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팔, Bophal(1984~)' 단체사진_조의진 배우, 한승현 오퍼, 강혜련 배우, 김태령 조연출, 김원정 배우, 윤혜숙 연출, 김지훈 배우 /ⓒ권애진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아직도 끝나지 않은 ‘보팔 가스 누출 참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되짚어 보는 래빗홀씨어터의 연극 <보팔, Bhophal(1984~)>가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과하지 않지만 충분히 전달력 있는 스토리와 연기로 사고에 대한 경각심과 무대예술로서의 연극의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고 공연의 아쉬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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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팔, Bophal(1984~)' 공연사진_강혜련 배우_참사를 이야기하는 연극이니 만큼 시작 전에 안전을 위한 안내에 심혈을 기울였다 /ⓒ권애진
'보팔, Bophal(1984~)' 무대사진_참사가 일어난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에 걸려 있던 'Safety is everybody's business' 문구 /ⓒ권애진
'보팔, Bophal(1984~)' 공연사진_김원정 배우_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 보팔, 친가리 재활센터 치료사의 이야기를 극의 시작과 마지막을에 전하며 참사의 피해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권애진

2019년

보팔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약 1만 6천명, 피해자는 최소 55만 8천 명 정도로 추정된다.

생존자 단체는 “보팔에 정의를” 구호를 외치며 지금도 어디선가 투쟁하고 있다.

 

- '보팔 가스 누출 참사'에 대한 인도 법정의 판결문 -

(1984년 인도 보팔에서 발생한 유니언 카바이드 살충제 공장의 가스 누출 사고를 기반으로 현실적 상상력을 가미해 구성된, 극 중 직원에 의해 발표되는 판결문 전문)

지금부터 1984년 보팔 유니언 카바이드 살충제 공장 가스 누출 사고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선고에 앞서 이 재판의 진행경과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재판관들은 지난 5년간 이 사건을 공정하고 신중하게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왔습니다. 사고의 희생자들, 그리고 인도의 모든 국민들께서도 저희와 마찬가지로 많은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허나 보팔 사고는 유니언 카바이드라는 초국가기업의 특성상 국내법과 국제법의 조약 및 절차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점 그리고 피해 배상에 있어선 미국과 인도의 법적 관할권 문제가 있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재판의 과정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음을 밝힙니다.

저희 재판부는 오늘의 이 선고가 더 이상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유니언 카바이드 살충제 공장에 대한 보팔 정부의 규제 완화와 관련한 점을 보겠습니다. 국내법상 공장 임대 부지는 주거 밀집 지역 및 유동 인구가 특정 이상이 되는 정거장으로부터 2km 이내로는 제한됨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원고는 이에 관련 공장 부지의 위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며 공장 기준 2km 이내 마을의 피해 사례를 증거로 제시하였습니다. 허나 공장이 설립된 1969년을 기준으로 하면 현재 법적 규정과 다른 내용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계약상 임대 부지와 관련한 내용은 모든 법적 승인이 허가되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장 근처 마을에 관해선 당시 마을이 현 정부에 신고를 하지 않은 빈민촌 및 집단촌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기에 이에 어떠한 법적 보호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유니언 카바이드의 공장부지 선정 및 규제 완화와 관련해 법률 위배는 없으며, 다른 적법 요건에 어떤 흠결도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다음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 관리 소홀과 관련한 점을 알아보겠습니다. 원고는 1981년 12월 공장에서 가스가 누출되어 직원 한 명이 사망했던 기록과 1982년 1월 가스가 누출, 직원 24명이 긴급 대피를 한 기록을 증거물로 제시했습니다. 또한 1983년부터 1984년 사이 인원 감축을 위해 회사 측이 노동자들에게 조기 퇴직을 강요했단 점은 원고 측 증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고는 유니언 카바이드가 이러한 공장 관리 문제에 있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주장했고 본 재판관들은 이번 사고와의 관련성이 전혀 없지 않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사고 기록과 이번 사고의 과정 및 주요 발생 원인은 동일하지 않다는 점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조가 불법적인 탄압을 받았단 증거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확연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허나 피고가 구체적으로 어떤 압력을 행사했는지 분명하지 않고, 이에 본사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다 인정할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또한 유니언 카바이드의 인원 감축이 보팔 공장에만 국한되어 특별히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 유니언 카바이드 전체 운영 지침에 따른 선택이었단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고가 법적으로 꼭 배치되어야 할 공장 관리직을 장기간 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선 법적 책임이 있음을 밝힙니다.

지금부터는 보팔 사고 피해 배상금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원고는 증거물로 당일 사망자 총 3787명의 명단과 추후 추가된 약 8000여 명의 사망자 명단, 그리고 55만 명의 부상자 명단을 법정에 제출하였습니다. 재판관들은 원고와 피고의 피해 증거에 대해 서로 이견이 있음을 확인했으나 그 피해 규모가 거대하단 점에선 동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피고가 적정한 배상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선 재판관들 모두 동의를 하였습니다. 허나 사망자 및 부상자의 경우, 실제 보팔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신원미상의 사람들 또한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배상금이 실제 피해자들에게 온전하게 양도되지 않을 수도 있단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재판관들은 원고가 배상금으로 요구한 33억 달러의 액수는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피고의 법 위반 행위는 사고의 규모와 피해 상황을 검토한 바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나 유니언 카바이드 회장 및 인도지사장을 포함한 7인의 경영진에 있어서 그들이 이번 사고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지시한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회사 운영의 문제가 이번 사고에 영향을 준 바는 사실이지만 특정 인원에게 한정되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한 처벌의 관례가 될 수 있기에 재판관들 또한 판단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희 재판관들은 오늘의 판결이 많은 고민 끝에 내린 최선이었음을 밝히고, 모든 분들께서 이를 겸허히 수용하시길 기대하는 바입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고는 총 4억 7천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한다.

유니언 카바이드 회장 및 7인의 경영진에 대한 처벌 안건을 기각하고

이후 그 어떤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것으로 선고를 모두 마칩니다.

'보팔, Bophal(1984~)' 공연사진_김지훈 배우_직원 입장에서 참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박태양(제공=래빗홀씨어터)
'보팔, Bophal(1984~)' 공연사진_강혜련 배우, 김원정 배우_의사 입장에서 참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박태양(제공=래빗홀씨어터)
'보팔, Bophal(1984~)' 공연사진_강혜련 배우_자원봉사자 입장에서 참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박태양(제공=래빗홀씨어터)
'보팔' Bophal(1984~)'_강혜련 배우_사고를 조사한 박사 입장에서 설명을 더해준다 /ⓒ박태양(제공=래빗홀씨어터)
'보팔, Bophal(1984~)' 공연사진_강혜련 배우, 조의진 배우_기자회견 중인 유니온카바이드 회장. 인재를 막는 것은 어쩌면 재벌총수의 도덕성과 사람에 대한 소중함의 인식변화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박태양(제공=래빗홀씨어터)
'보팔, Bophal(1984~)' 공연사진_김원정 배우, 강혜련 배우_유니언카바이드의 대변인과 사고를 조사한 박사와의 대치를 통해 답답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태양(제공=래빗홀씨어터)
'보팔, Bophal(1984~)' 공연사진_숨을 쉬고 내뱉는 소리와 함께 1984년부터 2019년까지 연도를 되짚는 작업은 먹먹함을 더해주었다 /ⓒ박태양(제공=래빗홀씨어터)

유니온카바이드의 직원과 회장 뿐 아니라 의사와 자원봉사자, 사고조사 박사의 각자의 시선으로 ‘보팔 가스 누출 참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사고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페이크 다큐 형식을 취한 연극 <보팔, Bophal(1984~)>를 통해 아직도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인도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의도적인 무시와 답답함 속에 당사자가 납득할 수 없는 후속조치가 이어진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혜화동1번지 7기동인 [2019세월호]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고민해야 할 사회적 참사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답답함과 무력감에 대한 치유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당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많은 이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짧은 공연 기간으로 더 많은 관객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은 연극 <보팔, Bophal(1984~)>을 더 많은 이들이 함께 기억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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