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 만에 첫 총파업을 예고했던 전국우정노동조합(우정노조)이 지난 7월 8일 파업 계획 철회를 선언했다. 우정노조와 우정사업본부(우정본부)의 노사갈등에 정부가 중재에 나서면서 노사정 합의를 이뤄냈다. 예고된 총파업 날짜를 하루 앞둔 극적인 합의였다.

우정노조는 이날 오후 4시 30분 광화문우체국 9층 회의실에서 총파업 여부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사항의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정부에서 내놓은 안을 수용했다"며 총파업 철회 의사를 밝혔다. 우정본부와 우정노조는 지난 7월 5일 4차 쟁의조정 결렬 이후 이날 오전까지 물밑 협상을 벌인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

■ 총파업 결정도 극적 합의도 '인력 증원'에 초점

 앞서 우정노조는 집배인력 2,000명 증원 및 토요택배 중단을 요구하며 7월 9일 총파업 돌입을 예고했다. 해당 요구는 지난해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권고한 사항이자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었다.

연이은 집배원의 과로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지난 2017년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우정사업본부ㆍ우정노조 및 집배노조ㆍ민간전문가로 구성된 기획추진단이 출범했고, 추진단은 이듬해 집배원 과로사 해결을 위해 2,000명 정규직 집배원 증원과 토요 근무 폐지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우정본부와 우정노조도 지난해 5월 긴급노사협의회를 통해 ▲집배원 토요배달 폐지 ▲부족한 집배인력 증원 등에 합의했다. 이제까지 노사합의대로라면 올해 1,000명의 집배 인력이 충원되고 7월 1일부터 토요배달이 전면 폐지됐어야 했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지난 4월부터 총 7차례 실무교섭 및 본교섭에도 합의 이행을 약속받지 못한 노조는 6월 11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하고 총파업을 예고했다. 조합원의 94%가 참가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파업찬성표가 92.87%로 나오면서 파업 진행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총파업을 코앞에 두고 당면한 '물류 대란' 부담이 노사정을 한발씩 양보하게 했다. 정부는 당초 제시한 집배 증원인력을 500명에서 막판에 980여 명으로 늘렸다. 노조도 토요배달 폐지 주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점진적 폐지'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최종 타결안은 크게 ▲ 위탁택배원 750명 증원 ▲타 직군 238명 정원 회수로 경인지역 신도시에 집배원 증원 ▲토요 업무 농어촌부터 점진 폐지 ▲우체국예금 수익금 국고 전환을 금지해 우편 사업에 활용으로 가닥이 잡혔다.

극적 타결로 당장 시급한 집배원 과로 문제에 수혈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은 지난 7월 8일 기자회견에서 "합의 안건이 빠른 시일 내에 정착이 돼서 현장에 인원이 배정되면 이전보다 과로사가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집배노조 파업 철회에 반발…"교섭권 반납하라"

한편 이번 노사 합의에 대해 당초 우정노조가 주장했던 집배인력 2000명 증원과 토요배달 폐지안에서 지나치게 후퇴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철홍 인천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파업 여부는 노조의 결정사항이긴 하지만 (합의사항을 보면) 노동 조건이 개선된 게 없다. 집배원 과로가 계속 반복될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연이은 집배원 과로사로 인한 심각성이 밝혀지면서 유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국민 지지도 받았다. 명분이 확실하고 국민들이 힘을 실어줬는데도 파업이 무산됐다. 집배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핵심 사항이 합의에 담겨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집배원 과로 문제가 반복되면 누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할지 염려 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파업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임금이나 이런 게 아니라 집배원들의 생명과 관련됐다. 올해 상반기에만 9명의 집배원이 과로로 사망했다. 이번 사태가 파업 철회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후속적인 영향이 클 것이라고 본다. 집배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했던 방향이 힘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누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건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국집배노동조합원들이 지난 7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인근 도로에서 노동조건 개선 촉구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내 소수노조인 전국집배노조도 즉각 반발에 나섰다. 집배노조는 합의 당일 성명을 통해 "93% 파업찬성률, 전국민의 파업지지 여론, 교섭참여노조들의 공동투쟁결의까지 모든 조건이 갖춰졌지만 우정노조 지도부만 파업준비가 없었다. 우정노조의 빈약한 전술을 파악한 사용자는 졸속안을 제시했고 준비가 안 된 지도부는 끌려다니며 합의를 해 준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집배노조는 노사 합의사항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위탁택배기사 750명 증원안에 대해서는 "일반우편, 등기, 택배를 모두 담당하는 집배원과 택배만 배달하는 위탁택배기사의 업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대안"이라며 "이미 2018년 5월 2일 긴급우정노사협의로 위탁택배기사 1,000명 증원을 시행했지만 집배원 노동조건 나아지지 않았으며 올해 9명 집배원 사망이 이를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예금 이익잉여금 정부 일반회계 전출 금지안에 대해서도 "이미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에서 우편특별회계로의 이익잉여금 보전이 가능"하다며 "새로운 법안이 아니라 이미 시행하고 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집배노조는 "우정노조의 교섭대표노조권 박탈만이 우정노동자들을 살릴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며 "공정대표의무위반 시정신청-대대적인 교대노조 탈퇴운동 등을 나갈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 우정노조 "정부안 이상 나올 게 없다" 판단

7월 8일 오전으로 예정됐던 결과 발표가 이날 오후로 미뤄진 것도 노조 안팎의 반발을 감안해 논의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정노조는 파업 철회에 대한 내부 반대를 고려했지만, 파업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정부 제시안 이상의 결과는 끌어낼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동호 위원장은 <노동법률>과의 통화에서 "정부에서 처음에는 500명 증원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너무 부당하다고 하자 마지막에 250명 더 증원하겠다고 했다. 이 750명 증원까지는 청와대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에서도 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노력했고 더 이상은 나올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합의와 관련해 지방본부위원장들도 찬반이 갈렸다. 하지만 이낙연 총리도 집배원 과로사와 관련해 확실하게 제도 개선을 약속했고, 파업으로 발생할 국민 불편 등 여러 사항을 논의해서 파업 철회 결정을 내렸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번 합의안 시행으로) 장시간 근무도 개선될 거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합의한 사항을 이행해서 물량이 주는지 확인하고, 완전한 주5일 근무 정착에 문제는 없는지, 6개월 정도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비록 파업은 철회했지만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노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우정노조는 파업 철회 발표 당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집배원 죽음을 막아라! 노동자 안전과 지속 가능한 우편사업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고, 다음날 9일에는 '한국노총-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집배원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정규 인력 증원을 촉구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민주당 지도부는 집배원 인력증원 예산 반영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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