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은 사람이나 사물에서 엿보이는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韻致)?

노인의 멋

멋이란 무엇일까요? 멋은 보통 옷이나 얼굴 따위의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맵시를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멋은 그처럼 겉치레에 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멋은 사람이나 사물에서 엿보이는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韻致)을 말하지 않을까요?

멋이란 말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히 쓰이면서도 매우 소중한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멋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 쓰임새가 천층만층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멋있어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기도 하지요.

보통 ‘멋’하면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남성들이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노인이나 병약자에게 서슴없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젊은이들에게서 쉽사리 보지 못하던 멋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보석을 감상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아마 그 광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년의 멋스러움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년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미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하기만 했지 찾아오는 노년에 대하여 멋스럽게 맞이할 생각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노년의 멋이란 외모에서 풍기는 것보다 정신적인 면까지 함께 조화를 이룰 때,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한적한 오솔길을 걸으며 한 송이 꽃에도 감사하고 감동 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 노년의 멋스러움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노년은 생각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길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여정(旅程) 중에서 마음을 비우며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나이이기 때문이지요. 노년엔 욕심을 좀 더 멀리서 남의 것처럼 바라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담담(淡淡)한 마음으로 삶의 여백(餘白)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떠난 자리에 사랑과 너그러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의 잘못은 보이지 않고 잘한 것 만 보여서 얼마나 좋은가요?

늙으면 모든 것이 점점 더 아름답게 보여 집니다. 가지고 싶은 마음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저주의 마음은 사라지고,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좋습니다. 그리고 원망생활은 사라지고 감사생활로 돌려서 아주 기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탈까 걱정하지 않고 있는 대로 먹고, 있는 대로 입으며, 아무 차나 타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서 좋습니다.

더군다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도 아쉬움이 남지 않아서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텅 빈 마음을 여백으로 채우고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는 노년의 멋을 만끽 할 수 있어 참으로 좋습니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은 정말 멋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내일에 속으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세월을 잡으려고 가까이 가면 저만큼 달아나 버리는 신기루(蜃氣樓)와 같은 내일에 많은 기대를 놓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오늘 살아야 할 삶을 내일로 미루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내일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오늘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오늘과 내일 모두를 망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멋이란 말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멋있어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멋의 본질 가운데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 런지요.

이런 노년의 멋을 아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엷은 미소로, 때로는 처연(悽然)한 비장함으로, 그리고 때로는 진한 감동으로 우리 가슴에 다가옵니다. 그 아름다움이 어디서 오는지 한 번 살펴봅니다.

첫째, 노인은 남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둘째, 노인은 곧고 위엄이 있어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셋째, 노인은 도량이 넓고 관용적이어서 늘 포근하고 인정이 넘쳐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넷째, 노인은 정직하고 소탈해서 욕심이 없어 늘 당당하고 의연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다섯째, 노인은 기지가 뛰어나고 지혜로워 고난을 극복할 수 있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전에는 노인을 어른으로 대우했고 또는 경험이 많은 스승으로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세상이 변하여 노인을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존재로 취급당하는 것은 노인들이 이 다섯 가지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인의 멋은 기품(氣稟)이요 성찰입니다. 성찰 또는 반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깊은 어른이 젊은이들에게 물려주는 아름다운 유산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제각각 ‘세 개의 나’를 지니고 산다고 합니다. 하나는 내가 나를 보는 나이고, 둘은 남이 나를 보는 나이며, 셋은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차이입니다.

그 사이에 끼인 보이지 않는 삶의 방법에 따라 이 ‘세 개의 나’가 크게 다르고 그 사람의 인격과 형성을 좌우하게 됩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늙어 감에 따라 외모도 가꾸고 내면도 닦아 품위를 키우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인이 되면 자연주의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 몸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내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늙게 되어 있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준비의 일환으로 우리 부부는 지난 8월 6일 ‘일산병원’에 가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고 등록을 마쳤습니다.

만약 우리의 여생에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야 자식들도 당황하지 않고 노년의 석양(夕陽) 빛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방편(方便)인 것입니다. 우리 죽음까지도 ‘노인의 멋’으로 황홀하게 장식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8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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