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9주년을 맞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하루 앞둔 오늘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있은 지 꼭 39년이 흘렀다. 3.1, 4.19, 5.18, 6.10 ... 봄을 여는 첫날부터 그 끝자락까지 민주화의 달력에 새겨진 이 숫자들은 우리 현대사에서 불의(不義)한 권력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온 시민적 저항의 상징기호들이다. 그 가운데 5.18은 유독 남다른 의미로 각인된다. 불법적인 쿠데타세력이 앞세운 군(軍)의 총칼에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아스라한 꽃잎처럼 쓰러져간 회한(悔恨), 폭도(暴徒)로 덧씌워진 오명(汚名), 핍박과 고통이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는 그대로 쓰러지지 않았다. 이후 고난(苦難)한 투쟁 끝에 ‘5.18’은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빛고을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聖地)로 봄날 화사한 햇살마냥 찬란하게 부활하였다. 이로써 항쟁은 민주화운동으로 승화되었고, 지난 1987년 6월을 기점으로 헌법개정과 체제전환을 쟁취하였다.

5·18민주묘지에서는 '오월 광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5.18과 광주에 빚을 진 채로 39주년 행사에 바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 사이에 군사쿠데타와 광주에서의 시민학살을 주도했던 두 전직 대통령은 역사와 법의 엄중한 단죄를 받았다. 그리고 군사권위주의정권 하의 핍박 끝에 5.18 민주화항쟁의 굴레로 사형언도를 받았던 김대중과 국회청문회에서 군사쿠데타와 광주시민들에 대한 학살을 통렬하게 질타했던 노무현은 민주화시대를 이끌고 평화통일의 물꼬를 튼 대통령이 되었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쓰러져간 많은 시민들과 그 유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는 하였지만, 당시 계엄군의 발포명령책임자 규명 등 여러 사안들은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리고서 39년전의 모습을 회상하며 금남로 한복판에서는 '비상계엄 즉각 해제하라'는 구호가 적힌 트럭이 등장하는 기념을 한다. 광주는 어느 사이 민주화의 성취에 안주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적인 경제도구주의에 편승해서 민주화세력이 무능세력으로 낙인찍혀온 것이다. 비록 총칼을 앞세우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재갈이 물리고, 열렸던 광장은 다시 닫히고, 수천 년을 유유하게 흘러온 국토의 젖줄기였던 강들이 개발사업의 미명아래 파헤쳐지고 있다.

그랬다. ‘5.18정신’은 불의한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저항의 정신이다. 통제되지 않는 국가권력은 그 자체 폭력과 다를 바가 없다. 권력이 스스로를 늘 경계하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권력은 언제라도 폭력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켜 나가야할 보편적인 공동선인 사회라면 ‘5.18정신’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늘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3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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