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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호 시인 ‘이육사의 인생관, 독립투사가 꿈꾸었던 나라’ 진행
퇴계 이황 진성 이씨 가문 이육사 선생이 꿈꾸던 조국은 청포도 시(詩)에서 잘 나타나듯이 희망적 멋진 삶을 꿈꾸는 것이 건강한 자신을 만든다
  • 문해청 기자
  • 승인 2019.05.13 08:09
  • 수정 2019.05.13 08:09
  • 댓글 1
강의듣고 있는 대구대학교 학생대중 / 사진 = 문해청 기자

[뉴스프리존,대구=문해청 기자] 대구대학교(총장 김상호)는 지난 10일 조형예술대학 5호관 강당에서 가칭. 이육사 대구기념사업회 상임대표 정대호 시인을 초청하여 ‘이육사의 인생관, 이육사가 꿈꾸던 나라’를 주제로 학생대중강좌를 개최했다.

다음은 [강의] 내용이다.

여러분은 미래에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30세부터 정년(만 60)까지 30년 동안 경제활동을 한다. 나머지 40년은 스스로 움직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앞으로 20년 뒤 40년 뒤에 나는 어떤 모습 일까?

요즘 사회의 변화속도는 빛의 속도만큼 빠르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정말 못살았다. 세계 100여개 나라 중 에서 100번째쯤 되는 나라였다. 그 때는 제품을 만들면 품질이 나쁜 제품은 국산이라고 했다. 일을 못하는 것을 보면 국산이라고 하는데 그 시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청년 정대호 시인은 피가 거꾸로 선다고 했다.

요즘은 품질이 나쁜 제품을 중국산 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 친구가 체코 산 칼을 가지고 다녔는데 어깨에 힘을 주고 으쓱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심을 갖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민족으로는 민족적 자존심 인간의 품격 인격적 긍정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이육사 시인은 낭만적 현실주의자이다. 이육사 시에 나타난 그의 현실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현실을 조선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으로 규정했다.

/ 북방 / 겨울(절정) / 밤 / 무덤(자야곡) / 북쪽 / 툰두라 / (꽃) 등 이육사는 꿈을 가졌던 사람이다. 조국의 건강한 희망적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독립투사이다.

‘이상’은 소설<날개>에서 “자신을 박제가 된 천재”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희망과 야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와 다르게 ‘이육사’는 “정면으로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서는 한 발자욱이라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내 길을 사랑할 뿐이오.” “그렇소이다. 내 길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내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이오.”라고 말한다.(수필-<계절의 오행> 중에서)

이날 정 시인은 '1977년 대학을 입학했던 시절에 여학생 가운데 할머니 스웨터를 입고 다닌 학생도 있었다.' 고 그 당시 자유로웠던 학원 수업환경을 밝혔다. 특히, "자신의 자녀를 키우면서 취업에 의한 스펙 쌓는 일은 하지마라" 당부했다.

정 시인은 자녀가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겪으면서 성숙하기를 바라고, 힘들고 어려운 것을 회피하지 않는 것과 힘들고 어려운 것을 부딪쳐 보며 살아가는 것에서 자신감이 영글어지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육사의 깨달음은 시련과 고난이야말로 인생불변의 영원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다. (<절정>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꿈은 소외받아 고독한 사람들을 위해서 뜨거운 열정을 쏟아 부으며 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육사 그의 시(詩)<황혼>에서 이 외로운 것을 바다의 흰 갈매기, 별, 수녀, 행상대, 토인으로 보았다. 이 외로운 것을 황혼 속에서 보았다. 그래서 황혼을 맞아들여 시인의 뜨거운 입술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이 시(詩)는 1935년에 발표된 것이다. 이 시기는 그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검거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던 때이다.

이 당시 이육사 선생은 참혹한 고문으로 항문으로 피가 쏟아져 매일처럼 피 뭍은 옷을 받아 내었다. 그래서 일까? ‘황혼’ 시 에서는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강하게 그려져 있다. 낮의 시간이 생명의 시간이고 밤의 시간이 죽음의 시간이라고 말한다면 황혼은 낮의 시간이 끝나는 때다. 생명이 끝나면 죽음이 온다.

이 때 이육사의 나이 서른 살이다. 서른 살에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과 그림자를 보았다. 이후 그의 시(詩)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묻어난다. 그래서 이육사는 이<황혼>에서 죽음이 온다면 그 순간에 무엇을 하며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울까를 성찰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육사 시인은 1904년 경북 안동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대구 남산동 662번지로 이사했다. 그는 몸이 건강해서 의열단원으로 열정적으로 활동할 당시 중국여인에게 인기가 많았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으로 건강했고 잘하는 특기는 사격술로 말을 타고 가면서도 총을 잘 쐈고 명중시켰다다. 1935년도에 신석초를 만나서 시(詩)를 쓰게 되었다. ‘황혼’은 이육사가 맨 처음 발표한 가장 좋은 시이다.

황혼을 낭송하는 학생 / 사진 = 문해청 기자

「황혼 _이육사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黃昏)을 맞아드리노니

바다의 흰 갈메기들 같이도

인간(人間)은 얼마나 외로운것이냐

황혼(黃昏)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鍾)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쎄멘트 장판우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할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黃昏)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五月)의 골ㅅ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黃昏)아 내일(來日)도 또 저-푸른 커-텐을 걷게 하겠지

정정(情情)히 사라지긴 시내ㅅ물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보다」

정 시인은 1980년대 군부독재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우리나라가 정말 어려웠던 시절에 개인적으로 이육사의 ‘절정‘시를 가장 좋아했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백성에겐 희망, 미래, 가능성이 없다하며 우리나라 사람이 일제 식민지시대 일본유학을 많이 갔는데 평양사람이 주로 일본유학을 많이 갔다.

자야곡 낭송하는 학생 / 사진 = 문해청 기자

정 시인은 이육사가 꿈꾸던 우리나라는 ‘청포도’시에 잘 나타나있다. 민족시인 이육사 독립투사의 꿈꾸는 나, 꿈꾸는 미래, 멋진 삶을 꿈꾸는 것처럼 좋은 꿈과 희망은 우리네 삶을 건강하게 한다.

정 시인은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눈에 띄지만 사회에서는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잘 살아간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 가운데 미래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야 한다.

또한 정 시인은 ‘홍포’는 당상관이 입는 옷이고 ‘청포’는 당하관이 입던 옷이다. 즉, 낮은 사람이 찾아온다. 그런 사람과 포도를 따 먹으면 작은 노동을 해도 좋다. 이육사가 꿈꾸었던 우리나라는 물질적 풍부하고 정신적 풍요로운 나라이다. 인구가 번성한 나라, 온갖 꿈과 희망을 가꿀 수 있는 나라, 큰 포부를 펼칠 수 있는 나라다고 밝혔다.

가칭. 이육사 대구기념사업회 상임대표 정대호 시인 / 사진 = 문해청 시인

「광야 _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즈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정 시인은 청강하는 학생대중에게 이육사는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육사 선생은 사회적으로 나라를 위해 씨를 뿌리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의 시(詩)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처럼 이육사 선생은 언제나처럼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또한 이육사의 시(詩)는 자신이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감옥살이하는 고달픈 몸이었지만 고난과 시련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백전불굴의 신념과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다.

이날 정 시인은 이육사 시인이 절망적 현실에도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이어서 청강하는 학생대중에게 과연 나의 미래는 어떨까?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살아가면 더욱 멋진 인생이 될 것이다. 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문해청 기자  jajudol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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