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붓의 가치 실현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박종형의 경제이야기
[기업에세이] 지식경영과 생애 설계
  • 박종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11 09:03
  • 수정 2019.06.11 09:40
  • 댓글 0

기업은 생애설계도도 없이 일생이라는 여정을 가는 사원들을 데리고 과연 기업 비전을 세우고 추구하며 지식경영을 할 수 있을까 깊이 고려해 보아야 한다.

지식경영이란 지식을 중요한 생산요소와 경쟁 무기로 인식하고 그것을 창조하고 응용하며 확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에 있어 지식은 기술처럼 큰 자산이다. 지식경영의 주체이자 소비자는 물론 사람이며, 지식 중에서 노하우 같은 암묵지(暗黙知)를 소유한 근로자의 업무지식이 가장 실용적이며 가치 있는 것이다.

지식경영의 정착에는 사람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건 가치 있는 창조적 변화를 말한다. 가치 있는 진화와 창조적 변화를 계속하려면 사원은 부단히 배우고 지식과 정보를 저장창고에 쌓고 효율적 네트워크나 시스템을 통해 공유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건 노사 간에 고용계약으로 맺는 <도덕적 계약>의 근간이 되는 지킬 의무이기도 하다.

그 모든 변화는 행동화계획이 일생 또는 직장근무기간에 어떻게 전개되리라는 일정표에 담겨져 관리되어야 한다. 배가 항로설계와 항해일정도 없이 장거리 항해에 나설 수 없는 것처럼 생애 설계 없이 일생을 산다는 건 위험하고 불안한 생활이다. 

숭고한 희생정신의 표본으로 마라톤의 기원이 된 ‘페이디피데즈의 죽음’을 든다. 아테네가 숙적인 페르시아군의 침공을 받아 마라톤 평야에서 다리우스 왕과 결전을 벌여 승리한 후 경주 선수인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까지 42킬로미터를 달려 그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그는 아테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기뻐하시오, 우리가 승리하였소!” 웨치고는 그만 기진해 쓰러져 죽었다.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올림피아 대제大祭에 마라톤 경주가 생겼고, 그는 역사에 영원히 기리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 옛일을 상기할 때마다 일말의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은 ‘전령傳令의 무모함’이다.  그 치명적인 무모함은 전적으로 무계획함의 산물이었다. 승리의 흥분에 도취해 이성을 잃고 그 장거리 완주를 자신한 자만심 때문이었는지, 또는 무리한 질주 때문이었는지 모르나, 어떻든 간에 임무의 완수는 곧 죽음이었다.

만일 좀 더 합리적인 계획을 세워 두 사람이 계주라도 했더라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도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생애 설계는 인간이 동물하고 다르며 동물보다 우수한 것들 중 가장 독특한 것이다. 동물은 빨리 달리기, 높이 날기, 멀리 보기, 후각, 번식능력 등에 있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런가하면, 짝짓고 임신하고 새끼를 낳으며 쏟는 모정이나 먹고 배설하고 잠자며 화내고 눈물 흘리고 하품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감정표현, 집단생활하며 협동하고 리더를 따라 행동하는 사회성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대동소이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불을 사용하고, 옷을 지어 입으며, 신발을 신고, 문자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하고, 양심과 예의를 차리며, 예배와 제사를 드리고, 사유하고 계획하는 것이다. 동물이 자신의 꿈과 의지를 담아 생애를 설계하고 계획한다는 건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생애 설계는 일생이라는 여정을 어떤 수레를 타고 갈 것인가를 설계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각자의 이상과 희망을 따라 자유의지로 사는 것이지 뜬구름이나 부평초처럼 그저 흘러가듯 사는 게 아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구약성서 창세기 편에서 분명히 인간더러 만물을 지배하라 축복했다. 결코 운명의 노예로 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성공적인 일생을 살기 위해서 생애를 설계하고 계획한다. 성공한 생애란 실패와 후회가 없는 일생을 사는 것인데, 그런 완벽한 인생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실패와 후회가 적은 인생을 사는 게  성공적인 생애를 사는 것이며, 그건 지혜와 노력에 의해 좌우되므로, 우린 그것을 생애 설계를 통해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네이버 이미지

생애 설계를 하기 위해 우린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즉, 나는 누구이며, 나와 연관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알고, 나의 꿈과 욕망과 성취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며, 가정과 직장, 사회와 국가에 대한 나의 사명과 책임이 무엇인지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수레의 바퀴 역할을 하는 직업과 직장, 가정과 가족, 건강, 경제 같은 영역에 바퀴살에 해당하는 창조적 도전과 달성할 것, 수입 늘이기와 재산 불리기, 건강유지와 증진, 정서생활과 질적인 가족생활 찾기, 업무지식 넓히기 등의 희망하는 목표를 끼워 넣어 수레가 굴러가게 만든다.

생애는 무지개와 같다. 어떤 모양으로 떠서 얼마나 아를답게 오래 비출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무지개가 건너가는 일생의 여정은 제품수명의 이행移行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직장생활 등 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삼십 대는 ‘희망의 시기’로 제품이 젖소 역할을 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그 시기는 희망찬 무지개를 세우는 때로 키워 낸 젖소가 손만 대면 돈이 되고 희망이 되며 삶의 활력이 되는 젖을 주듯 저들한테 희망이 끊임없이 샘솟게 한다. 성공을 위해 그 무지개를 쫓아가면 ‘번영의 시기’인 40대가 열린다. 거기엔 생애의 빛나는 절정과 기우는 쪽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함께 있다. 그때 제품수명의 포트폴리오가 주는 가르침이란 생애를 설계함에 있어 밝은 쪽 절반 어느 시점에선가 생애가 내리막으로 바뀔 때를 대비해 미리 신제품개발에 착수하듯 대비책을 세워야 된다는 것이다.

그 전환점을 넘어서면 생애 후반부는 기우는 시기로 그 첫 영역인 50대를 들 고양이에 비유함은 그때가 ‘불안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들 고양이는 정해진 잠자리조차 없이 희망이 시들어가는 삶을 산다. 나이가  오십대 중반이 되도록 직장에 남아 있으면 ‘오륙도’라 철면피한 도적 같다 할 만큼 장래가 불안해지는 시기다.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인 내리막길의 경사각에 따라 어떤 사람은 인생의 황혼기가 시작되는 60대로 급전직하 하기도 한다. 제품판매가 성장을 멈추고 수명이 다하면 팔리지 않아 창고에 처박혀 손해만 입히게 되는데, 그런 실패작 신세가 되지 않도록 미리 미리 대비하는 생애 설계를 하자는 것이다. 또한 정년을 다 채우고 퇴직하는 경우 결코 짧지 않은 여생 동안을 안정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건강, 재산, 소일거리 등을 계획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직장인들, 특히 기업 종사원들이 일반적으로 생애 설계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무관심하고 무지하며, 따라서 제대로 짠 생애계획을 가지고 있는 않다는 사실이다. 더욱 의아스러운 것은, 기업이 고품질 경영을 위해 첨단적이며 고차원적인 인사기법이나 시스템을 도입해 적용하고 큰돈을 들여 교육훈련을 하면서도 종업원들한테 생애계획 수립과 제시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종업원들이 무슨 꿈을 꾸고 있으며, 무엇에 성취하는 보람을 두는지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장기적으로 추구할 비전을 수립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비전을 수립하는 절차가 평사원부터 시작하게 되어 있는 게 그들의 꿈이 배어 있는 희망을 공동지향 목표로 묶어 내게 하려는 데 있다. 그래야만 그 비전에 회사 사랑, 일에 대한 애착, 동료애 같은 애정이라는 온기가 통하게 된다. 비전을 생동시키는 에너지란 바로 그런 애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일생계획이 기업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기업이 지향하는 비전과 부합하고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기업 비전과 동떨어진 일생계획을 세운다면 그런 종업원은 회사에 환멸을 느낄 가능성이 짙으며 주인정신을 뿌리내리기 어렵다. 반면에, 확고한 자기 일생계획을 세우고서야 회사한테 뭔가 희망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생산적인 요구를 할 수 있으며 그것을 추구해 노력하게 된다.

몇 주간의 여행을 가도 누구나 일정표 등 여행설계를 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자신의 일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애를 설계하는 데는 대체적으로 소홀하고 무관심하다. 채 두 시간이 안 되는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마라토너도 구간별로 힘을 어떻게 안배하고 속도를 조절할 것인지 등 코스설계와 경주계획을 짜고 뛴다. 하물며 사회에 독립된 사회인으로 나가 최소한 30년 이상을 살아갈 일생 여정을 그저 밀리고 끼어가듯 아무런 설계나 계획 없이 달려간다는 것은 매우 지혜롭지 못하고 위험한 삶이다.

기업이 비전을 만드는 건 추구하려는 이상을 설계하는 것이며,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경영 전략과 계획으로 담겨 지향하는 것이다. 비전을 만들고 중장기 경영계획을 실천하는 주인공이 사원이라면 그들이 어떤 생애를 설계하는가는 기업의 이상 구현에 너무나 중요하다. 사원 개인의 희망은 기업 비전의 요소이고 그들의 욕망과 목표는 기업 경영계획의 골격을 이루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것들은 계획으로 그려지고 계수 화 되어 기업 성장과 발전의 청사진으로 집대성되는 것이다.
생애 설계가 얼마나 거창하고 멋진가 여부는 중요치 않다. 그것이 후회가 적은 만족한 삶을 살게 한다면 그로서 족한 것이다. 
그런 삶을 설계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기 위해서 우린 생애 설계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박종형 칼럼니스트  johnypark@empas.com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종형 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