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어떤 것보다도 즐거워…삶 대변하는 뮤지션 되고파”

데뷔 29주년을 맞은 힙합 가수 현진영

[뉴스프리존=김현무 기자] 대한민국 1세대 힙합 가수 현진영이 올해로 데뷔 29주년을 맞았다. 29년의 시간이 '화살' 같았다는 현진영에게 그 시간들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1990년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해 당시로선 파격적인 힙합 장르를 선보이고 '힙합 문익점'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이후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가요계 정상에 자리했지만, 연이은 사건사고로 삶의 굴곡을 경험했다. 그러다 2006년 '소리쳐봐'로 재즈힙합을 선보이며 재기에 성공한다. 그는 이 시간들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유쾌하게 보여줬다. 이게 바로 '현진영'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음악을 대하는 모습은 정직하고 순수했다. 그는 음악이 아니면 안 된다는 자신을 다시 일어나게 해준 재즈힙합을 기력이 없어질 때까지 부르고 싶다고 했다. 대중들에게는 삶의 대변자이자 편안한 오빠·형으로서 다가가면서 말이다.

올해로 데뷔 29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29년의 시간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화살. 세월이 화살 같다고 하지 않나. 이뤄놓은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29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29년의 경력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해 자부심도, 자신감도 있지만 앞으로 해야 할 남은 활동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불안감도 같이 있다. 화살은 빠르기도 하지만 맞으면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들게 하지 않나.

뮤지션으로서 ‘최초’, ‘천재’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부담스럽진 않나.

그런 수식어가 붙게 됨으로써 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것으로 부담감을 갖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된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수식어가) 기분은 좋다. 그러나 꼭 그에 맞게 행동하고 따라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러니 그것에 대한 부담감도 없다. 대중들이 그렇게 얘기해주시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뿐이다. 음악이라는 게 나를 보여주고, 나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생기는데,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게 해야겠다는 부담감은 가질 수 있겠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나. 아니면 그런 성향을 타고났나.

재즈 피아니스트셨던 아버지께 어릴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음악을 할 때 좌우를 돌아보면서 하지 말고 네 삶만 보라”고 하셨다. 조언은 받아들이되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지는 말고, 내가 원하는 걸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그런 얘기를 안 들었다면 지금 갈팡질팡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하는 갈등과 고민 말이다. 음악이란 그런 것 같다. 내 생각과 반대라고 안 들을 필요도 없고, 내 생각과 같다고 더 들을 필요도 없다.

인생에 굴곡이 참 많았다. 여러 번의 위기 속에서도 음악을 놓지 않은 이유가 있었나.

원초적으로 말하자면 너무 어릴 때부터 음악만 해서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이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고속도로에서 옥수수를 팔더라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의지는 있다. 할 수도 있고. 그러나 음악을 할 때 어느 일보다도 행복감과 만족감을 많이 느낀다. 목소리 바꾸려고 체중을 60kg 이상 쪘다, 뺐다 반복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마음가짐인지 아시리라 본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이상 말이다. 내 인생에 음악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 시기들(어두운 시기들)을 지금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그냥 내 삶의 일부. 현진영이라는 삶에 여러 스토리가 있으면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때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앞으로 그 경험들을 어떻게 음악 속에 슬기롭게 잘 녹이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더 이상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때를 거울삼아 방지하거나 차단하는 노력은 있다. 그런데 그것에 연연하진 않는다.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도 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게 많으니까. 지금은 웃으면서 내 입으로도 말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내 웃음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화가 안 난다. 그냥 나의 수식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연연하거나 기분 나빠하고 꽁해있으면 더 큰일을 못한다. 그런 부분에서는 이제 아주 자유롭다.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닌가.

현재는 재즈힙합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이 분야에 몰두하게 됐나.

힙합을 해오다가 어느 순간 벽이 생기더라. 왜냐면 나는 그 장르가 나오게 된 나라의 민족이 아니니까 말이다. 어느 선까지 가니 한계가 왔다. 한 나라의 민족, 그리고 역사 속에서 나오는 게 장르다. 그 민족과 역사를 모르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흉내만 내는 거지 그걸 진짜 하는 게 아니다. 외국 사람들이 국악을 못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한민족이 아니니까. 그것과 똑같다. 힙합이라는 장르를 알려면 일단 힙합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야 하고, 그 장르로 인해 어떤 역사가 이뤄졌는지 알아야 한다. 어릴 땐 그런 걸 모르고 해왔다. 그 벽에 부딪힌 것이다.

1993년쯤부터 그런 부분에 굉장히 목말라 있다가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하고, 미국 교수들과 이메일도 주고받고, 책도 보다 보니까 힙합이 어디서 나왔는지 찾게 됐다. 힙합은 재즈의 스윙에서 파생된 비트의 이름인데 그렇다면 힙합이라는 비트를 사용하는 재즈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재즈힙합이란 장르가 있었다. 이 장르에서 힙합 비트가 파생돼서 래퍼들이 사용하게 된 거다. 재즈힙합을 일본에선 이미 하고 있었다. 미국, 일본은 재즈힙합이 거의 연주곡이다. 노래가 들어가면 스캣 정도이고, 내가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근데 그걸 모티브 삼아 공부하다가 현진영이라는 필터링에 거쳐 나온 게 ‘소리쳐봐’다. 한국 정서에 맞게 멜로디가 주고, 스캣이 양념인 곡이다. 그 뒤에 나온 ‘무념무상’은 스캣이 주다. 그들의 민족성, 역사성을 그 나라 사람들만큼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명확하기 때문에 그 장르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근접하게 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데뷔 29주년을 맞은 힙합 가수 현진영

한 번 팔 때 제대로 파는 스타일 같다.

그게 장르를 안 바꾸는 이유기도 하다(웃음). 나이를 먹게 되면 스탠더드 재즈 가수가 될 것 같다. 재즈힙합도 재즈니까. 내가 스탠더드 재즈를 하게 돼도 결국 힙합의 뿌리기 때문에 장르가 바뀌는 건 아니다. 본(本)으로 가는 거다. 남들은 새로운 느낌으로 가려 하는데, 저는 오히려 이 장르가 태어난 데로 간 거다. 이게 맨 처음에 어떻게 나왔는지 후배들에게 말해주는 게 선배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후배들보다 더 획기적인 것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선구자로 나서는 게 힘들진 않나.

힘들다. 근데 (다른 건) 재미없으니까. 내 생업이고 평생 해야 할 건데 재미없는 걸 뭐 하러 하나. 사실 이런 얘기 하면 자기가 잘하는 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업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하다. 근데 어쩌다 음악을 하게 됐고, 하다 보니까 음악적 부분에선 내가 재미없으면 안 한다. 그게 듣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오늘 내 기분까지도 전달된다. 뮤지션은 대중의 감성을 건드리고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내가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면 되겠나. 항상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도, 슬픔도 주고 추억도 떠올리게 하려면 내가 온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가 좋고 즐거워야 한다.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재미가 있으니까 더 오래 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어떤 것보다도 재밌다.

이 장르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최대한 기력이 없어서 못 일어날 때까지 노래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재즈가 아직은 불모지인데, 스탠더드 재즈와 대중들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싶다. 대중들에게 현진영의 재즈힙합을 듣다가 스탠더드 재즈를 들으면 덜 어려운 것 같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게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재능을 주신 우리 아버지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재즈힙합 외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

재즈힙합을 하지만 중간에 트로트, 댄스, 발라드도 할 수 있다. 이번에 나오는 앨범도 발라드 곡이다. 재즈힙합을 하면서 중간마다 쉬어가는 식으로 나오는 거다. 도전이라 할 순 없다. 도전은 성과를 이뤄야 하는 거고, 이건 그냥 재즈힙합을 하면서 중간에 한 번씩 재밌어서 해보는 거다.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서 도전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들어주면 좋은 거고, 그렇다고 그 장르만 팔건 아니고. 아무도 모르더라도 그냥 좋은 거다. 그런데 나를 상징하는 음악이 재즈힙합인 건 확실하다.

지금까지 발매한 앨범(곡)들 중에 어떤 앨범(곡)을 명반(명곡)으로 꼽고 싶은가.

당연히 5집 앨범의 ‘소리쳐봐’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던 현진영을 일으켜준, 재기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곡이다. 그리고 그 곡 자체가 아버지가 많이 참견하셨다. ‘흐린 기억 속에’ 만들 땐 아버지 반응이 “좋아, 나쁘지 않아” 이 정도였는데, ‘소리쳐봐’는 코드 하나까지 바꾸라고 하셨다. 어떤 날은 “네가 무슨 재즈 뮤지션이야, 뭐 그렇게 멋을 부려”, 어떤 날은 “뭐 그렇게 쓰레기같이 해”라고 핀잔을 주셨다. 차라리 뭘 바꾸며 될지 말씀해주시면 될 텐데 답을 안 주고 바꾸라고 하니까 녹음만 40번 가까이했다. 앨범 네 장 내는 돈이 들었다. 이제 편곡이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아직 재즈를 담기엔 삶의 그릇이 작다고 생각하시고 나이 먹고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을 그렇게 하신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까 5집 앨범에 스토리가 너무 많다. 마지막 녹음 들려드리려는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께 오케이 못 받은 것도 너무나 한이 된다. 근데 아마 계속 오케이는 안 하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못 나왔거나 50살 넘어서 나왔을 수도 있는 음반이지 않을까. 저에게 가장 소중하고, 가장 의미 있는 음반이다. 대중들에게 제가 오랫동안 굶주려왔고 갈구해왔던 걸 반이라도 보여줄 수 있었던 음반이다.

실제로 3집 ‘바로 너’라는 곡 중간 8마디가 재즈힙합으로 바뀐다. 근데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장르를 앞으로 할 거라고 암시하는 식의 곡이었고, 내가 만든 곡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만들기까지 10년 걸렸다. 노래, 작곡은 감각으로 할 수 있지만 편곡은 감각만으로 할 순 없다. 공부를 해야 한다. 1993년도에 암시하고, ‘소리쳐봐’를 만든 게 2004년쯤이었다. 한 2~3년 묵고 2006년에 나왔다. 공부부터 완성까지 총 10년 걸린 거다. 그러다 보니 저에겐 굉장히 의미가 남다르다. 앞으로도 이런 곡은 나오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내 몸을 너무 혹사시켰던 앨범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음악 인생을 모두 갈아 넣은 것 같다. 그래서 그게 절 재기시켜준 게 아닌가 싶다. 9년 만에 방송 풀리고 첫 방송을 나갔는데, 1등 안 했는데도 너무 감격스러워서 울었다.

곧 데뷔 30주년이 된다. 30주년에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

무계획이 계획이다. 계획을 짰는데 계획대로 안 되면 거기서 오는 실망감, 실패감이 너무 싫다. 항상 즐겁고 재밌게 웃으며 살고 싶다. 계획 없이 하다가 뭐가 잘 되면 너무 기쁘지 않나. 나는 그게 좋다. 우리 와이프랑은 정반대다. 물론 기본적인 계획은 있다. 콘서트, 기념앨범, 헌정앨범은 후배들이 해주면 너무 고마울 것 같고(웃음). 이런 건 기본적인 거고, 디테일한 건 안 짠다. 안 할 수도 있는 거니까. 약속을 했는데 못 지키면 대중도 실망할 거고. 나도 여의치 못해서 죄송하게 됐다고 아쉬운 소리 해야 한다. 내일 일은 난 모른다는 주의다. 너무 디테일하게 계획하는 건 답답해서 못 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게 계획을 짜서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을까. 큰 덩어리에 대한 계획은 있지만, 약속은 아니라는 것이다. 20주년 25주년 콘서트도 안 했다. 괜히 환갑 진갑 차 먹는 것 같아서.

대중들에게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나.

편안한 옆집 오빠, 형, 교회오빠, 형 같은 느낌인데 노래할 때는, 아니면 그 형이 만든 노래는 내 삶에 파고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를 좋아하고 내 음악을 듣는 분의 삶을 대변하고 싶다는 것이다. 대변을 잘하려면 ‘그’가 돼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자기 얘기하는 것처럼 느낄 테니까. 그런 가수가 되고 싶다. 이 형 노래를 들으면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가 아니라 ‘이 형 노래를 들으면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느낌을 주는 가수.

이번에 나오는 신곡 제목이 ‘나의 삶’이다. 요즘 20대들 미래가 불투명하지 않나. 이들이 힘들어하는 것들을 대변하고 싶었다. 내가 그들보다 굴곡은 강하지만 그들 나이에 나도 그랬다. 물론 정상을 달리는 가수였지만, 내리막길만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젊은 세대들에게 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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