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구'를 함께 만든 사람들_안소영 티켓담당, 이명진 조명디자이너, 희문(박희민), 만영(박신후), 노인(신현종), 김주연 드라마터그, 이은준 연출, 연호(이철희), 최찬엽 기획, 정섭(원춘규), 이현직 조명오퍼레이터,  권혁 배우, 요석(강진휘), 찰랑(이상숙), 노파(전국향), 영원(성노진), 박민수 음악디자이너,  조호동 음향오퍼레이터, 김병건 소품디자이너, 상균(심원석) /ⓒ권애진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현대 사회 속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는 ‘함께 하자’라는 말뜻에 담긴 이면(裏面)을 살펴보는 작품 <율구(燏區)-몽유도원(이하 ‘율구’)>가 지난 22일부터 9월 1일까지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작년의 아쉬운 공연에 이어 다시 한 번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두메산골 건설현장, 집주인 요석과 그의 애인 찰랑은 사랑의 집짓기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다. 장애를 가진 연호를 데리고,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인 영원은 공사대금 지연 문제로 일어난 인부들과 집주인 사이의 갈등을 중재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갖은 오해와 조롱, 멸시를 받을 뿐이고, 건설현장에 나타난 인근 노부부도 훼방 놓기와 싸움벌이기 일쑤다. 각자의 권리와 목소리를 키우는 와중에 영원과 연호는 언제나 함께 가자는 집주인 요석의 편에 서게 되고, 인부들은 커다란 망치를 들고 집을 부수러 찾아오는데....

'율구' 공연사진__요석(강진휘), 찰랑(이상숙) | 사랑의 집짓기 공사에 한창인 두 사람 /ⓒ권애진
'율구' 공연사진_노인(신현종), 노파(전국향) | 공사현장의 인근에 사는 노부부, 그들은 함께 살지만 함께 있지 못할는지도 /ⓒ권애진
'율구' 공연사진_연우(이철희), 영원(성노진) | 아들과 함께이고픈 아버지... /ⓒ권애진
'율구' 공연사진_노파(전국향), 상균(심원석) | 조금 아픈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노파건만...아무도 노파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지도... /ⓒ권애진
'율구' 공연사진_정섭(원춘규), 연우(이철희), 희문(박희민), 영원(성노진), 만영(박신후) |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그들이지만... /ⓒ권애진
'율구' 공연사진_노파(전국향) | 노파는...누굴 위해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내 온 것일까... /ⓒ권애진

‘초상, 화(畵)’로 제13회 대산 대학문학상 희곡 부문을 수상한 고정민 작가의 앵콜작 <율구>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며 작품의 배경을 전했다. “그 땐 이해되지 않았던 낯선 풍경들이, 그 아저씨가 내뱉던 이상한 말소리가 어쩌면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시간 속에 있던 한 사람이 혼자서 느꼈을 외로움과 괴로움, 우울함을 견디기 위해 찾아낸 자신만의 마지막 방법이 아니었는지” 그런 시간 속에서 고정민 작가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 덜 보이고 솔직할 수 있었던 작업이었고, 작가의 일은 말(대사)을 쓰는 게 아니라 암전일 때 행간을 읽어내는 이야기라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였다.

2018년 제55회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극단 파수꾼의 든든한 기둥 이은준 연출은 2014년 극단 파수꾼 창단 이후 ‘속살’, ‘정의의 사람들’, ‘괴벨스 극장’등의 작품을 통해 더욱 선명하고 명확한 자기 색깔과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을 중요시 생각하는 이은준 연출은 이번 작품 <율구>의 리딩 작업 역시 무작정 대본을 파고들기 보다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동선을 지켜보면서 장면을 만들고 정리해 가며, 인물과 대사를 더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하여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구현하였다.

'율구' 출연진_희문(박희민), 연호(이철희), 만영(박신후), 노인(신현종), 정섭(원춘규), 요석(강진휘), 찰랑(이상숙), 노파(전국향), 영원(성노진), 상균(심원석) /ⓒ권애진

‘함께’라는 단어에서 공허함과 허무함을 읽어내고 있는 작품 <율구>는 올해 제1회 ‘임홍식배우상’을 수상한 배우 신현종 전국향 부부가 극 중에서 실제 부부 역할을 맡아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작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리고 작년 초연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 온 성노진 배우, 원춘규 배우, 이철희 배우, 심원석 배우, 박희민 배우의 탄탄한 호흡과 올해 새로이 합류한 박신후 배우, 강진휘 배우, 이상숙 배우의 능숙한 연기들이 더해져 관객들이 작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극단 파수꾼은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연극과의 첫 만남과 그 뜨거운 추억에 관한 기억을 다시 찾고자 하는 극단이다. 그래서 소박한 생각과 아날로그 정신을 지키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밖에서 덮쳐오는 자본과 물질의 기형적인 물결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슴 속에서 점점 소멸되어 가는 인간을 향한 연민과 삶의 소중함,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눈빛을 간직해 나가고 있다. 극단 파수꾼은 진실은 가려지고 따뜻한 심장을 잃어 가고 있는 세상을 경계하며, 사람과 더불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끊임없이 눈 뜨고 있는 파수꾼을 자처하고 있다.

- MINI INTERVIEW -

1. 작가님이 붙인 제목 '율구',연출님이 붙이셨다는 제목 '몽유도원'처럼 작/연출이 한사람이 아닐 경우 글로 풀어낸 희곡을 무대 위 구현하기 위한 각색과정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 여깁니다. 작품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작가님과 연출님의 작업과정들이 궁금해집니다.

고정민 작가 ➜ 율구는 빛날 율(燏)과 구분하다, 지경 구(區)란 한자어를 합성한 조어입니다. 새로 만든 단어이기 때문에 뜻풀이 성격의 부제가 필요했고, ‘빛이 공평하게 나뉜 곳’이란 의미를 사용하였습니다. 작품을 무대 위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부족하거나 과할 수 있는 부분은 작업에 참여하는 동료들과 함께 공동의 시선으로 살피고, 교정하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한 편의 연극과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이것들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연극을 만들어가는 작업 과정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삶의 태도를 배우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희곡과 무대가 관객을 위해 존재하듯. 나 혼자만의 작업의 아닌,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를 위해 열려있는 형태의 예술이기 때문이겠죠. 타인을 향한 이해와 공존의 태도를 배워가는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적으로 인격적으로 모두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요.

꿈처럼 사라지고 상처와 아픔만 남음을 '몽유도원'이라 제목 지은 이은준 연출 /ⓒ권애진

이은준 연출 ➜ 몽유도원은 우리가 꿈꾸는 지상의 낙원이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공평하게, 그리고 나누고 베풀며 사는 참된 모습을 그리고자 하지만 그것은 결국 꿈처럼 사라지고 그들에게는 상처와 아픔만 남게 됩니다. 한 단어로 관객들이 이해 할 수 있는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서 몽유도원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희곡이 가지고 있는 주제의 힘, 인물의 특징을 잘 부각시키려 노력했으며, 배우와 연출 작가가 모여서 함께 서로 의문점에 관해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인물들의 성격과 사건이 부각되는 지점을 살리며 인물간의 갈등, 연민을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2. 모두 함께 공평하게 잘 살 수 있을꺼라 여겨지는 '유토피아'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착취와 경쟁으로 점철된 경쟁사회의 탓이 더 크다 여겨지기에, 인간의 본성이 오롯하게 악하지 않다 보고 싶습니다. 작가님과 연출님은 작품에서 각 캐릭터들에게 선악의 구도를 직접적으로 넣진 않은 듯 보이는데, 캐릭터들을 통해 어떤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 듣고 싶습니다.

고정민 작가 ➜ 저는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소 모호해 보이는 요석의 캐릭터에서 가장 많이 공감하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살면서 최선을 다한 나의 말과 행동이, 애초의 본뜻과 다른 결과를 만들거나 앞뒤가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서. 그 모든 것을 안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저의 모습과 현대인들의 삶이 묘하게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어떤 한 존재가 나에게 ‘당신, 왜 그리 살아, 언제까지 그렇게 허둥지둥 살아갈 거야’ 진심 어린 걱정의 말을 해준다면. 이런 말을 듣는다면, 과연 나의 삶은 달라질까. 아님, 예전과 똑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 그런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생각할 때. 지금도 가끔 스스로 던져보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과 해석은, 이제 공연을 찾아주신 관객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모두, 제각기 우리 삶에서 고유한 주인이자 어떤 선택의 결정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은준 연출 ➜ 모든 사람은 자기 기준의 알리바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 스스로 악하다... 라는 기준에 사는 사람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선과 악의 구도를 나눌 필요는 없다고 생각니다. 모두가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세상과 현재의 상황에 따라 관객의 눈에 누군가는 악인으로, 누군가는 선인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각자가 끊임없이 목표하는 지점들과 욕망이 부딪혀 갈등과 파국, 혹은 화해의 과정으로 이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3. 작품 <율구>는 작가와 연출 외에도 드라마터그가 따로 있습니다. 작품에서 작가님, 드라마투르그, 연출님의 역할분담이 궁금합니다.(독일에서 넘어왔다는 드라마터그라는 직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역할들이 정해져 있지 않는 듯 해 보입니다.)

<율구>의 드라마터그는 김주연 평론가님이 참여하셨습니다. 드라마터그는 일반적으로 내부비평가 혹은 조언자로서 작품의 제작 과정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총칭하는데, 구체적인 역할은 매 번 프로덕션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곤 합니다. 이번 작품 <율구>의 경우는 작가와 연출 사이의 의사소통이 긴밀히 이루어진 상태이고, 연출의 작품의도가 뚜렷해서 초반 대본 작업보다는 후반부 연습 과정에서 작가와 연출의 의도가 공연에서 잘 드러나는지 지켜보고 조언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이와 함께, 작품의 이해와 감상을 돕는 프로그램 글을 쓰는 것도 드라마터그의 주요 역할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이은준 연출 ➜ 저는 드라마터그와 처음으로 작업해 보았는데 창작극의 과정에서 드라마터그가 작품의 흐름이나 이야기의 구조에 모순은 없는지,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어떤 것이 더 부각되는 것이 좋을지에 관한 조언을 듣고 (작품을 연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4. 연출님과 배우님들의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율구'를 연출한 이은준 연출 /ⓒ권애진

이은준 연출 ➜ 전태일 재단에서 11월12일부터 공연될 <청년 전태일_불씨>라는 작품의 작/연출을 맡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무료공연이니 많은 관객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율구' 노파 역 전국향 배우 /ⓒ권애진

전국향 배우 ➜ 명동예술극장에서 김재엽 연출의 ‘알리바이연대기’에 10월16일부터 11월10일까지 출연할 예정입니다.

'율구' 노인 역 신현종 배우 /ⓒ권애진

신현종 배우 ➜ 한양레퍼토리씨어터에서 극단인간극장이 제작하는, 위기훈 작/신동인 연출 연극 ‘밀실수업’에 다음달 9월 20일부터 29일까지 출연할 예정입니다.

'율구' 만영 역 박신후 배우 /ⓒ권애진

박신후 배우 ➜ 11월에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율구' 정섭 역 원춘규 배우 /ⓒ권애진

원춘규 배우 ➜ 다행히도 차기작은 없습니다. 당분간 소홀했던 육아에 전념할 듯 합니다.

'율구' 찰랑 역 이상숙 배우 /ⓒ권애진

이상숙 배우 ➜ 극장 동국에서 극단 파수꾼, 골목길, 달팽이주파수가 제작하는, 이현직 작/연출의 연극 ‘장유유서’에 다음달 9월 25일부터 10월 6일까지 출연할 예정입니다.

'율구' 상균 역 심원석 배우 /ⓒ권애진

심원석 배우 ➜ 전태일 재단에서 11월12일부터 공연될 ‘청년 전태일_불씨’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율구' 요석 역 강진휘 배우 /ⓒ권애진
'율구' 연호 역 이철희 배우 /ⓒ권애진
'율구' 희문 역 박희민 배우 /ⓒ권애진
'율구' 영원 역 성노진 배우 /ⓒ권애진
'율구' 포스터 /(제공=극단 파수꾼)

빛날 율(燏), 지역 구(區), 원래 없는 단어로 작가가 만들어 낸 ‘빛이 고르게 나뉘는 곳’과 지상최고 낙원을 지칭하는 몽유도원의 부제를 붙인 연출이 두 개의 제목이 존재하지만 가리키는 곳은 한 방향이다. 하지만 스스로 창조해 낸 언어 속에 이러한 의미를 담아낸 작가와 달리, 연출은 관객에게 익숙한 말인 동시에 ‘그림’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단어를 통해 이를 보여주고자 하고 있는 작품 <율구>는 관객들이 어떤 단어가 어떻게 와 닿을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