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 - <빵굽는 여인> 제6회

 

한 마리의 불나비가 훨훨 날아왔다. 그것이 숙희의 몸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 불나비는 숙희의 심장을 쪼아댔다. 그녀의 옆에는 갓난아기의 인형이 눕혀져 있었다. 다른 불나비가 날아와 그 인형의 가슴과 이마를 쪼아댔다. 숙희는 가슴의 통증을 참아내며 결사적으로 불나비로부터 자신과 인형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계속 날아드는 불나비들은 무리지어 그녀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숙희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숙희 누나!”

성석은 땀을 흘리며 눈을 번쩍 떴다.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괘종시계가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아름다운 초원 위에 집이 있었다. 그 집 앞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어미개의 뒤를 쫓고 있었다. 강아지들은 가끔 잡지나 달력에서 동물가족의 단란함을 느끼게 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어미 강아지는 남매인 강아지에게 볼을 비벼댔다. 남매 강아지가 푸른 언덕 쪽으로 뛰어갔다. 어린 강아지는 시냇가의 풀밭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시냇물을 마시고 곧 숲 속으로 달려갔다. 어린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큰 강아지의 코를 비벼대며 혀를 핥아주었다. 형제는 서로의 입을 비볐다. 그러던 중 큰 강아지의 등을 어린 강아지가 올라탔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강아지들은 집을 향하여 달렸다. 소나기가 퍼붓자 집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 집은 빵으로 만든 집이었다. 물에 젖은 빵의 무게가 그들을 짓눌렀다. 두 강아지는 모두 쓰러졌다.

집 밖의 어미 강아지는 그들의 시체를 핥으며 킹킹거렸다. 밖에선 장마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뇌성이 크게 울렸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성석의 몸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또 악몽이었다. 밖에는 안개가 짙게 깔렸다. 그는 침대 위에 일어나 욕실로 향하였다. 흥건한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샤워기로 온몸에 물을 끼얹었다.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한결 정신이 상쾌해졌다. 온몸을 수건으로 감싸며 그는 거실의 탁상시계 앞의 작은 스냅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쉰다섯의 어머니의 생신날에 찍은 사진이었다. 그 모습은 서양화의 모딜리아니 여인과 흡사했다. 아버지와는 언제나 소원하였던 어머니! 어머니의 정열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에 대해서는 모두 형식적이고 의무적이었다.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어머니의 시나리오에 등장되는 자신이 지겹고 역겨웠다. 어머니는 여전히 빵 굽는 냄새로 세상을 진동시킬 것이다.

“그곳의 제과사업의 사정을 검색하여 이메일로 보내라!”

“앞으로의 유망사업을 지금부터 너도 탐색 연구해야 한다.”

“난 세상에 제일 맛있고 영양가 있는 빵을 만드는 CEO가 될 것이다. 내가 개발한 기발한 맛의 빵을 세계인들에게 꼭 먹게 할 것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그는 다시 스냅사진을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가늘게 찡긋하는 이상야릇한 표정이다. 숙희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찌개를 맛있게 먹었던 마지막 날! 숙희 누나의 머리카락 냄새가 어렸을 때 자신을 안아준 할머니인지, 어머니인지 모를 그 냄새와 흡사하였다. 그 냄새! 아!

창밖의 샌프란시스코는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안개비에 싸인 수많은 네온사인 사이로 강물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금문교 위의 차량들이 깜박거렸다.

정겨운 항구다. 어렸을 때 부산항의 할머니 집에서 자라서인지 바다가 없는 곳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유도 마음껏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제일 비싼 빌라로 숙소를 옮겨 주었다. 언제나 내다보이는 금문교 위의 샌프란시스코는 고적한 고향 친구와 같았다.

 

남편의 장례식을 마치고 거의 일 년이 지났다. 그녀는 남편의 영정에 한 미모의 여인을 떠올려 보았다. 그의 영정에 조용히 눈물짓던 30대의 여인.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렸다. 아마 주말마다 와이셔츠에 묻은 립스틱과 향수의 주인공이라고 여겼다. 노인숙은 더는 따지기를 그만 두었다. 남편은 어쨌든 어마어마한 재산을 자기에게 안겨 주었다.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장 선생이었다. 그는 세리가 아플 때 찾아가는 동물병원 수의사였다.

“서울에 올라오면 좋은 사업이 기다리고 있소. 보고 싶은 그대여!”

장 선생의 다정한 말에 그녀는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쩌면 장 선생과 새로운 삶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이미 그녀는 그에게 매료되어 갔다.

사진=이미지컷

날씨는 어느덧 10월 중순의 날씨였다. 찬란한 가을 날씨에 그녀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상에 젖었다.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찬란한 청명함이었다. 열차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논둑에 두 마리의 참새가 서로 입을 쫑긋거리고 있었다. 푸드덕거리며 앞서가는 참새의 뒤를 옆에 있던 참새가 뒤따랐다. 먹이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한 모양이다. 참새는 그곳에 부리를 대고 쪼아댔다. 뒤따라온 참새도 조르르 옆으로 가서 함께 쪼아 먹었다.

창밖의 먼 들판에는 황금빛의 벼가 익어갔다. 가을 하늘은 무척 청아하였다. 저편의 하늘에 아득한 과거의 실타래가 풀리는 듯 그녀의 마음은 뒤따랐다. 노인숙은 소설가처럼 추억을 더듬어 펼치기 시작하였다.

여자가 교사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을 때였다. 몇 번의 임용고시의 도전 끝에 낙방이 되어 매우 지쳐 있었을 때였다.

“이번에도 떨어지다니, 그러나 다음번엔 분명히 붙고야 말리라.”

다시 각오를 새롭게 하고 밤낮으로 공부에 전심하였다. 그러다가 머리를 좀 식혀야 할 필요를 느껴 오대산의 소금강 계곡으로 향하였다.

그곳의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고 휴식을 취하고 공부도 할 계획이었다. 그러자면 민박을 하여야 했고 한 달 정도의 기간을 정하였던 것이다.

“어서 오세요!”

오십대 중반의 여자가 다가왔다.

“아가씨 혼자신가요?”

주인 여자는 이리저리 행색을 살피며 물었다. 여자 혼자 다니는 것을 보니 보통이 아니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그때 민가 마당 한 가운데에 있는 감나무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십대의 남자가 힐끗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순간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자, 이리오세요.”

주인은 남자와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 아가씨 방은 저쪽 중앙의 방입니다.”
그곳은 마루가 있고 방이 세 개인데 모두 손님이 머물 방이었다. 맞은편은 주인의 거처여서 훤히 내다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안내하는 그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그러자 남자가 마루를 통과하여 맨 끝의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누워서 잠시 쉬다가 보니 몹시 시장해졌다. 점심을 걸렀다는 것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 여자는 취사도구를 들고 마당의 수돗가로 나갔다. 옆의 그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여기 식사가 충분하니 함께 드시지요.”

아까 그 남자였다.

그는 채를 썬 채소와 오징어 회, 그리고 수북이 담긴 밥에 초고추장에 끼얹어 움푹한 사기그릇에 비비기 시작하였다.

“오늘 주문진에서 직접 사온 것입니다.”

그는 한 숟가락 듬뿍 떠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자, 드셔보세요!”

여자는 머뭇거림 없이 입에 넣었다. 향긋한 깻잎과 오이, 당근, 풋고추, 양파가 쫄깃하며 싱싱한 오징어 회와 어울려 아주 상큼하고 맛이 있었다.

“맛있죠?”

남자는 여자가 마치 애인이라도 되는 듯 눈을 찡긋하였다.
“이곳에 와서 오징어 산채비빔밥을 먹지 않으면 섭섭하죠!”

잠깐의 인사소개로 두 사람은 서로가 여기에 꽤 오래 머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인숙’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자 그는 자신의 어머니 이름과 똑같다고 하며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여자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아줌마는 부엌에서 남녀의 만남에 걱정스럽다는 듯이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객지에 저 아가씨처럼 혼자 다니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곧 수돗가에 나와 양치질을 하고 클렌징을 간단히 하고 난 후 피곤하여 곧 잠이 들었다.

한애자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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