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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난, ‘봉오동’의 추억, 승전 혹은 학살
  •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 승인 2019.08.20 11:08
  • 수정 2019.08.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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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는 주제의식이 선명함에도 그 주제의식에 걸맞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내가 보기엔 한참 수준이 떨어진다.

사진: 영화사 롯데 시네마 갈무리

왜군 병사들이 줄곧 빳빳한 정복을 입고 뛰어다니질 않나, 산속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는 전투 장면은 참으로 어색했다. 특히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장에서 칼을 들고 뛰어다니며 10여 명을 베어 넘기는 장면은 전쟁영화가 아니라 무협영화를 연상케 했다. 등장인물들이 맺는 인간관계의 개연성도 별 설득력이 없다. 단편적이다.

사실 나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통쾌하게 왜군 대부대를 무찌르는 장면 보다 왜군 선발대가 조선인 마을을 습격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봉오동전투 전에 왜군이 작전 상 조선인 마을 한 두 곳을 살륙한 정도가 아니라 패전 후 약이 오른 왜군이 만주 전역의 조선인 마을을 습격해 죽이고 태워 완전한 폐허로 만든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것이 관동군의 핵심 ‘조선독립군 토벌 전략’이 됐고 40년대 그 작전 수행은 당연히 백선엽, 박정희의 ‘간도특설대’가 맡았다.

해방 후 국군으로 군복을 갈아입은 관동군 출신들이 해방공간에서 제주도 중산간을 초토화 시키면서 남녀노소 갓난아이 가릴 것 없이 3만 명의 무고한 도민들을 학살했고, 전쟁 중에는 백선엽에 의해 ‘청야작전’으로 이름 붙여져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에 동원됐다. ‘거창 민간인학살사건’ 같은 끔찍한 참극이 벌어진 역사적 맥락이다.

그 뿐인가. 민간인 학살의 추억은 70년대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에 연면히 승계됐으며 끝내 80년 광주 학살사건의 핵심에까지 어른거리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군국주의 부활을 분명히 하며 한국에 경제 침략을 감행하고 있는 아베는 만주국 고위 관료를 지냈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그런 아베를 옹호하며 자기 정부에 대해 무릎을 꿇으라고 아우성치는 자들은 누구인가.

만주에서 죄없는 조선인들이 죽어나가던 식민지 시절, 일제에 빌붙어 알량한 권세와 부를 누리던 자들의 후예, 일제를 찬양했던 신문들의 후예, ‘간도특설대’의 임무를 앞장서 떠맡았던 군인을 아직도 추앙하는 세력들 아닌가.

이것이 봉오동 이후 백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이다.
백선엽은 아직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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