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권 논설위원장 · 문화경영 컨설턴트

불어에 '앵프라맹스'(inframince)라는 말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차이지만 근본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차이'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그 어떤 장대한 계획이나 정책에 앞서 작은 미덕이라도 국민성이 되게 하는 그런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

미래를 위해 작은 것 1%라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쏟으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개인도 1%만 바뀌어도 인생이 달리지고 사회가 1%만 달라져도 선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 1%의 노력과 열정과 헌신이 나비효과를 내어 100%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1%의 위력은 대단하다. 바로 앵프라맹스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그 1%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존중'과 '이해'와 '배려'다. 이 절실한 세 가지 요소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성'이다. 어느 한쪽만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해서는 진정한 의미가 없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일방적인 존중, 이해, 배려를 부지불식간에 강조하는 사회적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스스로는 실천을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그러한 덕목을 요구하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

곧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에 앞서 내 것이 옳다'라는 자기중심의 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단적으로 다양한 토론들을 지켜보면 오로지 자기 주장과 논리만 내세울 뿐 존중과 이해와 배려의 요소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상치되는 의견에서 일치점이나 합의점을 도출해 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것은 한국의 문화가 수직적인 구조를 띠고 있어서다. 전래적으로 봉건적인 풍토에다 유교적인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보니 좌우 수평적인 개념보다 상하 수직적인 인식의 패턴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느 외국 학자가 지적했듯이 우리 언어가 갖는 수직적 속성에서 그런 문화가 배태되었는지도 모른다. 언어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문화는 언어를 반영하게 되어 있다. 선진문화권일수록 상대적으로 수평적 언어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사람들처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시쳇말로 "민증을 까자"고 해서 나이 차이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호칭부터 달라지고 사회적 위계가 바로 설정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벌써 언어관습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수직적 서열이 정해져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구도 속에서는 생태적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존중이 일방향성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존중의 사전적 의미인 '높여서 귀중하게 대하는 것'을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여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리스펙트'의 저자 데보라 노빌은 존중을 "다른 사람의 가치와 고유성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존중하는 문화가 경쟁력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의 소통양식일 것이다.

한국사회 구조에서 수직적 존대의 편향은 진정한 성공이 아닌 권위주의적 출세관을 형성시켰다. 곧 재력, 권력, 명예를 기준으로 암묵적으로 사회적 위계질서가 생겼다. 그런 문화로 인해 상호간의 관계가 설정되면서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도 고착됐다.

이제 선진사회가 되려면 이러한 사회문화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존중과 배려의 덕목이 사회적 가치가 되는 문화를 창출해내야 한다. 그것이 또한 개인의 성공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아진다한들 참다운 선진사회가 되기는 쉽지 않다.

각자 인생에서 외형적인 출세가 아닌 진정한 성공을 이루려면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그 존중이 내게도 돌아오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적 바탕에서 상호 존중 문화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상호 존중이란 서로가 대등한 입장에서 수평적인 의식구조와 사회적 의례가 선행돼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치들을 국민들이 실천을 통해 내재화시켜 우리사회 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앵프라맹스가 발현되어야 한다. 조선 중종 때 유학자 박세무는 그가 지은 '동몽선습'(童蒙先習) 서문에서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가운데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 最貴)라고 했다. 이 정신은 바로 상호 존중과 배려를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아인슈타인은 존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대학교 총장이든 청소부이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말한다." 대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경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사회에서 지도자일수록 낮아져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이제 크게는 국민이 지도자를 존경하고 또 지도자가 국민을 존중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회가 될 때 진정한 선진국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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