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珉(일민) 정의홍 교수 23주기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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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珉(일민) 정의홍 교수 23주기 참관기
정의홍시인 23주기 추모 세미나 및 시낭독회
  • 박지영 시인
  • 승인 2019.05.13 16: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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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홍시인 추모기념사업회(대전대국어국문학과 총동문회), 동국문학인회, 미네르바문학회, 휘문고문학회 등은 지난 11일(토) 오후 불교평론 사무실에서 『일민(一珉) 정의홍 시인 23주기 추모 세미나 및 시낭송회』를 개최했다. 

김현정(세명대학교교수)와 서안나 시인의 사회와 추모사로 문을 열고 前 사)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의 회고담에 이어 일민 정의홍 시인의 시세계 세미나 발표자로 유승우(시인· 전 인천대교수)의 『정의홍 교수의 삶과 문학』과 ‘정의홍 시인을 회상하며’라는 부제로 발표 했다. 

또한, 김현정(세명대 교수)는 『모던을 넘어, 현실을 넘어』라는 주제와 ‘정의홍의 시세계’를 부제로 스승의 작품세계를 오늘에 비추어 현장성 있는 작품세계를 조명했다. 

뿐 만 아니라 김나영 (시인·한양대)은 『정의홍 시의 어조와 퍼소나 연구』의 부제로 『하루만 허락받은 시인』 중 ‘配役詩(배역시)를 중심으로'  정의홍 시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며  정의홍 시인이 그동안 발표해 온 시 작품, 그리고 해설과 평론 외에 다양한 연구자들의 논문을 기초하여 모색했다. 

2부는 정의홍 시인의 연보 낭독(대전대 제자 김종만)에 이어 임연태 시인의 『정의홍 선생님 23주기 추모시』를 박지영 시인이 낭독 발표하였고, 유족대표로 정승수(정의홍시인 아들)의 고인의 작품 하시던 모습을 반추하였으며, 회고담과 시낭독으로 ‘23주기’동안 함께해 온 추모객들에 대한 감사와 아버지의 삶에 대한 경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동료 교수로 윤광봉교수 (전, 대전대)의 회고를 통한 갑작스런 작고와 자신의 삶에 끼친 정의홍 교수의 담백하고 정의롭던 모습을 회상하며 교육자로 시인으로의 삶을 잔잔하게 들려주었고, 이창식 교수(시인 세명대)의 문단과 학교 후배로서의 모습을 들려주는 동안 사람들의 목울대를 잠그는 안타까운 모습도 있었다. 

동국문학인회 이혜선(시인· 동국문학인회회장)외 정숙자 시인 그리고 진단시 동인 소설가 이상문, 휘문고 문예부 유종순 시인 및 참석시인 시낭송과 미네르바 문학회 김밝은과 대전대학교 제자 오유진을 비롯한 50여명의 참석자들은 정의홍 시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미담이 되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1944년 08월09일 경북예천군 개포면 갈마리 61번지 부친 정진교 선생과 어머니 김연희 여사 사이의 7남매 중 다섯째(여섯형제)로 태어났다. 정의홍시인은 1964년(21세) 때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고가연구』로 문학사적 업적이 탁월한 양주동 박사와 서정주시인 그리고 조연현 선생(문학평론가)을 스승으로 모셨다. 그리고 1965년 현대문학에 김현승 시인으로부터 초회 추천을 받고 그 다음해(1966년)11월에 2회 추천을 받았으며 1967년 2월에 마지막 추천을 받아

1976년 첫 시집 『밤의 환상곡』을 신라출판사에서 발간하였고, 구자운, 박진환, 이유식, 홍신선, 임헌영, 김용직, 장백일, 전봉건 시인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978년(35세)에 한국문인협회 이사를 1980년까지 봉사(역임)했다. 

1982년(39세) 『한국시』(1-4권, 편저, 청산사)출간, <진단시>동인으로 활동하였고, 1983년(40세) 동국대 대학원 석사 수료를 하면서 강희근, 김규화, 문효치, 박경석, 박진환, 임보, 임영희 동인들과 함께 『진단시』 창간호 발간과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고 나서 2년간 한국문학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했고,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한국문인협회이사, 한국시문학회, 국제펜클럽, 한국비평문학회 회원, 한국시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84년(41세)에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해 제자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공저 『현대시 작품연구』(학연사 발간) 1992년(49세)에 『정지용 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취득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그후로 1995년(52세) 『정지용 시 연구』(형설출판사)출간하였다. 1996년(53세)에 한국문학평론가 협회상 수상 후 두 번째 시집 『하루만 허락받은 시인』(새미)을 발간하고 그해 05월 19일 교통사고로 작고하여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갈마리 선산에 안장하였다. 이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1998년 제12회 동국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였고 그 이듬해 1999년 대전대학교에 시비건립과 『정의홍 시인의 삶과 문학』(호서문학사)에서 발간 헌정되었다. 

또한, 2016년 『정의홍전집』(1-2권)을 통하여 미발표작과 함께 출간하였고 오늘에 이르렀다. 생존해서는 20대 때 ‘문재’를 드러내어 스승과 제자 선후배들에게 기억되고, 타계 후에는 반추되는 ‘인품’으로 사랑받고, 소리 소문 없이 잔잔하게 23주기를 지키고 만나지는 사람들 ‘참 덧없고 아쉬운 정의홍 시인 이라는 생각’과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 정의홍’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나지막하게 ‘정의홍 교수님’하고 불러 보지만 이미 제자도 타계하시던 그즈음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아쉽고 두렵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스승만이 아니라는 것에 더 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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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일 2019-05-13 20:07:52
저도 정의홍선생님 고교 제자 입니다.
선생님 추모 20주기에는 친구들과 참석을 하여 사모님과 정승수군도 만나 보았습니다.
저희들이 선생님 교편을 시작 할때 첫 제자들입니다.
시인이 아니기에 추모 23주기에 참석을 못해 [박지영 시인님]의 스승님을 기리는 글 너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는 1974년 졸업을 하고 1996년 대전 선생님 댁으로 첫 세배를 드리고 하루만 허락받은 시인 시집을 받고
그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친구들과 대전으로 내려가 문상을 드리고 추모 20주기가 끝난후 갈마리 선생님산소에 가
동생분도 만났네요.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