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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고 투쟁하는 민족의 역량을 보여줄 때다
  • 무심지생
  • 승인 2019.08.07 00:46
  • 수정 2019.08.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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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봉쇄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보면서 우리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극일의 가장 강력한 방법과 투쟁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몰지각하고 반시장주의적 정책과 경제적 보복에 전 국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투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저력과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우리가 일본의 이런 퇴행적 정책과 오만한 작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서 한번 쯤 읽어볼 책이 있다. 일본에 대한 가장 통찰적이고 적확한 분석을 한 책 말이다. 바로 ‘국화와 칼’이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1887 ~ 1948)’가 지은 일본학 연구 도서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들의 정신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집필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30여 년 전에 읽었던 것 같다.

 

저자는 생애 단 한 번도 일본을 간 적이 없다. 오로지 자료와 문헌을 근거로 이 책을 지었다, 책 제목을 ‘국화와 칼’로 정한 것은 일왕의 상징이자 일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데서 정했고, 칼은 사무라이의 왜장도에서 땄다고 한다.
일본인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제목이다. 꽃을 가꾸고 그 향기를 좋아하는 부드러움과 왜장도의 잔인하고 침략적인 공격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중 성품의 민족이라는 뜻이다.

일본인의 이러한 이중적 성품은 어떻게 드러날까? 국화로 드러날 때와 칼로 드러날 때의 기준과 상황 말이다. 일본인의 친절성, 부드러움, 조신함, 겸손함과 반대로 공격성, 자살특공대(카미카제), 굴종, 노예근성은 어떤 상황에서 발현 되는지를 알면 그들의 경제정책과 정치적 편향성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책 또한 간명하고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일본인의 정신세계와 생활양식의 기저에는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명제가 있다. 바로 ‘각자(개개인)는 각자가 알맞은 위치와 자리를 가진다(지킨다)’라는 것이다. 이 명제는 일왕과 사무라이, 그리고 평민과 천민들과의 관계를 가장 안정적이고 확실하게 규정하는 신앙(신도 정신)이자 생사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삶의 규율이라는 뜻이다. 즉 경계선을 넘지 말고 자신의 분수를 알고 살아라. 라는 뜻이다.

일본인의 삶은 일왕과 막부(幕府,바쿠후)시대의 장군(將軍,쇼군),그리고 명치유신(明治維新, 메이지 이신)이 지배하고 통제해 온 역사다. 그들에게서 일왕은 다른 나라의 왕들과 다르다고 믿고 있다. 일왕은 곧 신이라는 ‘신도 사상’과 일본 왕실의 혈통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만세일계(万世一系)’사상이다. 민주적 관점에서 보면 더 황당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일본제국헌법의 제1조 1항에도 만세일계라는 용어를 기술하여 법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두 가지 사상이 일본의 강점이자 가장 취약한 단점이다. 일본은 사무라이가 쿠데타(무사혁명)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해도 절대로 일왕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왕조는 계속 단일 왕조로 이어진다. 반대로 일왕이 항복을 하면 모든 조직은 따라야 한다. 바로 세계 2차 대전 때(1945년 8월 14일) 일왕(쇼와 덴노)의 항복 선언이다.

‘각자(개개인)는 각자가 알맞은 위치와 자리를 가진다(지킨다)’라는 이 명제는 왕이 항복하면 모든 조직과 신하들은 무조건 항복한다. 즉 ‘대가리’가 굴복하면 ‘졸개’는 무조건 무릎을 꿇는다. 라는 의식이 일본인의 삶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일본과의 투쟁은, 전쟁은, 싸움은 바로 이 ‘대가리’를 꺾는데 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일본과 정반대다. 우리는 왕조도 민심의 향배에 의해 새로운 왕조를 허용했다. 왜놈의 침공에 왕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고 지방의 관찰사가 도주를 해도 항복하지 않는 민족이다. 민초들이 자력으로 의병을 만들어 죽기를 각오하고 저항하고 투쟁하는 민족이다. 2016년 촛불 혁명 또한 마찬 가지다. ‘대가리’하고 관계없이 민초들은 스스로 강해지고 국난을 극복해 가는 결기가 있다는 말이다.

국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외 정책의 핵심은 ‘각 나라는 각 나라의 알맞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라는 논리다. 바로 하국(下國)이 상국(上國)에게 대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평화와 상호국의 우애와 협력은 각국이 자기 분수를 알고 제 위치에서 머리를 조아릴 때라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을 상국으로, 자국은 2국으로, 중국은 3국으로, 한국은 4국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의 이런 정책을 한 방에 박살내는 길은 ‘각자(개개인)는 각자가 알맞은 위치와 자리를 가진다(지킨다)’라는 이 명제를 역 이용하는 것이다. 이번 ‘강제징집 배상판결’에 대한 ‘경제 봉쇄’ 또한 이 개념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은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만 해결 된다. 협상, 조율, 타협이라는 정책과 조언은 참고 사항일 뿐이다. 본질은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위치와 자리를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단호하고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는 이상 일본은 절대 우리나라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국(下國)으로만 본다. 또는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 정도로 말이다.

일본은 늘 말한다. 미국에 진 것이지 중국과 한국에 진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여 그들은 미국이라면 ‘스미마셍(すみません 죄송합니다)’과 ‘아리까또(ありがとう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진심과 정성과 흠모의 대상으로 말이다. 그 외 국가나 국민들에게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인사일 뿐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통해 일본의 대가리를 꺾어야 한다. 그 대가리는 일본왕이나 국민이 아니다. 바로 ‘아베’다. ‘아베’에게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아베’를 꺾으면 나머지 모든 조직과 국민들은 손을 들게 되어 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삶의 본질이다.

친일매국매판당과 토착왜구 교수, 종교인, 경제인, 문화인과 그 추종자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역량과 강한 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친일 잔재세력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가 무릎을 꿇기를 요구하고 압박한다. 이들 극우친일 보수 세력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후퇴하면 영원히 일본의 하국(下國)으로 살아가야 한다. 전 국민의 힘과 지혜를 모아 결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집단폭행(이지메)에 굴복하면 노예가 된다. 박살나더라도 싸워야 한다. ‘대가리’ 한 놈만 패면 된다. 그래야만 이 싸움은 끝이 나고 다시는 엉뚱한 짓은 하지 못한다.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고 투쟁하는 민족의 역량을 보여줄 때다.

負けました 젔습니다.
負けました 졌습니다.
負けました 졌습니다.를 삼창 할 때 까지....

무심지생  online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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