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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 역사의 매듭
약산 김원봉은 누구?
  • 강기석
  • 승인 2019.06.07 14:32
  • 수정 2019.06.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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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은 현충일이다. 민족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어제는 또 1949년 친일경찰이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습격해 결국 와해시킨 날이다. 민족을 배반한 자들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친일경찰이 감히 반민특위를 습격한 것은 대통령 이승만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일파를 권력 기반으로 삼은 이승만은 반민특위가 가장 악질적인 친일경찰 노덕술을 체포한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노덕술은 숱한 독립투사들을 체포, 고문해 죽이기까지 한 자다.

약산 김원봉은 항일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의열단을 이끌며 매국노들을 여럿 암살했다. 김원봉은 중국사관학교 제4기 졸업생으로 군사문제에 조예가 깊었다. 민족혁명당의 당수이기도 했던 그는 1938년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조선의용대는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광복군에 자진 편입했다. 총대장 김원봉은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일제는 약산의 목에 백범 김구보다 많은 320억 원(현재 가치)의 현상금을 걸었다.

해방 후 김원봉은 숱한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노덕술 같은 친일경찰이 그를 체포해 뺨을 때리며 모욕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사흘 밤낮을 울던 그가 결국 1948년 월북했다고 한다. 미군정 아래 백색테러에 무방비로 내던져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였을 것이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이런 약산을 언급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기가 막힌다”느니 “귀가 의심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이승만이 만든 자유당의 후예이며, 이승만이 풀어준 친일경찰 노덕술은 국립묘지 현충원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추모의 날’임에도 불구 나는 종일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와, 덤으로 정정화 여사의 「장강일기」를 읽으며 매국노,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분노를 되새겼다.

강기석  online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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