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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연극 <공주(孔主)들>
제40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 권애진 기자
  • 승인 2019.05.13 14:08
  • 수정 2019.05.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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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공주들> 컨셉사진 /(제공=서울연극협회)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누군가는 알고 있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야기, 누군가는 전혀 몰라서 관심을 가질 수도 없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만든 이야기, 극단 신세계의 쎈 연극 <공주들>이 제40회 서울연극제에서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연극 <공주들> 공연사진_'평화의 소녀상'을 재연한 듯한 공연의 마지막 장면 /ⓒ권애진

연극 <공주(孔主)들>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창작된 이야기이다.

孔(구멍 공), 主(주인 주). 연극<공주(孔主)들>은 구멍의 주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 지금 한국에서 태어나 공주로 키워지고, 만들어지고, 이용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공주들은 국가와 사회, 가족과 타인을 위해 자신들의 구멍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라고 착각하는 공주들도,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공주들도 있다. 시간이 흘러 본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된 공주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공주가 된 것이 아닌 공주로 키워지게 된 것을 깨닫는다.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삶에 보이지 않는 조종자가 존재했음을 인지하게 되는 공주들. 이 공주들은 뒤늦게나마 강요된 왕관을 벗고 자신들의 구멍의 주체성을 찾고자 공주가 되기를 거부하고자 한다.

극장 초입에서 관객들을 구멍으로 안내하고 있는 추공주(박형범), 고공주(김정화) /ⓒ권애진
극장 입구에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조공주(이강호) /ⓒ권애진
뒷구멍으로 관객들을 입장시키고 있는 추공주(박형범)_극장은 김공주를 상징하며 극장의 세 개의 문은 김공주의 윗구멍, 아랫구명, 뒷구명이다. 세 개의 문을 통해 관객들은 단순한 극장이 아닌 김공주의 몸을 침범하게 된다. /ⓒ권애진
앞구멍으로 관객을 입장시키고 있는 소공주(강주희) /ⓒ권애진
무대에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김공주(양정윤), 변공주(김보경), 구공주(권미나), 방공주(김선기) /ⓒ권애진
퇴장하는 관객들을 안내중인 왕공주(김형준) /ⓒ권애진
퇴장하는 관객들에게 인사중인 심공주(민현기) /ⓒ권애진

누구도 평생 ‘피해자’인 사람은 없다. ‘피해’는 상황을 드러내는 단어일 뿐이지 정체성이나 지칭이 될 수도 없고 돼서는 안 된다. 2019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여겨지는 대한민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 기생 관광, 집창촌, 룸살롱 오피스텔, 안마방, 다양한 종류의 성매매, 성상납, 불법몰카, 미투운동, 버닝썬 사건들의 피해 당사자들에게 우리는 그리고 사회는 ‘사회가 요구하는 피해자다움’을 너무나 당연하게 강요하고 있음을 반성해야만 한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고 말합니다.

더욱 열심히 살겠다고 말합니다.“

<공주들>을 연출한 김수정의 공연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랑’,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들은 잔인할 정도로 날카롭지만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모순을 지적하며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제대로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매 공연마다 관객들에게 되풀이하며 질문하고 있는, 무대 위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김수정의 공연은 끊임없이 가려지는 현대사회의 진실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침서이다.

극단 신세계가 만든 <공주들>은 기존의 텍스트의 재연이 아닌 모든 배우 그리고 제작진들이 공동 창작한 작품으로 일본군 ‘위안부’에서 미군 ‘위안부’로 살아오며 아들을 베트남에 파병 보낸 사실을 증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 할머니의 증언과 미군 ‘위안부’ 피해자에서 여성 운동가로 살아온 김연자 할머니의 증언, 미군 ‘위안부’ 피해자 김정자 할머니의 증언을 이야기 뼈대로 잡고 이 시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역사의 증언들을 발췌, 참고하여 재구성하였다. 또한 법무법인 해마루 박선영 변호사의 법률자문과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 한성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김귀옥 교수,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박정미 교수,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사미숙 연구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 윤명숙 조사팀장, 여성인권센터 보다 이하영 활동가의 자문을 받아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를 살아온 김공주의 생애에 입체감을 살렸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연극 <공주들> 배우들과 제작진 /ⓒ권애진

김공주 역 양정윤 배우, 소공주 역 강주희 배우, 구공주 역 권미나 배우, 변공주 역 김보경 배우, 방공주 역 김선기 배우, 고공주 역 김정화 배우, 왕공주 역 김형준 배우, 심공주 역 민현기 배우, 추공주 역 박형범 배우, 조공주 역 이강호 배우는 2019년 새롭게 돌아온 <공주들>에 이 시대의 현실에 무게중심을 실어주며 동시대성을 더욱 부각시킨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아?'

'혼자 아무리 애써봤자 어차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더 차가워진다.

‘난 남자니까 여자의 삶 같은 건 몰라도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더 망가진다.

<최승범 작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부끄러운 민낯은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부끄러운 민낯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만 부끄러움을 다음 세대에게 전가시키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아주 깊게 패인 상처일수록 꽁꽁 싸매면 곪을 위험이 커질 뿐이다. 상처에 소독약을 바로 들이 붓는 것은 상처의 재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며 상처 주변의 살들에 약을 발라 새살이 돋는 것을 도와야 상처가 제대로 낫는다. 임시방편으로 보이기식의 상처처방을 이제 그만하기 바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상처를 후벼 파는 행동들을 제발 멈추고 ‘진심어린’ 위로의 마음을 전하길 진심으로 고대한다.

극단 신세계는 새로운 세계, 믿을 수 있는 세계를 만나고 싶은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이 시대가 불편해하는 진실들을 공연을 통해 자유롭게 하고자 하고 있는 극단 신세계의 공연은 불편함이 가득한 공연, 거칠고 날 것의 공연이라는 수식어들을 가득 받지만 중독성이 강하다. 주제와 형식의 제약 없이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를 우리의 말과 우리의 몸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극단 신세계의 쎈 공연들이 계속 관객들을 중독시켜 나가길 바란다.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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