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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락장송
「절벽 위의 솔 씨 하나/ 낙락장송 되었던가/ 한 마음 발한 혈성(血誠)/ 혈인(血印)을 나투어서/ 백척간두(百尺竿頭) 독야청청(獨也靑靑)/ 청송 불멸(靑松不滅) 노래하네.
  • 김덕권
  • 승인 2019.06.19 03:53
  • 수정 2019.06.19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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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락장송
그 옛날 사육신(死六臣) 중 한 분인 성삼문(成三問 : 1418~1456)의 시 <낙락장송(落落長松)>이 생각납니다.「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우리가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는데 많은 노력이 뒤따릅니다. 노력과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지요.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당연한 진실을 가끔씩 망각하곤 합니다. 어디서 갑자기 보물이 쏟아지길 기대하기도 하고 없던 돈이 생기길 바라기도 합니다.

엊그제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어 십 수억을 받은 청년이 도박의 유혹에 빠져 하루아침에 거액의 돈을 날려버리고 좀도둑이 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노력 없이 번 돈은 결국 패가망신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단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작은 것으로부터 커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를 일러 우리는 ‘이소성대(以小成大)의 법칙’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성공을 하지 않으려면 고난과 시련에 예민해질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길 바랍니다. 그러기에 인생에서 고난과 시련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이 아닌 성공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이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소성대의 진리를 실현하는 데에는 집중(集中)과 몰입(沒入)이 필요합니다.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다하더라도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능률이 오릅니다. 하지만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시간투자에 대비해서 그다지 좋은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고난과 시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력이 강하고 몰입이 강한 사람은 고난과 시련은 하나의 과정으로 스쳐지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고난과 시련은 고통이요, 죽음과도 같이 느껴질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지혜롭게 극복한 사람은 또 다시 고통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리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성공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과정을 통해 소중한 땀을 흘린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의 길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고생은 고난이요, 역경인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힘과 능력이 생기는 것이지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하는 자세가 성공을 만들어주는 비결(秘訣)입니다. 능력도 되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성공을 꿈꾼다면 너무 힘들어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성공을 해 본 사람은 더 커다란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지요.

고난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이탈리아 바이올린 제작자 스트라디바리(1644~1737)는 바이올린을 이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미리 선정된 나무를 성장의 어느 적당한 시기에 잘라서 쓰러트리고는 계획에 따라 작은 나무 조각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그 나무 조각들을 태양의 열이나 폭풍에 방치해 둡니다.

그런 연후에야 굽히고, 문지르며, 갈고 닦아야 그 유명한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이 완성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칠게 취급된 까닭에 보통의 재목에서 세계 최고의 명품이 나올 수 있고, 그 음색(音色)이 세계인을 감동시킨다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청송불멸(靑松不滅)’이라는 화제(畵題)를 가진 그야말로 ‘낙락장송’을 그린 남농(南農) 허건(許楗 : 1908~1987) 화백의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저는 비록 그림이지만 그 ‘낙락장송’ 앞에만 서면 숙연(肅然)해집니다. 얼마나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내고 저 자리에 우뚝 서 있을까요?

우리 민족 치고 솔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늠름한 기상과 아름다움이 언제나 저를 황홀하게 하지요! 그 그림을 보고 읊은 시가 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신앙⦁수행시집『덕화만발(德華滿發)』에 실린 졸시(拙詩) <청송불멸>입니다.

<청송불멸>

「절벽 위의 솔 씨 하나/ 낙락장송 되었던가/ 한 마음 발한 혈성(血誠)/ 혈인(血印)을 나투어서/ 백척간두(百尺竿頭) 독야청청(獨也靑靑)/ 청송 불멸(靑松不滅) 노래하네.

초발심(初發心) 꽃발신심/ 우담바라 피웠더냐/ 우담화(優曇華) 피고 지는/ 봄날의 이른 아침/ 혈인서천(血印誓天) 세운 맹세/ 여여자연(如如自然) 하구나.」

오늘을 참아내면 내일이 편안합니다. 잠시 참는 고난이 나중에는 ‘보리도(菩提道)’를 이루게 되지요. 정산(鼎山) 종사《법어(法語)》<응기편(應機編)> 7장에 인욕(忍辱)에 관한 법문(法門)이 나옵니다.

「송죽은 상설(霜雪)을 지냄으로써 그 절개를 얻고, 보살은 인욕으로써 그 마음을 기르나니, 인욕의 공부는 처음에는 죽순 같고, 다음에는 대 같고, 마침내는 태산교악(泰山喬嶽) 같아 만세에 뽑지 못할 힘이 있고, 마음 넓히는 공부는 처음에는 시내 같고, 다음에는 강 같고, 마침내는 대해 창양 같아서 불가사의한 역량이 있느니라.」

낙락장송은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닙니다. 다 이와 같이 욕됨을 참고, 모든 번뇌 망상을 털어 버리며, 팔만사천 마군(魔軍)이의 시험을 이겨내야 낙락장송이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한 세상 살다 가는데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뿌리 채 뽑혀서야 어디 쓰겠습니까?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요행이나 바라고, 작은 난관에도 금새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 번 태어난 인생 태풍이 불어도 이겨낼 수 있는 낙락장송 불보살의 꿈을 실현하고 가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6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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