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은 ‘결혼으로 끝나면 희극, 죽음으로 끝나면 비극’이라 한 바 있다 .또한 영국의 대표적 좌파 문화이론가 테리 이글턴은 “현대 사회의 갈등 국면은 진보와 보수가 아닌 ‘비극적 휴머니즘’과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에 있다”고 이채롭게 분석했다.(경향신문 김학순 2010.9.17. 기사 발췌)

우리네 인생도 해피엔딩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많은 작품들이 비극을 소재로 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많은 학자들에 따르면 좋은 비극은 관객들에게 이야기와 같거나 비슷한 비극의 희생자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과 영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동정심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이성적으로 이와 같은 비극적 상황들을 보면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디오니소스적 체험의 본질은 인간을 한계까지 몰고 감으로써 오히려 그로부터 벗어나 환희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관찰했는데,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체험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을 느끼게 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오히려 인간은 이성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초월을 체험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영혼은 한 차원 더 고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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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만선' 공연사진_교통사고로 손과 발이 불편한 아비(오세철)과 쉬지않는 노동으로 안 아픈 곳이 없는 어미(이선),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편한 딸(김영경) /ⓒ권애진
연극 '만선'_마지막을 준비하는 날까지 싸움이 끊이지 않는 가족_아비(오세철), 어미(이선), 딸(김영경) /ⓒ권애진

비극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만선>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미래가 보이지 않고 어쩌면 사회 속에서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 같은 이들이다. 그리고 칸영화제에서 2016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나오는 인물들도 어느 누구 하나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들이다.

두 작품 모두 아픈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몸이 아픈 사람일수도, 가슴이 멍들 만치 아픈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조한진희 저)’, ‘건강격차-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해도 병들지 않는다(마이클 마멋 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저)’ 등 아픈 몸과 마음을 대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저서들이 근래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아픈 이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픈 몸들을 차별하지 않는 것은 윤리의 문제이며, 인권의 문제다. 

또한 의료적으로는 질병예방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픈 몸들이 질병으로 인한 차별과 낙인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 예방이 가능해진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저)’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대사

인간이 좀 더 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패배자라는 끔찍한 낙인을 지우며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우리는 마음이 병든 이일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 벼랑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계속 흔들려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행복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기 위해 ‘사회’, ‘국가’라는 인간이 만든 굴레들이 어느 누구에게도 숨 막히는 감옥이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기 위해 연극 <만선>은 우리에게 비극을 선사하고 있다.

연극 '만선' 단체사진_딸(김영경), 아비(오세철), 아들(김정환), 어미(이선), 노인역 그리고 연출을 하고 있는 정상훈 배우 /ⓒ권애진

‘미지愛씨어터’에서 만드는 ‘가족이 정말 무엇이길래’를 묻고 있는 연극 <만선>은 오는 23일까지 대학로 서완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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