비난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했다.
 

‘특검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특검이 완패하자 야당은 기가 꺾였고, 여당은 미소를 지었다. 특히 검찰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청와대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홍만표 특수3부장에 대한 검찰 수뇌부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다. 당시 검찰 수사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홍 변호사가 이끌었던 수사팀이 절묘한 수사 결과를 도출해냈다. 인도네시아로 도피한 허씨를 조사하지 않으면 결코 이광재 의원까지 수사가 진행될 수 없도록 했다. 홍 변호사는 이기명 회장까지 소환하는 강수를 두면서 겉으로는 성역 없이 수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내용적으로는 김세호 차관 위쪽으로 수사가 진행될 수 없도록 사건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유재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김경수 특수2부장, 최재경 대검 중수1과장과 함께 검찰을 대표하는 수사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박한철(현 헌법재판소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특수 1, 2, 3부를 지휘하는 직책)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훌륭한 후배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은 검찰 간부로서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특수3부장 2년째인 2006년 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맡아 5개월 동안 수사를 벌인 끝에 황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 기간 동안 수십명의 황우석 지지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중앙지검 앞에 몰려와 지지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검사들이 거의 없어 사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홍 변호사는 특유의 성실함과 카리스마로 수사팀을 이끌며 전대미문의 논문 조작 사건에서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종교 집단을 방불케 하는 황 교수 지지자들이 검찰 수사를 정치적 이슈로 확대시켜 정권에도 큰 부담이 됐지만 검찰의 깔끔한 수사 덕분에 청와대도 짐을 덜 수 있었다. 이 수사로 ‘홍만표’의 주가는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지 1년이 지난 2009년 봄 그는 새 정권(이명박 정권)의 입맛을 맞추려다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불러온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홍 변호사에게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검사’라는 주홍글씨를 남겼다.
 

홍 변호사는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수사에 참여했다. 수사기획관은 피의자를 직접 조사하지는 않지만 대검 중수부장의 참모 구실을 하면서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언론에 그 내용을 적절한 수준에서 브리핑한다. 특히 언론 브리핑은 수사기획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수사기획관이 언론 보도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검찰 수사가 본궤도에 진입할 수 없다. 언론이 제기한 의혹을 따라가다가 볼일 다 보거나, 언론에 수사 기밀이 미리 보도돼 수사를 망치기도 한다. 대형 수사의 성공에는 언론의 우호적인 보도도 한몫을 한다.

홍만표 ‘특수통 검사’가 탐욕스런 ‘전관 변호사’ 되기까지"윗사람 주문 맞추는 재주 뛰어나" '1억원짜리 노무현 대통령 시계' 언론 흘려
↑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생일 선물로 스위스 명품 브랜드 시계 2개를 선물했다는 진술을 언론에 슬쩍 흘렸다. 노 전 대통령 쪽을 압박하려는 명백한 언론 플레이였다. 당시 일부 언론들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하기에 바빴다. <한겨레> 자료사진
 

‘1억원짜리 노무현 시계’ 언론 흘려
 

당시 수사팀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을 실시간으로 언론에 흘렸다. 이 수사는 정치적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수사 초기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정권의 의도대로 노 전 대통령을 형사처벌하기 위해서는 여론을 검찰 수사에 우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당시 검찰은 무죄추정 원칙이나 피의사실 공표 논란 등은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박연차씨를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을 언론에 마구 흘렸다. 노 전 대통령 쪽의 반론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검찰의 고삐 풀린 언론 플레이는 검찰 안팎에서 크게 논란이 됐는데, 그 중심에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노 전 대통령 부부의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 관련 보도였다.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을 일주일여 앞둔 2009년 4월22일 검찰은 박연차씨가 노 전 대통령의 생일 선물로 스위스 명품 브랜드인 피아제 시계 2개를 선물했다는 진술을 언론에 슬쩍 흘렸다. 시가 1억원짜리 시계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소환 조사를 앞두고 노 전 대통령 쪽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가 명백한 언론 플레이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을 이끌었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진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검찰이 지금 그런 말을 흘리는 의도가 뭔가? 노무현 대통령 망신 주자는 거 아닌가? 내 말을 (기사에) 꼭 넣어 달라. 검찰 참 나쁜 사람들이다. 내 이름으로 꼭 이 말을 써달라. 참 나쁘다”며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부랴부랴 ‘불끄기’에 나섰다. 이튿날 대검 별관 2층 식당에 마련된 임시 브리핑룸을 찾은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시계 보도 건 때문에 많이 시달렸다. 이 건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오늘 아침 신문을 통해서 문재인 변호사가 ‘검찰이 노 전 대통령 망신 주기 위해 흘렸다면 나쁜 행위, 나쁜 검찰’이라고 한 거 이해가 가고 기분이 엄청 나빴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기사에 인용된 검찰 관계자를 ‘나쁜 빨대(언론에 수사 내용을 비공식적으로 흘리는 소식통)’라고 불렀다.
 

홍 기획관은 “검찰이 만일 그런 내용을 흘렸다면 해당자는 진짜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빨대다. 우리 내부에 형편없는 빨대가 있다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빨대를 색출하도록 하겠다. 비장하게 말하는 거다. 노 전 대통령이 수사 이외에 다른 것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은 이 보도와 전혀 관계가 없음을 강조하려는 듯 ‘빨대 색출’에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빨대 색출’은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의 언론 플레이는 계속됐다. 그 농도는 오히려 더 짙어졌다. 노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뒤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자 2주 뒤인 5월13일 ‘더 나쁜’ 빨대가 등장했다. 그날 저녁 한 방송사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선물받은 피아제 시계들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했다. 선물로 받은 시계가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판단한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증거인멸에 나섰음을 주장하는 기사였다.
 

이 보도로 노 전 대통령은 큰 타격을 받았다. 여전히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보도였으나, 세상은 그를 몰염치한 인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시계 찾으러 봉하마을로 떠나자’는 등 그를 조롱하는 각종 패러디가 난무했다. 그로부터 10일 뒤인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다.
 

홍 변호사는 ‘논두렁 시계’ 보도의 출처로 의심받아 당시 우병우(현 청와대 민정수석) 대검 중수1과장과 함께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했다.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중수부장이 사표를 낸 뒤였다. ‘논두렁 시계’ 보도 직후 홍 변호사는 당시 몇몇 방송 기자들한테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정원 산책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한 신문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있음을 알려줬다는 말이 기자실에 퍼졌다. 그의 행동은 이 동영상이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시계 증거인멸과 관련이 있다고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홍 변호사는 2009년 9월 무사히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피의사실 공표 혐의도 2010년 1월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는 2010년 7월 대검 요직인 기획조정부장으로 발탁됐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몰고 온 수사에 참여한 것이 검찰 안에서는 ‘훈장’으로 작용한 셈이다.
 

홍 변호사는 2011년 8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검찰의 뜻에 반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검찰 쪽 협상 창구로 나섰던 그가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은 것이다. 검찰 수사권 사수라는 명분으로 검찰을 떠난 모양새였기 때문에 그는 후배 검사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변호사 개업 후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사건을 싹쓸이하다시피 수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의 사퇴를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일반적으로 검찰 고위 간부가 사표를 내는 시점은 정기 인사 직후인데, 이때는 옷을 벗는 검사장들이 많기 때문에 ‘전관’의 이점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홍 변호사가 검찰 인사와 무관한 때에 개업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개업 후 왕성한 영업력을 보인 걸 보면 이런 분석에 좀더 무게가 실린다.
 

‘변호사 홍만표’는 ‘검사 홍만표’와 전혀 달랐다. 검사 시절 수사 대상자를 확실한 증거로 제압하던 ‘무사’의 기질은 옅어지고, 검찰 내 인맥을 활용해 로비에 가까운 영업을 한다는 소문이 변호사업계에 돌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검찰 출신 변호사들에게 ‘공공의 적’이 돼버렸다. 돈 되는 형사 사건들을 독식하는 바람에 다른 전관들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개업 후 1~2년 정도 빡세게 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벌었으면 후배 ‘전관’들을 위해 비켜줘야 하는데, 홍 변호사는 5년 내내 시장을 독식해 원성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후배 검사들도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수사 검사의 재량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무리하게 부탁한다는 말이 돌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홍 변호사가 현 정부 실세인 황교안 총리, 우병우 민정수석과 각별한 사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검사들이 그가 선임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검찰 인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실세들이라서 홍 변호사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총리는 홍 변호사의 대학 선배이자, 검찰 내 개신교 신자 모임인 신우회 회원으로 친분이 각별하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노 전 대통령 수사팀에서 동고동락한 사이다.
 

하지만 홍 변호사는 이런 말들이 모두 “근거 없는 음해”라고 항변했다. 그는 20여일 전 새벽 2시에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와,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며 자신의 말을 100% 믿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돈을 많이 번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악의적 소문이다. 그런 말을 옮기는 사람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100% 믿어달라’는 그의 해명은, 그가 변호사 개업 직후 저축은행 사건을 몰래 수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빙성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퇴임 직전 근무지 사건을 1년 동안 못 맡게 한 수임제한 규정 때문에 당시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하던 저축은행 사건은 단 한 건도 맡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수사 대상에 올랐던 저축은행 관계자들이 사건을 들고 찾아왔는데도 모두 돌려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한겨레> 취재 결과, 그는 솔로몬저축은행 사건을 후배 변호사에게 알선한 뒤 수임료의 절반을 나중에 돌려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자신의 기사에 대해 한밤중 문자메시지를 날려 적극적으로 해명하던 것과 달리, 그는 저축은행 수임 관련 보도가 나간 뒤로는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개업 이후 4년여 동안 해마다 80억~90억원의 수임료 수입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부부가 함께 수도권에 50여채의 오피스텔을 비롯해 1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음이 언론 보도로 확인됐다. 그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했을까?
 

그를 잘 아는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국회의원 출마설’을 제기한다. 그가 고향인 강원도 삼척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액수의 선거 자금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고정적인 임대 수익이 보장되는 오피스텔에 투자한 것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과 전관 변호사 공생 끊어야
 

검사로서 만끽했던 권력을 상실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그와 검찰에서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 밖으로 나와 보면 안다. 검사가 얼마나 큰 권력을 갖고 있는지. 자기 손에 있다고 생각했던 권력이 더 이상 없게 된다. 그럼 그 공백을 메꿀 수 있는 게 뭐겠나. 돈이다. 검사 때 누렸던 권력을 다시 회복할 수는 없지만, 돈은 사회에서 그에 버금가는 힘을 준다.” 또 다른 변호사는 “홍 변호사가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좇다가 탈이 난 것이다. 검사 때 그만큼 잘나갔으면 변호사 개업 뒤에는 조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의 추락을 지켜보는 후배 검사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한때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선배가 하루아침에 형사처벌을 앞둔 피의자가 돼 버린 상황이 선뜻 믿기지 않는다. 이번 수사의 실무책임자인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홍 변호사와 각별한 사이다. 서산지청에서 시작된 인연이 서울중앙지검, 대검찰청으로 이어졌다. 이 부장은 최근 사석에서 홍 변호사를 조사해야 하는 괴로움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검사들은 언론에 대한 불만도 나타내고 있다. 검사들은 “홍 변호사로부터 자유로운 기자들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고 되묻고 있다. 그가 법무부 대변인과 수사기획관을 지내면서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기자만 해도 수십명에 이른다. 변호사 개업 이후 그와 정기적으로 골프를 즐기는 기자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홍 변호사의 고교 후배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그에게 소개해준 브로커 이민희(구속)씨의 녹취록에는 한 중앙일간지 기자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기자들이 지금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홍 변호사에게 달려들고 있다.
 

하지만 검사들이 검찰 전관 출신 변호사들의 무리한 청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홍 변호사와 같은 비극의 주인공은 진작에 사라졌을지 모른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건네는 것은 그만큼 ‘성과’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과 전관 변호사의 공생 관계를 끊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간부를 지낸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사건 무마를 청탁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청탁을 받아주는 검찰이 더 문제다. 검찰이 이번 기회에 변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홍만표’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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