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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비화] 소리없이 강한남자 부산 챔피언 체육관 최진석 관장
  • 조영섭 기자
  • 승인 2019.07.25 12:10
  • 수정 2019.07.25 12:10
  • 댓글 4
동양 챔피언 유종훈과 최진식 관장(우측)

이순(耳順)이  눈앞에 다가와서 그럴까 세월이란 녀석은 고장도 안나고 탈도 안나고 잘도 굴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시간은 청개구리 같다. 빨리 가라면 천천히 가고 천천히 가라면 빨리간다.

그런 세월과 시간속에 묻혀 89년 만26세에 복싱 울타리에서 첫발을 내딛은 후 30년을 훌쩍 넘긴 날들을 외길을 걸으면서 보고 느낀 감흥과 소회를 비망록처럼 작성 연재하고 있다.

생각컨데 1392년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포은 정몽주선생을 자객(刺客) 조영규를 시켜 살해할 때 이방원이 26세 포은이 56세 였음을 상기시켜보면 30년이란 세월이 그리 짧지 않은건 분명해 보인다.

오늘 비화의 주인공은 국가대표 출신도 아니고 챔피언 경력도 없는 평범한 복서 출신이지만, 지도자로서는 정상급 복서들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부산 챔피언 체육관 최진석 관장이다. 

최진석은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 곽재우장군의 탄생지인 경남 의령출신 이다. 최진석은 17세 때인 76년 부산에서 광무체육관 주종찬관장 문하에서 복싱을 수련 86년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전국체전과 대통령배등에 부산대표로 출전한 베테랑 복서 출신이다.

그는 부산대표 선발전에서 79년 제60회 전국체전 은메달리스트이자 후에 프로로 돌아 IBF J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한 최진식과 다운을 주고받는 타격전 끝에 비록 판정에 고개를 숙였지만 손색없는 기량을 보유한 파이터였다.

최진석관장(좌측)과 장경재선수

선수생활 때 실력에 비해 화려한 족적은 남기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선 부산 경남 지역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발탁 조련하여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부산에서 10 여년간 선수생활 할 때 망중한(忙中閑)을 이용해 틈틈이  선배 지도자들의 장점을 분석 체크하면서 수필 식으로 기록을 해뒀는데, 이는 향후 지도자로써 새로운 길을 걸을 때 나침판 같은 역할을 했다고 피력했다.

부산복싱의 대부인 손영찬 선생에게는 강력한 카리스마 속에 선수들을 컨트롤 하는 탁월한 지도법을...
장정구 를 길러낸 이영래 사범에겐 세밀한 타격법을...
최점환을 조련한 김인겸 관장에게는 인성과 예절을...
김상현 베출한 이종언 트레이너 에게는 복부공격의 노하우를...
그리고 자신의 스승이자 김치복 이장수 이태동 장상기 등을 키워낸 주종찬 관장에게는 체력에 중점을 둔 스파르타 지도법을 체득하면서 그분들의 장점을 스펀치처럼 빨아들이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지도력을 창출해낸다.

마치 꿀벌이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는 꽃의 당분을 빨아들이면서 그것으로 자신만의  꿀로 재창조 하듯이 말이다. 이때 그 꽃의 꿀은 꽃의 것이 아니라 부지런한 꿀벌의 것임은 당연한 이치리라...

이런 지도력을 무기삼아 그는 부산 국일체와 광명체을 거쳐 진주상록체 에서 선수들을 가르킬 때 금강석(金剛石)처럼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90년도 아마츄어 전국대회 에서 강성준(동래상고)을 조련 후에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는 지인진(당곡고)을 꺽고 선수권을 차지하면서 기염을 토했다.

나도 당시 현장에서 한국체대 유종만교수와 함께 관전을 했는데 그의 기량은 한마디로 초고교급 수준이었다. 그가 우승을 차지하자 유종만교수가 러브콜을 보냈던 지난날이 문득 스쳐간다. 

95년 6월엔 32전 28승(12KO승)4패를 기록한 유종훈(68년.부산)이 종종 파킹(필)을 꺽고 동양 J웰터급 챔피언에 올라 소중한 타이틀을 6차방어를 성공시킬 때 전담 트레이너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유종훈선수를 지도하는 최진석 관장

특히 유종훈은 김종길 윤석현 박순배 송성운등 과 7차례 라이벌전을 펼쳐 6승1패를 기록할 정도로 퀄리티가 높은 복서였다. 탄력을 받은 최진석은 96년 88체육관 유망주 박성구를 4회 KO승을 거두고 국내 J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한 용흥남을 비롯해 강병인 김영수 김덕수 이은식 강기동 등 부산.경남 베테랑복서들이 그의 미더스 손을거쳐 명품으로 재탄생하는데 산파(産婆)역을  담당했다.

또한 그의 제자중에 빼놓을수 없는분이 부산예술대 이벤트 예술과 교수를 지낸 최영곤(59년.김해)이다  그는 97년 신인왕전에 출전해 준결에서 탈락하자 98년 재차 도전 결승까지 올랐고, 2004년 45살의 나이에 한국 웰터급 타이틀에 도전, 21살이나 어린 몽골용병 바이라선수와 대결 기력이 소진되어 6회 KO 당할때까지 굴치않고 버티었던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최진석(좌측)관장과 최영곤 의원

1년후 링에 컴백 2005년 윤병경과 맞대결을 펼쳐 1회 라이트 카운터펀치를 날려 KO승을 거두고 46세 22일의 최고령 KO승을 기록한 독특한 이력의 복서로 알려진 복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최영곤의 부산대 재학시절 그의 담당교수가 바로 70년 방콕아시안게임 미들급 국가대표인 서울대 출신의 조원민(작고)교수였다는 사실이다. 

과거 해운대구 구의원으로 활동했을 때  부산 복싱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던 그를  향해 최진석은 자기 복싱 역사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복서였다고 소회를 밝히면서 그가 청소년들에게 할수있다는 자신감을 웅변 (雄辯) 으로 심어준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증(實證)해 보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진석은 복싱계의 마당발이다. 부산에 경기가 있어 참관할 때면 귀한 복서들을 인사시켜주곤 하는데 장경재 란 복서 역시 82년 부산 협성실고 시절 김명복 박사배에서 국가대표 오광수(전남체고)를 RSC로 꺽고 우승과 함께 최우수상을 받은 복서였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또한 최진석은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은 지금의 아내를 91년도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결혼과 함께 남편을 뒷바라지 하면서 옷가계, 주점, 여관등 을 운영하면서 남편의 적은 월급을 알뜰 살뜰모아 30년이 지난 지금은 45평 자택 이외에 자그마한 집 3채를 마련, 200만원의 임대수익을 올리면서 풍족하진 않더라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평강공주같이 내조를 잘하는 아내를 최진식은 만난 것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여자는 어린애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어린애로 만들기위해서 존재한다고...
언젠가 최진식 선배에게 형은 도박같은 결혼에서 그는 "로또를 맞은 행운아"라고 말하자 박장대소하며 "니말이 맞데이" 라고 말한다.

최진석과 아내 김지연 여사

사실 결혼은 2인 3각 같은 것이다. 서로 돕지만 그 때문에 비틀거리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다. 복싱계에서 종사하다보면 세계챔피언에 당첨(?)되어도 돈을 관리 하지못하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복서뿐만 아니라 엘리트체육에서 종사하는 대부분 체육인이 은퇴하고 사회에 나오면 초보 운전자와 같다. 멀리 보지못하고 눈앞만 보기에 낭패를 보기 쉽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달았을때는 일생은 이미 지나간 뒤다. 자신만의 전공과목인 복싱을 벗어나면 새로운 신천지에선 컨설팅 (consulting) 해줄수 있는 내조자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

은퇴한 챔피언들에게 매달 일정액의 연금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나훈아 같은 유명가수처럼 한달에 저작권료가 수천만 원씩 나오는것도 아니기에 큰부자는 아니지만 복싱계에서 넘치지도 모자라지않게 살면서 복싱계에 종사하는 최진식 관장이 더욱더 돋보인다. 그에 행운을 빈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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