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보물섬이다...아름다운 섬, 독도

사진출처/동북아역사재단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독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동해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89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뱃길로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동도(73,297m2)와 서도(88,740m2) 2개의 바위섬과 89개의 부속도서(25,517m2)로 이뤄져 있다. 동도의 최고봉이 98.6m로 정상에 비교적 평탄한 부분이 있고, 서도는 최고봉이 168.5m로 산정이 뾰족한 원뿔형이다. 동.서도 간의 폭은 저조사를 기준으로 151m이고, 해안선은 약 5.4km 정도 된다. 전체 면적은 187,554m2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국유지로, 독도의 관리청은 국토해양부이고, 현재 울릉도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독도는 46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울릉도(250만 년)나 제주도(120만 년)보다 훨씬 더 오래된 화산섬이다. 이 화산섬을 독도(獨島)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종 18년(서기 1881년)때부터이다. 조선왕조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쇄환정책(刷還政策)을 종료함으로써 울릉도에 입주하게 된 주민들이 처음에는 ‘돌섬’이라고 했다가 ‘독섬’으로 변했고, 이 ‘독섬’을 발음 중심으로 한자 표기 할 대는 ‘獨島(독도)’라 표시하고 뜻 중심으로 한자 표기할 때는 ‘石島(석도)’라고 표기했다.

# 독도는 언제부터 한국 땅이 되었을까?

독도가 한국 땅인 것은 명백한 사실로 한국의 많은 역사서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일본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이제 우리가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에 역사적 사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가 된 것은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년)에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를 완전히 굴복시킨 이후부터로, 이사부 장군은 배에다 사자 목각을 만들어서 울릉도에 사는 주민들에게 “너희가 항복하지 않으면 이 섬에 사자를 풀어 너히를 잡아먹게 할 것이다. 사자 밥이 되기 싫거든 항복하라”고 외치자, 울릉도 섬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 항복했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울릉도와 독도를 점령해 현재까지 실효지배하면서 관리 해오고 있다, 즉, 1,500년 전인 삼국시대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가 지키고 관리해온 우리의 영토임에도 일본 어부들이 몰래 와서 고기를 잡아가곤 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년) 여름에 우산국(于山國, 현재의 울릉도)에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곤 했다. 그곳 사람들이 이를 믿고 신라에 복종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의종 때 김유립이 울릉도를 현지 답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지리지(地理志)에는 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凌島) 본래 두 섬으로 서로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볼 수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우산도(于山島)와 무릉(武凌) 두 섬이 현의 정동(正東)바다에 있다. 두 섬의 거리가 서로 멀지 않으며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 했다.

위의 삼국사기와 고려사, 지리지,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독도는 신라시대부터 우리의 영토로 편입됐음을 알 수 있고, 또한 우산국은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가리킨다고 분명히 밝혀 두고 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의하면, 영의정이던 남구만(南九萬)은 숙종 15년 희빈 장씨 소생인 균(均)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다가 망상동 약천마을로 1년여간 유배돼 권농가 시조를 남겼다. 학식이 깊고 고매한 인격의 정치인이던 남구만은 ‘울릉도와 독도 지키기’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 임금인 숙종이 우리 땅 지키기에 적극 나서도록 했다.

특히 숙종 20년(1694년)엔 “삼척 첨사를 보내 울릉도 등지의 현황을 살펴보도록 하는 한편 주민들을 이주시키거나 진을 설치토록 해 달라”는 국토 수호 대책을 건의했고, 이에 숙종은 장한상(張漢相)을 삼척첨사로 삼아 울릉도 등지를 관리, 주민들이 왜적들의 해적행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숙종 22년(1696년)엔 울릉도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던 안용복이 사사로이 국제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되자 선처를 호소, 극형을 면하게 하기도 했다.

일본 군도에서 158km나 떨어져 있는 독도는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볼 수도 없는 섬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독도에 대한 욕심을멈추지 않고 있다.

한편, 일본은 스스로도 울릉도와 독도는 한국의 영토임을 자인(自認)하고 있다. 이 사실은 일본 정부가 1693년에 작성한 1차 서계(書契)를 통해 확인 할 수 있고, 이어 1696년에도 안용복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한국의 영토가 맞다’고 인정한 역사적 사살이 있다./자료 출처=‘독도는 보물섬이다’ - 다음호에 계속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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