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생활,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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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생활, 그것은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회장
  • 승인 2019.09.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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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감사생활을 하고 계시는지요? 감사를 한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수행의, 모든 기도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 감사하고 살아야지’, ‘감사생활 좋은 거지’ 하면서도 직접 감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은혜를 입고 살면서 직접 감사하며 사는 것에는 인색한 것이 우리 중생들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원불교 교법(敎法) 중에 <일상수행의 요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불교 교리를 망라한 것입니다. 그걸 아홉 가지로 나누어 누구나 일상생활에 베풀어 사용하라는 가르침이지요. 그 다섯 번째 조항에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는 항목이 있습니다.

원망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평불만과 고통에 허덕이고 인생을 비관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감사생활 하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를 갚는 것이 바른 길입니다. 그런데 짐승도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아는데 하물며 인간으로서 보은(報恩)을 하지 않으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생활을 하고 싶으면 이렇게 한 번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노트나 빈종이, 컴퓨터에 <감사일기>라고 쓰고 그리고 나에게 과연 감사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가를 한 번 적어 보는 것입니다.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될 수 있다면 하루나 한 주, 아니 한 달 정도 계속해서 매 순간순간 마다 감사한 일이 생기면 그 때마다 계속해서 적어 보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묻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월급 받고 사는 건데 왜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닙니다. 당연히 감사하게 생각해야지요. 제가 오래 전에 인도와 네팔, 티벳 등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하루에 2달러 정도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나라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 비하면, 또 직장 없이 마음고생 하는 이들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당연하거나 평범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감사한 삶을 누리고 있는 중이 아닌가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장애나 큰 병을 가지고 태어났거나, 지금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그러지 않고 이렇게 잘 크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아이가 건강히 내 곁에 있고, 사고치지 않고, 집 나가지 않고, 큰 병도 없고, 큰 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잘 커주고 있는 것이 정말 당연한 일인가요? 사실 그 얼마나 크게 감사할 일입니까?

먼저 감사해 하고, 먼저 다가가세요. 먼저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찾았다면 충분히 감사해 하고, 그 감사를 표현하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끊임없이 감사하면 모든 문제는 아주 쉽게 자연스럽게 풀려나가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최소한의 의식주가 보장되어 있다면, 그것은 무조건 감사해야 할 일들로 가득한 것입니다.

이제 감사할일을 꼼꼼히 찾아 노트나 수첩에 적어 보셨나요? 아마 이렇게 많이 찾았나 하고 놀라실 것입니다. 감사할 일들은 찾으면 찾을수록 더 많이 발견이 될 것입니다. 본래 이 우주법계(宇宙法界)라는 곳이 무한히 우리에게 베푸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고맙고 감사한 베풂을 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찾고 찾다보면 그 무한한 생명의 무량 베풂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얼마나 감사할 일들인지에 대해 새삼스레 눈뜨게 되셨지요? 사실은 괴로운 일들 속에서도 감사할 것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업장(業障)을 녹여주는 경계(境界)이거나, 우리에게 강인함과 어떤 특정한 지혜 같은 덕목을 전해주기 위한 생생한 경계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조차,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 조차 우리가 감사할 정도가 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일상을 뛰어넘고, 업(業)을 뛰어넘어 보다 깨어있고 삶을 초월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 수 있는 준비를 마친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은 깨달은 자의 시선이 바로 모든 존재에 대한 감사와 찬탄의 시선입니다. 중생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시비(是非)거리이거나, 괴로운 일이거나, 답답하고 꼬이는 일이지만, 불보살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고, 나를 돕는 법계(法界)의 배려이며, 찬탄할 만한 일들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감사수행을 왜 해야 하는지를 아셨겠지요? ‘감사수행, 그것은?’

1. 모든 긍정의 감정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2. 가장 수동적인 것 같으나 가장 적극적인 삶을 이끌어내는 힘입니다.

3. 인간의 생존과 영적번영에 생태적으로 요구되는 필수 핵심감정입니다.

4. 진정한 자기해방의 감정입니다.

5. 개인의 내적안녕뿐 아니라 사회건강을 지키는 사회적 감정입니다.

6. 고품격의 인간내적상태를 고양(高揚)시키는 감정입니다.

7. 스스로 하는 영적(靈的) 마사지입니다.

8. 감사 자체가 보상이며, 보상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무한생산성의 감정입니다.

9.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의 변화로 이끄는 힘입니다.

이만 하면 우리가 감사생활을 해야 할 충분조건이 채워진 것이 아닌가요? 원망생활 하는 사람은 미물곤충에게서도 해독(害毒)을 입는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감사생활을 하는 사람은 진리의 위력(威力)을 얻어 하는 일마다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술술 풀리게 되지요.

감사생활, 그것은? 진리의 위력과 체성(體性)에 합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원하면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진리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일이 없습니다. 물론 진리에 어긋나는 일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에 어긋나는 일은 탐욕입니다. 탐욕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 지금부터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려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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