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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챔피언 복서 문성길 선수는 왜 프로로 전향했을까?
1987년 프로전향의 비화, 문성길 전 챔프가 힘들게 결정했던 기억
  • 김태훈 기자
  • 승인 2019.06.19 09:52
  • 수정 2019.06.19 09:56
  • 댓글 0
(왼쪽부터)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문성길 전 프로복서, 안상우 고기굽는집탄다타 대표

[뉴스프리존=김태훈 기자] 서울 강동구 둔촌동 소재 문성길복싱클럽에 들어서자마자 조영섭 관장이 밝은 미소로 필자를 맞는다. 문성길 복서의 트레이너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조 관장은 문성길 복서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문성길 복서가 80년대 복싱계를 주름잡았던 포스로 클럽문을 두들겼다. 그리고 본격적인 프로복서 전향의 비화를 풀어놓았다.

"허영모 선수와 3번의 라이벌전을 치르면서 느꼈습니다. 제가 아무리 잘해도 당시 국가대표 감독은 저를 선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요."

2번의 백중세 끝 3번째 붙은 허 선수와의 라이벌전. 왠일인지 처음부터 예감이 이상했다. 전국민이 보는 TV에 방송이 안 된다는 것.

그 경기에서 문성길 선수는 허영모 선수를 압도적으로 몰아붙였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압도적인 기록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점수표를 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5:0의 점수표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세부 기록을 봤을 때 모든 심판이 제가 약간의 우세(1~2점차)로 이겼다고 판정한거에요.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 심판에 손을 썼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당시 사람들이 TV를 봤다고 한다면 그렇게 판정을 내릴 수는 없었어요."

원사이드하게 진행했는데도 간신히 이긴 것으로 나온 결과에 자괴감을 느낀 문성길 선수는 당시 국가대표 감독을 포함한 복싱계가 비리로 얼룩져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세계를 제패했던 압도적인 실력에도 전국대회 7번의 대결에서는 6번의 동메달(한번은 안면 부상)에 그친 것도 분노가 치미는데, 이런 상황을 맞이하니 도저히 아마추어에서 뛸 수가 없었다는 것.

결국 문성길 복서는 프로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고, 88올림픽의 꿈은 휴지조각이 됐다. 지금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복싱계를 포함한 스포츠계 만연한 비리가 빨리 척결되기를 그는 간절히 바란다.

"복싱계에 만연한 비리는 저에게 올림픽을 포기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프로복서의 길을 걷게 됐죠. 앞으로는 저와 같은 안타까운 사연이 없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한편 문성길 전 프로복서는 1986년 11월 미국 리노에서 열린 제4회 세계복싱선수권대회 밴텀급에서 대한민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아마추어 권투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허영모와 라이벌 관계로 유명하다.

김태훈 기자  ifreet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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