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쌍화차 친구

한애자의 빵굽는 여인 -제 3회 <쌍화차 친구>

 

다음날은 수업이 하루 종일 꽉 차 있는 날이었다. 애희는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지만 일찍 일어나 강의록과 여러 교재를 챙기고, 아침식사를 하러 하숙방 공동거실로 갔다. 그러나 상현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방문은 잠겨 있었고 아침부터 일찍 외출한 듯하였다.

“아침도 안 드시고…….”

이때 옥순이가 살짝 일어나서 현관 쪽의 그의 방을 내다보았다.

“엊저녁에 애희 언니랑 얘기하는 것 같던데요. 어떻게 된 거예요?”

저녁에 화장실에 가다가 애희 방에 불이 켜져 있었고 상현의 신발이 놓인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입을 삐죽이며 옥순이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이때 서천의 김종만이 옥순이를 말리는 몸짓으로 달래듯하였다.

“옥순 씨가 사이코 기질이 좀 진해서 그래요.”

“자! 오늘 쇠고깃국이 끝내준다! 자, 옥순 씨, 여기 쇠고기 많아요, 잉!”

그는 오랜만에 나온 쇠고깃국의 건더기를 옥순이에게 덜어준다. 두 사람은 분위기가 맞았다. 그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그럭저럭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날 강의가 끝나고 애희는 곧바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상현의 방은 문이 열린 채 방 안의 짐이 모두 빠져 있었다. 그가 머문 공간은 정사각형의 주사위처럼 외롭게 찬바람만 스쳤다. 애희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된 걸까?’

이때 옥순이가 빠끔히 자신의 방에서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언니, 저, 아저씨 오늘 좀 이상했어요.”

“어떻게 갑자기 이럴 수가!”

“용달차에 짐을 다 싣고 무엇이 아쉬운지 텅 빈 방의 문지방에 걸터앉아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꼴에 여자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고 가슴 설레다 지친 푸념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다그치듯 물었다.

“아무 말도 없었고, 다만 텅 빈 방에 걸터앉아 애잔한 노래를 불렀어요. ‘그날 밤 이슬에 맺힌 눈동자, 그 눈동자…… 안개, 안개 자욱한 그날 밤 거리…… 아, 아, 그리운 눈동자여…….’ 그 노래를 두 번인가 부르더니 언니 방을 뚫어지게 한 번 더 쳐다보고 곧 용달차에 몸을 싣고 사라졌어요. 하도 비장해 보이기에 숨어서만 지켜보았고 말 한마디도 못 붙여봤어요. 누가 분위기 없다고 할까봐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하더군요. 진짜 분위기파의 진면모가 보였고, 임과의 이별을 고하는 애련하고도 묘한 분위기에 제삼자가 어쩌겠어요!”

‘그랬었구나. 그래서 어제저녁에……….’

모든 걸 알아차렸다. 그가 자신을 피해 떠났던 것이다. 결국 다른 곳으로 하숙집을 옮겼던 것이다.

 

가을날의 찬란함을 만끽하는 10월 말이었다. 하숙생들이 들어서 있는 학교 주변 일대의 모든 마을을 애희는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여학생이 남학생의 하숙집을 쫓아다니는 것은 어른들도 쓸개 없는 계집이라 여기고 냉정하게 대하였다.

“아뇨? 그런 남학생은 여기 없는디, 여학생이 남자 하숙방을 그렇게 쫓아다녀도 되는감!”

그러나 무슨 열정인지 애희는 사람들의 눈치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어찌하든 그를 만나야만 했다. 학교에서도 그의 강의실 주변을 찾아보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애희는 마음이 애달프고 초조하였다. 자신에게 이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왜 자신은 이렇게 그에게 안달하고 있을까! 그가 이런 자신에 대해선 어쩌면 매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왜 자신을 피하였을까? 자신을 분명히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가 단지 미래의 경제적 문제라면 사나이답지 않게 좀생이처럼 여겨졌다. 자신은 그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대수로 여기며 가슴에 큰 도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란 이렇게 약하단 말인가!

애희는 지쳐 약간 야산을 낀 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내려오다가 밭을 낀 어느 농가를 한 채 발견하였다. 그곳은 매우 외지고 도로에서 깊이 들어간 곳이었다. 그 집 대문 앞에서 집안의 방이 있는 마루 쪽들을 들러보고 있을 때, 마당가의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발을 양쪽으로 벌리고 그 옛날 하숙집에서 하듯 수돗가에 머리를 대고 흔들어 감고 있었다. 그는 양발 사이로 대문가에 서 있는 애희를 발견하고 멈칫 하였다.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아주 침착하고 태연하게 애희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아주 가볍게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오셨어요!”

그 말은 너무도 낯설었다. 냉정하기 이를 테 없는 그의 태도에 갑자기 서글펐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문이 열려지지 않았다. 오직 그를 다시 만난 기쁨과 함께 갑자기 변한 그의 분위기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야속하고 미웠다. 그는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상현은 뒤로 돌아 마루 쪽으로 가서 걸터앉았다. 애희도 마루 쪽으로 향하여 계속 훌쩍거렸다. 그는 애희가 안 되어 보였는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의 방 안의 모든 것들이 정겹고 자신을 쓰다듬는 듯하였다. 벽에 걸려 있는 밤색 외투가 자신을 덮어주는 듯하였다.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왜, 절 피하죠!”

“애희 씨 좋아한 적 없어요. 그리고 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남자를 아 다니는 여자는 딱 질색이오!”

“진심인가요?”

“애희 씨 좋아한 적 없습니다. 뭔가 착각하신 것 같군요!”

이때 주인아줌마가 고구마를 삶은 바구니를 내밀었다.

“학생 손님이 왔는가본데 이것 같이 드시잉!”

“아. 예, 감사합니다!”

상현은 마루에 나가서 받아 들었다. 그의 돌 같은 분위기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애희는 휙 돌아서서 말없이 신발을 신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나왔다. 그도 뒤를 돌아보거나 뒷모습을 보거나 부르지 않았다.

“왜 그냥 가는 거야, 원…… 말도 없이. 학생이 아가씨 마음을 속상하게 했구먼. 남자가 박력 없이 그게 뭐야!”

아주머니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그 후 말문을 닫았다. 벽에 걸린 시계는 오후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로변의 길가에는 가로수 대신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만발하게 피어 있었다. 연두색 니트 카디건에 밤색 스커트를 입고 갈색 가방을 둘러멘 애희는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나쁜 자식!’

머리가 깨어질듯하였고 가슴이 훵하니 뚫린 듯하였다.

‘미련한 계집…….’

자학하듯 온몸이 떨렸다.

“애희 씨 좋아한 적 없어요!”

그 말이 계속해서 망치처럼 그녀의 가슴을 때렸다. 하숙집에 돌아와 보니 호만오가 혼자 평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안색이 창백하며 눈물이 범벅된 애희의 얼굴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예감하였다. 식사시간이 되었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자신의 울음소리를 감추려는 듯 라디오의 유행가가 크게 들리도록 틀어 놓았다. 밤 열 시가 지나자 만오는 애희의 방문을 노크하였다. 애희는 문을 열고 만오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만오 씨, 오늘 술 좀 사주실래요?”

“술? 아, 알았어요. 술도 먹고 영화도 보고…….”

“우리 곰나루로 바람 쐬러 가요!”

평소에 자신을 사모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던 애희는 만오에게 애교를 부렸다. 갑작스런 애희의 태도에 만오는 짐작은 하였다. 순애보적인 기질인 그는 그녀의 심정을 위로할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여겼다.

“눈 괜찮아요?”

퉁퉁 부은 눈을 바라보며 자신이 사모하는 우아한 여인이 망가진 듯한 모습을 애처로워하였다. 애희가 저쪽 방 사나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도 알면서도 그는 모르는 척 자연스럽게 대하였다.

“우선 푹 한숨 자세요. 그리고 몸이 좀 괜찮으시다면 영화 보러 가죠!”

이불을 덮어주고 그는 방에서 나왔다. 그는 사실 민상현을 학교에서 보았던 것이다. 데모의 선도자와 함께 나란히 데모를 가두지휘하고 있었다. 옆에는 같은 운동권 여학생들이 그에게 바짝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해 가을은 짙은 음영으로 더욱 깊어만 갔다.

 

 

 

민상수와 생활하는 직장생활은 업무상 자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저 다른 교사들처럼,

“안녕하세요!”

하고 서로 목례를 주고받았다. 민상수는 전애희와 마주치면 뭔가 설레는 듯한 반가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그녀와 차를 마시면서 뭔가 숨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아쉬움의 묘한 분위기였다. 전애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를 피하려고 하면서도 민상현 때문에 아련히 연상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혹시 형님이나 동생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요?”

다가가서 지나가는 말이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이젠 그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 무엇 하겠는가! 한낱 스쳐간 사람들간의 일이 아니었던가! 뭘 그걸 가지고 의미를 붙이고 지난 일을 재생시키겠단 말인가! 전애희는 이렇게 자조하며 부드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냉담하게 무시하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여름방학이 끝나고 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민상수에게 여교사들이 어떻게 방학을 보내셨냐고 물었다.

“아, 네. 전 서울의 어머님의 생신도 있어서 가족과 함께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다들 충분한 휴가를 보내셨나요?”

그는 심 선생과 다른 여교사에게 물으며 저쪽의 출석부를 점검하고 있는 전애희에게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기말 출석통계가 2학년에서 아직 안 되었군요!”

전애희가 2학년을 통괄하고 있는 민상수에게 다가왔다

“아, 죄송합니다. 오늘 중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민상수의 자리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대하던 중 전애희는 너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스냅사진이 놓여 있었는데 그 속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민상현이 민상수와 나란히 옆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십 년이 지난 후였지만 그의 모습은 약간 중년의 티가 났지만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가족사진인가요?”

“아. 이거? 어머님 회갑 때 가족끼리 찍은 사진입니다.”

그는 사진 속의 민상현과 닮은 모습에 눈이 머물렀다.

“그때만 해도 형은 살아 있었는데…….”

“아니, 그럼 작고하셨나요?”

“네. 우리 가족의 커다란 비극입니다. 형님은 학창시절부터 운동권이었죠. 박종철 고문사건에 대항하다가 경찰과 맞서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결국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그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애희는 그 옆에 있는 민상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분이 쌍둥이처럼 많이 닮았어요!”

“맞아요. 우린 쌍둥입니다.”

“어머? 그, 그래요?”

가슴이 벅차고 놀랐지만 애써 침착한 척 하였다.

“형님은…… 그럼 결혼하셨나요?”

“아뇨. 독신을 고집하였지요. 학창시절에 어떤 사연이 있었나 봐요!”

이때 수업 종이 울리자 두 사람은 각자 수업을 하러 복도로 향하였다.

‘그가 죽다니!…….’

그날 애희는 결혼도 하지 않고 병고에 시달리다 가버린 그의 죽음이 너무도 애석하여 그날 밤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느덧 대지가 신록으로 덮여진 푸른 오월을 맞이하였다.

이곳 풍원중학교에서는 모처럼 전교직원 등반대회 행사를 맞이하였다. 북한산의 오도 도청 쪽의 입구에 교사 팀은 집결하여 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등산길이 비교적 험하지 않은 코스로 택하여 일행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였다. 전애희는 앞서 가며 신선한 공기를 심호흡하며 저쪽 남선생의 삼삼오오의 대열을 바라보았다. 민상수는 그들보다 조금 떨어져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그는 빨간색 등산조끼와 그의 구릿빛 피부가 약간의 야성미를 발하였다. 애희는 민상수를 훔쳐보았다. 그는 동료 남교사보다 외모가 출중하였고 위풍당당하며 남성적인 매력이 넘쳤다. 여자깨나 울리게 생긴 그 옛날의 민상현의 모습을 방불케 하였다. 마치 지금 그와 함께 등산하고 있는 듯하였다. 전애희는 약간 앞서서 사이를 두고 떨어졌다. 민상현과 가까이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애석하게 죽다니!’

아마 그는 지금의 민상수와 같은 모습이리라. 그러나 사진에서 본 그의 모습은 훨씬 늙은 오십대 중반으로 보였다. 민상수를 피하면서도 뇌리에는 자꾸 그 옛날의 비극장면으로 그녀를 몰고 갔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동행 팀은 삼삼오오 천천히 걸으면서 쉬엄쉬엄 올라오고 있었다. 여선생들은 잡담을 하면서 한가한 분위기였다. 전애희는 산행을 할 때는 언제나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고 자연과 자신과 삶과의 대화를 원하였다. 휴대전화나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는 족속들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또 담배를 피우는 자들도 혐오의 대상이었다. 맑은 공기를 오염시키는 주범이고 맑은 공기를 마시러 산에 오는 사람에게 담배연기는 그들의 욕구를 좌절시킨다. 그래서인지 늘 무리들과 약간 떨어져 등산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습관을 인간은 때론 세속을 떠나 조용히 사색하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즐겼다.

학창시절의 상현의 모습이 조용히 떠올랐다. 머리를 흔들어 애써 저지시키지만 비극적인 그의 생애가 애달팠다. 그녀는 머리가 아찔하며 현기증이 났다. 지난 결혼생활 동안 가끔씩 그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가정을 가진 유부녀로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의 불꽃을 신앙과 이성의 자물쇠로 꼭꼭 잠가버렸다. 그런데 그 사랑의 불꽃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가슴 속의 한 구석에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새삼 깨달았다.

‘애희 씨 좋아한 적 없어요…….’

하숙집에 찾아갔을 때 그의 냉정하고 차가운 마지막 고별선언!

‘애희 씨 좋아한 적 없어요. 남자가 한 번 말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야죠!”

그토록 자신을 가슴 아프게 했던 그 남자!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남자!

자신은 쌍화차라도 한 잔 권하며 그가 기운을 내며 회복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늘 그를 위한 쌍화차를 준비하였었다.

‘상현 씨…… 왜, 왜 그렇게 죽었나요, 행복하게 사셔야 하잖아요!’

그러다가 문득 자신에게 밝히지 않은 몸의 신변에 대한 불행을 그가 이미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꾸 상현과의 심연 속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였다. 아마 그것은 상수를 만나서부터 더욱 깊어져 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소쩍새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잡초가 무성하고 관목이 우거진 샛길이 보였다. 전애희는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일행은 보이지 않고 자신만이 한참 앞서가고 있었다. 웃거나 이야기하는 삼삼오오의 말소리도 어느덧 들리지 않았다. 가끔씩 혼자 산행을 온 중년남자들이 지나갔다.

‘길을 잘못 든 것일까!’

분명히 등산로로 표시된 빨간색 화살표 방향으로 오른 것이었는데 알 수 없었다.

“김 선생님 어디 있어요?”

애희는 나팔 모양으로 입가에 손을 대고 외쳤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혹시 사람들이 모여서 올라오는 것 못 보셨나요?”

지나는 산행 인에게 물었다.

“길을 잘못 드신 것 같습니다. 함께 온 일행인 듯 싶은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꺾어 가신 것 같은데요.”

그녀는 막연하며 아찔하였다. 완전 고립된 처지였던 것이다. 다시 올라왔던 길을 그녀는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휴대폰도 가지고 오지 않아 통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서두르며 산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펑퍼짐한 바위 위에 민상수가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그녀가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애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편으로는 그를 보자 그녀는 너무도 반갑고 다행이었다.

“놀라셨나요?”

파랗게 질린 전애희의 얼굴을 보고 그는 여유 있게 웃었다.

“많이 뒤쳐진 건가요. 아니면 길을 잘못 든 것입니까?”

“제대로 온 것입니다. 이쪽 길이 정상적인 산행길인데 일행이 완만한 샛길로 빠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 선생은 어떻게 이쪽으로 오셨나요?”

“전 선생님께서 혼자 앞서 가시는 걸 보니 걱정이 됐습니다!”

그는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어 내밀었다.

“드세요.”

그녀는 목이 말라 그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숲속은 완전히 햇빛을 가리고 있었고 오월의 푸른 신록이 마음껏 자신의 계절을 뽐내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눈을 들어 하늘을 찾아 더듬었다. 어디서 한 쌍의 소쩍새가 서로 박자를 맞추면서 노래를 하듯 지저귀고 있었다. 말없는 그의 표정과 조용한 몸짓 속에는 무언의 위엄이 흘렀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민상수가 전애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들어 그와 마주치자 애희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놀랐어요. 약간만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려고 했었는데요!”

그는 바위틈에 앙증스럽게 비집고 피어난 보랏빛 들꽃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떠세요. 전근하여 오신 후 학교생활이?”

“네, 아주 좋습니다. 학생들도 순한 편이고 교사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라서 이해와 협력이 잘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힐끔 전애희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전애희 선생님을 뵐 수 있으니 영광이죠!”

“……!”

“전 선생님을 보면 저희 형님이 말하던 ‘쌍화차 친구’라는 여대생이 생각납니다. 왠지 모르게 형님이 말하던 그런 분위기가 풍겨요!”

“쌍화차 친구요?”

“저희 형님이 학창시절에 진심으로 사랑하던 여대생을 그렇게 불렀나 봐요. 그 여대생에게 본의 아니게 모질게 상처를 주었다더군요. 형님은 늘 쌍화차 친구에게 자신의 진심을 숨겼던 것을 가슴 아파하셨죠!”

“사랑한 여자에게 왜 그렇게 모질게까지 했을까요.”

“형님은 자신의 암담한 미래에 그녀를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었죠!”

“경제적인 이유인가요?”

“졸업이나 제대로 할 형편도 아니었죠. 경찰에게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형님은 오랫동안 시달리다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죠.”

“가족들이 많이 힘들었겠군요.”

자신의 아픈 마음을 그렇게 가리듯 냉정하게 뱉었다.

“전 선생님을 왜 만났을까요?”

“……!”

그의 얼굴엔 슬픔이 감돌고 있었다. 그는 서서히 과거를 회상하듯 말의 서두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형님은 그 여대생의 사진을 늘 가지고 다녔어요. ‘자! 이 사진을 봐라. 이 여대생 예쁘지? 쌍화차 친구야. 어때 근사하지? 아! 그 쌍화차를 한 번 먹어 봤으면!’ 이런 식으로 늘 되뇌었거든요. 전 숨을 거둔 형님 앞에 오열하였고 형님이 남긴 사진을…….”

그는 자신의 자주색 지갑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딸기파티를 하고 기념으로 하숙집 입구에서 일곱 명이 모여서 찍은 사진이었다. 애희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 활짝 웃는 모습이었고 보라색 원피스를 입었는데 매우 잘 어울렸고 비교적 이목구비가 뚜렷하였다. 그 사진은 전애희도 앨범에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야 쌍화차 친구를 만났습니다!”

“네? 뭐라고요?”

그는 담담히 계속해서 이어갔다.

“전 풍원중학교로 발령을 받았을 때, 겉으론 아무 표시를 내지 않았지만 몹시 놀랐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 전 선생께서 형님이 사랑하였던 여자였다고 생각하니 저로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한애자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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