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있어야 내가 있다.

적을 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없애려는 생각은 생각이 짧아도 아주 짧은 사람의 행동방식이다. 권모술수(權謀術數)를 노련하게 운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적조차도 필요한 존재로 남겨놓고 이용한다.

이정랑 중국고전연구가

‘전국책’ ’한책(韓策)‘에는 이런 얘기가 실려 있다. 한(韓)나라 재상 공숙(公叔)과 한나라 왕이 아끼는 아들 궤슬(几瑟)은 권력을 놓고 늘 서로 대립했다. 이 정쟁은 결과적으로 궤슬이 국외로 망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공숙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궤슬이 망명하기 전에 자객을 보내 궤슬을 암살하려 했다. 그러나 측근 하나가 말리고 나섰다.

“그러지 마십시오. 태자 백영(伯嬰)은 재상을 매우 주목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궤슬이라는 존재 때문입니다. 궤슬을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재상께서 중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궤슬이 죽는다면 재상이 표적이될 것이 분명합니다. 궤슬이 존재해야만 태자도 어쩔 수 없이 재상의 역할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적의 존재 가치를 말해주는 이 대목은 적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적’은 어쨌거나 좋을 것이 없다. 그러나 상대의 작용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냉정히 따져보고 난 후 힘의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책략을 생동감 있게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

절대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실수를 방지하는 경계 신호로 작용할 수도 있고, 어떤 유용한 목표가 될 수도 있으며, 자기 진영의 단결을 다지는 모종의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서는 실수와 사고를 해명하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 그 이해득실은 간단하게 논할 성질의 것이 못 된다. 역사상 일부 정치 책략가들은 정치적 필요성에서 고의로 반대파를 남겨놓곤 했는데, 그 책략이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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