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왜(矮)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홰란(壬辰倭亂)을 일으킨 지 427년 만에, 또다시 2019년 왜의 아베신지가 제 2의 왜란(倭亂)을 일으켰습니다. 어제 라디오에서 한 야당 의원이 대담(對談)을 통해 “일본이 없으면 살아 갈 수 없다”는 망언(妄言)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일본 없이는 살아 갈 수 없을까요?

아마 우리 국민치고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 있어서 그야말로 극한적인 열악한 환경의 위기에 몰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불굴의 신념으로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정신력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는 위대한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장군의 위대한 정신력은 바로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명량대첩에서 극명하게 들어납니다. 1597년 9월에 벌어진 이 명량대첩에서 13척의 배를 인계받아, 그 10배에 해당하는 133척의 왜적 선을 상대로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는 기적 같은 승전을 나라에 안겨주었습니다.

이처럼 불가능 해 보이는 전투에서 장군이 승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이순신이 명량대첩에 참전하기 전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라는 유명한 말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말은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뜻이지요.

충무공이 남긴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이 말은, 바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장군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당시 장군에게 승전의 길이 전혀 없는 비참한 상황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길이 없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에서 철저히 자기 자신을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이처럼 ‘필사즉생, 필생사즉’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닐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합해지면, 개개인의 죽음이 곧 전체의 죽음과 같은 개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즉, 이 말은 부분과 전체가 하나 같이 죽음의 의미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군에게는 죽음의 두려움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순신은 바로 이 점을 깨닫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군대조직화의 힘으로 승화시켜 간 것입니다. 이순신은 이처럼 생사가 본래 하나이며, 또한 국가와 내가 하나임을 그대로 그의 삶을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입니다.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입니다. 두드리면 반드시 열릴 것이고, 열려면 반드시 두드려야합니다.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반드시 팥이 나옵니다. 싸워 보지도 않고 ‘일본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한 어느 야당의원의 말은 패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여간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닙니다.

지난 8월 5일자, 조선일보에는『한국당혁신위 꼰대⦁웰빙 이미지 벗자』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자유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가 혁신을 통해 당이 미래 정당, 청년 정당으로 가기 위해 꼰대, 기득권, 웰빙 정당 이미지부터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특위는 한국당을 혁신하기 위한 ‘3대 비전’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세부과제’를 담은 45쪽짜리 혁신안(案)을 마련해 지도부에 보고했다고 밝혔습니다.

혁신안에 따르면, 특위는 우선 한국당의 3대 비전을 첫째, 국민과 함께(People), 둘째, 경제를 세우고 정책으로 강한(Policy), 셋째, 열린 정당⦁인재 정당⦁미래 정당(Process) 등, 이른바 ‘3P’로 제시했습니다. 또 투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웰 빙 정당, 강남 우파 이미지 탈피’가 선행돼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내 화합⦁통합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계파적 분열주의를 배격하고 싸움질하는 정당 이미지를 타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특별위의 혁신안이 성공하리라고 믿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내용이 구태의연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아무래도 ‘필사즉생 필사 즉사’의 정신과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각오가 결여되어 보이는 탓이 아닐까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금언(金言)을 남긴 백장 회해(百丈 懷海 : 749~814) 스님이 스승 마조(馬祖)에게 물었습니다. “부처의 본뜻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이에 마조가 말합니다. “바로 자네의 목숨을 내던진 곳에 열반(涅槃)이 있다”고 답한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형식적으로 열반을 ‘사람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강한 야당이 있어야 나라가 삽니다. 지금처럼 사사건건 발목만 잡고 막말만 하는 정당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건강한 야당이 못 됩니다. 만약 한국당이 살길을 마조에게 물었다면 ‘목숨을 내 던진 곳에 열반’이 있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국가를 위해서도 진보를 위해서도 보수는 살아야 합니다. 보수가 살기위해서도 필연적으로 열반이 필요한 것입니다.

품격 있는 보수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도 자유한국당은 열반에 들어야합니다. 황교안 대표도 열반에 들어야 하고, 황교안 대표의 대선의 꿈도 열반에 들어야 하며, 당권장악의 의지도 열반에 들어야 합니다. 물론 ‘친 박’도 ‘비박’도 열반에 들어야 하지요.

그러면 보수의 절대가치는 무엇일까요? ‘자유와 민주주의’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과 시장의 자유를 통해서 인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닐 런지요!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재범 선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죽기 살기’로 했다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은메달을 땄고, 2012년엔 ‘죽기로’해서 금메달을 땄다」고 말이지요.

자유한국당의 청년혁신위원회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한국당 전원이 열반에 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먼저 누구보다도 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모든 국회의원부터 <필사즉생 필사즉생>의 충무공처럼 생사를 걸어야 합니다.

제 2의 왜란을 당해서 다시는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지 않으려면, 보수의 품격을 되찾고 여야가 합심 합력하여 싸워야 극일(克日)이 되지 않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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